애미 못 알아보게 하는 스마트폰...내가 소시오패스 낳았나
여름 방학이 시작할 무렵 청소년심리상담센터에 갔다. 밤이면 우리 집에 나타나는 그 악마, 하루 세 번 사람에서 원숭이로, 원숭이에서 악마로 변신하는 우리 집 청소년의 마음속을 알고 싶어서였다.
집마다 각자의 쓰레기통을 숨기고 살아간다지만 이러다 누구 하나 실려 나가야 끝날까 싶은 전쟁이 이어졌다. 전에 살던 집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 아파트 전체에 울려 퍼지던 “내가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 고함을 들으며 “저 집 발작 버튼 또 눌렸구나!” 킬킬대곤 했는데, 그 폭탄이 우리 집에도 와서 터질 줄이야. 그 집 폭탄이 원자폭탄이라면 우리는 수소폭탄 정도 되려나. 고함에 욕이 섞였고, 아이 입에서 나오는 욕은 부모의 발작버튼까지 눌렀다. 아이를 향해 지르던 엄마, 아빠의 고함은 서로를 향하기도 하고, 엉망진창의 하모니가 아파트 전체에 주기적으로 울려 퍼졌다. 우리 집 쓰레기통은 숨겨지지도 않네. 난리 통이 잦아들면 심한 현타가 왔다. 가끔 중년 여성 커뮤니티에 들어가 ‘아이 때문에 죽고 싶습니다’ 류의 글을 보며 ‘우리 집은 최악이 아닐지도 몰라’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이러다 얘도 등교 거부하는 거 아냐?’ ‘물리적 폭력을 쓰면 어떡하지?’ 더 큰 공포가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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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의 대부분처럼 나 역시 아이보다 덜 관심 받고 지원받으면서도 큰 반항 없는 사춘기를 보냈던 지라 아이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게임이 문제인가? 학원이 문제인가? 아니면 그냥 내가 소시오패스를 낳은 것인가? 사춘기 육아에 대한 책과 유튜브를 찾아보며 해법을 찾았지만 소용없었다. 게임 시간을 아이가 주도적으로 정하게 하라고? 그럼 하루 7시간도 내버려 둬야 하는 건가? 약속을 안 지키면 인터넷 전원 버튼을 내리라고? 그 순간 공포영화처럼 우리 집을 엄습하는 광기는 어쩔건데? 도무지 해법을 찾을 수 없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처바를 수 밖에 없다. 수십만원 하는 심리검사를 받아야 하나 망설이다, 그래, 네가 학원 때려치워서 아껴준 돈이 얼마인데, 위로하며 한 달 치 학원비를 바치고 심리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심리를 공부하는 친구에게 추천을 받은 곳에 예약했다. 1차 검사는 한 달 뒤, 2차 검사는 두 달 뒤 예약이 가능하단다. 어쩐지 안심이 됐다. 나 같은 부모가 한두명이 아니구나. 아니나 다를까 주변을 보니 ‘광기’가 정점에 달하는 중2인지라 심리검사를 받는 친구들이 꽤 있는 것 같았다.
청소년 심리검사에 대한 글을 찾다 보니 이런 문장에 맘에 꽂혔다. “부모가 아이한테 밀린다고 느낄 때 심리 검사를 찾는다”고 했다. 거칠게 풀어 말하면 아이가 부모의 통제를 벗어나고 제어가 어려워지면서 ‘이$$, 미친 거 아냐?’ 하는 부모의 마음이 심리 검사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아이의 문제만큼 부모의 책임도 있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다만, 요즘은 옛날처럼 여러 형제나 친구들끼리 사춘기의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발작 버튼을 제어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엄마, 아빠가 다 생업에 묶여 들로 숲으로 뛰어다닐 수 있게 이사를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빌어먹을 스마트폰, 스티브 잡스가 열다섯살 때까지 자기 애들한테는 쥐어주지 않고 남의 자식들만 망친, 애미·애비도 못 알아보게 하는 그 스마트폰이 우리 집 상전 자리에 군림하고 있다. 7월 중순 방문한 센터 대기실에는 스마트폰을 끌어안고 눈을 반짝이는 아이 옆에 나처럼 어두운 얼굴의 부모들이 앉아 있었다.
여튼 그렇게 7월에 1차 검사를 받고 8월에 2차 검사에 올 때 작성해오라는 설문지 같은 걸 받았다. 앞뒤로 10쪽에 달하는 설문지는 아이의 성장 시기에 따른 양육 과정을 기술하는 주관식 문제들이 빼곡했다. 구체적으로 진술해야 제대로 상담 테스트를 할 수 있다는 말이 적혀 있어, 나는 본전 생각을 하면서 무려 이틀에 걸쳐 설문지를 작성해 나갔다.
설문지 답변을 하면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 이미 기억도 희미해진 아이의 어린 시절을 되새기다 보니 그때는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고 ‘애가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싶었던 행동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과정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지금 이런 걸 안 하면 안된다는 데 하며 조바심을 일으키던 아이의 늦된 행동들도 지나고 보니 부질없는 엄마의 안달이었다. 혼자 안자고 떼쓰면 그냥 끌어안고 자 줄걸, 왜 그렇게 화를 냈지? 장난감 좀 사줄 걸 버릇이 나빠지면 얼마나 나빠진다고 그렇게 애를 꾸짖었을까. 아이의 장점을 쓰는 부분에서는 어릴 때 엄마를 기쁘게 했던 행동들이 다시 떠올랐다. 원숭이와 악마의 꺼풀을 벗기고 나니 아이 본연의 모습이 다시 보이면서 왜 좀 더 아이를 예뻐하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가 나를 힘들게 할 때 아이와 나의 역사에 대해서 복기해보는 게 큰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쉽지 않다. 혼자 할 수 있는 건데도 비용의 압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성심성의껏 썼을 것이다. 여튼 이 과정이 꽤나 도움이 된다. 정신과에 상담을 가면 일기를 쓰라는 권유를 받는다는데 아마도 이처럼 감정을 덜어내고 나를 돌아볼 기회를 자주 만들라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전우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리고 감당이 안 되면 전문가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사춘기 지뢰밭을 함께 건너는 전우 여러분의 건투를 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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