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대통령과 성급한 차별화… 대권 등반길 ‘조기 실족’ 할 수도 [Deep Read]
韓, 여야회담서 결정권 없는 ‘허수아비 대표’ 이미지 굳혀… 당정관계 회복해야 당혁신도 가능
전략부재 속 尹과 성급한 충돌 일삼을 땐 공멸… 野 의회독주에 맞설 與 통합이 최우선 과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여야대표회담을 계기로 본격적인 정치력 검증대에 올랐다. 분열 없이 당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지난 22대 총선 때의 비상대책위원장 자리보다 난도가 훨씬 높다. “국가대표는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다”라는 축구선수 이영표의 말대로 당 대표도 증명하는 자리다.
◇험난한 코스
세력이 없는 한동훈 대표는 지지율 외에는 의지할 데가 없다. 약간의 팬덤이 있지만 오랜 기간 다져진 일체감이 아니라 언제든 이탈할 수 있다. 아군은 부족하고 우군도 없다. 대표가 됐지만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다. ①윤석열 대통령의 비토 ②총선·지방선거 공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시점 ③강력한 대권 경쟁자들의 존재 ④‘한동훈표 정치력’에 대한 확신 부족 등이 세력 확장의 걸림돌이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보다 유리한 환경에서 정치에 입문했다. ①정치력을 검증할 여유 없이 치러진 대선 일정 ②정권교체의 열망이 높았던 환경 ③임기 중 공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조건들이 빠른 속도로 친윤계를 만들게 한 동력이었다. 한 대표는 차기 대선까지 2년 6개월이나 남아 검증을 피해갈 수 없고, 23대 총선은 까마득하게 남았으며,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 쉽지 않은 여당 대표의 위상을 가졌다는 점에서 당 장악에 불리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2012년 당시 박근혜는 그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에도 성공하고 ‘당의 변화’도 이끌면서 ‘보수 통합’도 해냈다. 이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충청도 기반의 선진통일당도 흡수·통합했다. 경제민주화를 상징하는 김종인과 청년세대를 상징하는 이준석 영입으로 중도 이미지를 구축했다. 박근혜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한 대표는 박근혜·윤석열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어려운 길을 걸어야 한다. 험난한 코스라 ‘조기 실족’ 가능성도 있다. 최대 난제는 윤 대통령과의 관계다. 차별화와 당·정관계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찾은 사례는 이명박-박근혜(2012년)·노태우-김영삼(1992년)처럼 힘의 우위가 미래권력 쪽으로 기울었을 때 찾아볼 수 있다. 반대의 경우 대개 파열됐다.
◇차별화 유혹
1987년 민주화 이후 여당 대표 자리는 대통령으로 가는 길에 디딤돌보다는 걸림돌이 된 경우가 많았다. 김영삼 정부의 이회창, 노무현 정부의 정동영, 박근혜 정부의 김무성, 문재인 정부의 이낙연은 결국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차별화를 시도했던 경우나 당·정관계에 치중했던 경우 모두 실패했다.
윤석열 정부 임기 반환점도 돌기 전에 등장한 미래권력 한 대표와 윤 대통령의 관계는 어떻게 귀결될까. 둘 모두 여러 선택지가 있다. 윤 대통령에겐 ①한 대표 고립과 붕괴 시도 ②수평적 당·정관계 수용 ③(탈당이든 아니든) 당과 거리 두기 ④야당과 직접 대화하는 주도적 정치 시도 등의 선택지가 있다. 가능성은 ①③④②의 순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탄핵 공세가 거센 상황에서 양측 모두 적전 분열은 피하고 싶겠지만 언제든 충돌할 수 있는 ‘불안한 휴전’이다.
한 대표에겐 ①대통령과의 관계 회복도 하고 혁신도 성공하는 것 ②대통령과의 관계 회복은 안 되지만 혁신은 성공하는 것 ③대통령과의 관계는 회복하지만 혁신엔 실패하는 것 ④대통령과의 관계 회복과 혁신에 모두 실패하는 것 등의 선택지가 있다. 당 혁신을 통한 차별화가 가장 좋겠지만, 대통령과의 관계 회복 없이 당 혁신에 성공하기 어렵다는 게 딜레마다. 압도적 힘의 우위도 없고 총선과 대선이 오래 남은 상황에서 성급한 차별화는 위험한 전략이다.
한동훈·이재명의 여야대표회담에 배석했던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채상병 특검법과 관련한) 내 처지가 좀 그렇다. 당내 상황이 좀 어렵다”는 한 대표의 비공개 발언을 전했다. 한 대표 측은 즉각 부인했지만, 자기결정권이 없는 여당 대표의 ‘처지’는 회담 결과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애당초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 회담이었다. 공동발표문은 민망한 수준이다.
◇성급한 충돌
야당을 상대하는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는 북한을 상대하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와 같다. 남과 북이 아무리 직접 담판을 짓고 싶어도 미국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했고, 북이 제아무리 미국과 직접 대화하려 애를 써도 한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실현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여당의 동의 없는 대통령과 야당 대표 간의 회담도 좋은 결과를 바라보기 어렵지만, 대통령의 전적 위임 없는 여야대표회담은 더 어렵다.
이번 여야대표회담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전략적으로 얻은 게 많다. 첫째 한동훈 대표가 아무 결정권한도 없는 ‘허수아비 대표’ 이미지를 굳혔다. 둘째 대통령과 당 대표, 당 대표와 여당 내부의 균열을 노출했다. 한 대표는 사실상 얻은 게 없다. 여당 대표가 제1 야당 대표와 만나 뭔가 합의를 이루고 성과를 내려면 대통령·정부·당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전략 없이 조급하게 서두른 결과다.
한 대표는 비대위원장 경력이 없었다면 여당 대표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 대표가 되기까지 대통령의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두 사람이 지금은 누가 봐도 ‘적대적’이다. 총선과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회복할 수 없는 관계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임기 반환점도 돌기 전에 미래권력이 대통령을 겨냥해 공공연하게 차별화를 벌이는 경우는 전례가 없다. 야당이 국회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여당 대표가 차별화를 시도하면 정권 레임덕은 불가피하다. 권력의 속성은 조기 레임덕을 허용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충돌의 불가피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문제는 이 대표의 법원 선고가 다가오는 시점과 맞물려 야당이 특검 공세와 계엄론 유포로 탄핵 빌드업을 하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충돌은 공멸로 갈 가능성을 키운다는 점이다.
◇최우선 과제
한동훈 대표가 차별화·당 변화·보수 통합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고 대선 후보가 되려면 최소한 현재의 최우선 순위는 차별화가 아니라 야권의 입법 독주에 맞서 여권의 분열을 막는 것이다. 그러려면 대통령과의 관계 회복이 무엇보다 앞선 과제다. 그게 여권 내 비토 그룹의 존재를 최소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차별화와 당 혁신이 대선으로 가는 ‘충분조건’이라면 대통령과의 관계 회복은 ‘필요조건’이다. 당·정관계 회복 없이는 효과적인 차별화도, 당 혁신도 없다. 한 대표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용어 설명
한동훈의 ‘채상병 특검법’ 은 전대 국면에서 밝혔던 ‘제3자 추천’ 방식을 말함. 당내 반발이 심하고 민주당이 ‘대법원장 추천’을 골자로 하는 유사 법안을 발의하면서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
이재명과 한동훈의 ‘여야대표회담’ 은 황우여·김한길 회담(2013년) 이후 11년 만의 대표회담으로, 지난 1일 국회에서 개최돼. 8개 합의 사항을 발표했지만 최대 관심사를 모두 비켜 갔다는 평.
■ 세줄 요약
험난한 코스 : 세력이 없는 한동훈은 박근혜·윤석열의 대권 가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험난한 코스 걸어야. 최대 난제는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 차별화와 당·정관계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찾지 못하면 ‘조기 실족’할 수도.
차별화 유혹 : 여당 대표 자리는 대부분 대통령으로 가는 길에 걸림돌로 작용. 당·정관계 회복 없이 당 혁신에 성공 못하는 법. 한동훈이 여야대표회담에서 결정권한 없는 ‘허수아비 대표’ 이미지 굳힌 것이 이를 말해줌.
성급한 충돌 : 미래권력이 전략도 없이 대통령과 성급한 차별화를 시도하면 정권 레임덕과 공멸 불가피. 차별화·혁신이 대권 ‘충분조건’이라면 당·정관계 회복은 ‘필요조건’. 野 의회 독주에 맞설 與 통합이 최우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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