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패럴림픽] 육상레전드 전민재 눈물의 작심발언, "연맹임원, 개인감정으로 부당하게 생활보조 제외했다"
[파리=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개인적인 감정으로 부당한 결정을 했다. 내 의사는 1%도 반영되지 않아 힘들고 억울했다."
각종 장애를 지닌 선수들이 쏟아내는 열정과 투혼으로 전세계를 감동시키고 있는 2024년 파리패럴림픽에서 폭로성 발언이 나왔다. 패럴림픽 5회 연속 출전기록을 세운 '한국 장애인육상 레전드' 전민재(47·전북장애인육상연맹)가 5일(한국시각) 육상 여자 100m(스포츠등급 T36) 결선을 7위(14초95)마친 뒤 '대한장애인육상연맹 임원으로부터 불합리한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전민재는 이 같은 내용을 미리 써와 경기를 마친 뒤 현장 취재진에게 공개했다.
뇌병변 중증장애인인 전민재는 한국 장애인 육상의 에이스다. 2008년 베이징패럴림픽부터 이번 파리까지 5회 연속으로 패럴림픽 무대를 밟았다. 원래는 항저우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를 마친 뒤 은퇴하려고 했다. 그러나 주위의 만류와 설득으로 파리패럴림픽에도 출전했다. 전민재를 대체할 만한 선수가 없었다.
실제로 전민재는 '마지막 패럴림픽'이라고 선언한 이번 파리패럴림픽에서도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여줬다. 프랑스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결선은 7위로 마쳤지만, 기록만큼은 여전했다. 예선에서 14초69를 기록했는데, 이는 2019년 두바이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운 개인 최고기록 14초68에 불과 0.01초 뒤진 기록이다. 40대 후반에도 5년전 세운 최고기록과 거의 흡사한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전민재는 투혼의 레이스를 다 마친 뒤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전민재는 다섯 살 때 원인 모를 뇌염으로 인해 뇌병변 장애가 생겼다. 이로 인해 보통의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 손으로 글씨도 쓰기 힘들다. 그래서 스마트폰에 글자를 입력해 다른 사람과 소통한다. 자신의 '소통도구'인 스마트폰 메모장에 꼭 밝히고 싶은 이야기를 가득 적어온 전민재는 경기장 밖 바닥에 주저앉아 사용이 불편한 손 대신 오른발 엄지발가락으로 재생버튼을 눌렀다. 스마트폰에 써온 글을 음성으로 변환해 취재진에게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지난 4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하면서 펑펑 울었던 전민재는 잠시 후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밝혔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육상연맹의 한 임원이 올해 들어 불합리하게 개인적 감정을 앞세워 필수적인 생활보조를 없애 억울하고 힘들었다'는 것이다. '생활보조'는 혼자서는 생활하기 어려운 중증 장애 선수들이 훈련에 매진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전민재는 엄마가 오랫동안 생활보조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올해부터 전민재는 생활보조 없이 이천 장애인선수촌에서 혼자 지내며 훈련해야 했다.
전민재는 "나는 손이 불편하고 말을 못해서 생활보조가 누구보다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임원 한 분이 강력하게 반대를 해서 올해는 생활보조가 없어 훈련하는 데 불편함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몇 년 동안 엄마가 생활보조로 들어와 옆에서 손발이 되어 챙겨주셔서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는데, 엄마가 없으니 불편한 게 많아 운동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운동 선수는 식단이 제일 중요한데 트레이너가 잘 챙겨주기는 했지만 식사 시간이 제일 불편했다"고 설명했다.
'폭탄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전민재는 "누구보다 선수들 입장에서 생각해 주고 선수들을 배려해줘야 하는 육상연맹 측에서 불합리하게 개인적인 감정으로 부당하게 '전민재는 생활보조가 없어도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다'면서 내 의사는 1%로 반영되지 않고 오로지 임원의 권한으로 생활보조가 들어오는 것을 극구 결사 반대해서 엄마가 생활보조로 들어올 수 없었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파리 현지의 육상연맹 사무국 관계자는 "우선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것에 대해 선수분에게 송구한 말씀 전해드린다"면서도 전민재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육상연맹은 "2024년 국가대표 선발시기까지 패럴림픽 쿼터를 한장도 획득하지 못한 상황에서 더 많은 패럴림픽 출전을 위해 국가대표를 많이 선발하여 올해 국제대회에 모두 출전시켰다. 그에 따라 국가대표 선수단 최대인원이 선발돼 한정된 예산의 문제도 함께 고려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민재 선수의 생활보조(모친)는 2022년부터 개인사정으로 국가대표 훈련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수가 대부분이었고, 당시에는 생활보조 없이도 문제가 없었다"며 "2023년 초부터 전민재의 생활보조 필요 여부에 대하여 연맹 임원의 개인적인 감정이 아닌 전문체육위원회에서 논의해왔고, 올해부터 가족 중 일원이 들어오는 생활보조를 선발하지 않았다. 이 결정에 대해 올해 훈련 기간 중 민원이 발생한 이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전민재가 주장한 내용과는 사뭇 다르다. 육상연맹은 "앞으로 선수단과 면담을 통해서 더 세밀히 들여다보고 적극적으로 반영 및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장성준 육상대표팀 감독도 "예산문제가 있었다. 지도자들이 최선을 다해 선수에게 필요한 부분을 케어했지만, 어떤 도움도 가족만큼 편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파리(프랑스)=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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