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들쑤신 ‘미정산’의 악몽…티메프 여진 안 끝났다
플랫폼 재무 건전성에 모이는 시선…컬리‧오늘의집에 불똥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의도된 적자'란 전략은 통하지 않았고, 부메랑이 돼 플랫폼을 덮쳤다. 이용자 수 기준 국내 4‧5위 이커머스 플랫폼은 한순간에 몰락했다. 대규모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를 극복하지 못한 티몬‧위메프가 무너진 뒤 한 달이 지났지만, 이커머스 역사상 최대 사건의 여파는 아직도 시장을 흔들고 있다. 시장이 위축되면서 상품권 거래액은 대폭 줄었고, 중소 플랫폼은 도산했다. 플랫폼의 재무 건전성이 대두되면서 '정산 지연설'이나 '대표 도피설' 같은 루머가 일부 이커머스 업체를 들쑤시기도 했다.
법원의 자율구조조정(ARS) 프로그램이 종료된 상황에서, '티메프(티몬‧위메프)'는 기업회생 혹은 파산 절차에 돌입하게 된다. 어떤 갈림길을 택하든 판매자들이 대금을 정산받을 가능성은 요원해진 상황. 여태 환불을 받지 못해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한 티메프 소비자들도 2만 명이 넘는다. 판매자와 소비자를 넘어 이커머스 전반까지 뒤흔드는 티메프 사태의 여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파장 현실화…판매자들도 플랫폼 입점 꺼려
티메프 사태 이후 이커머스 시장에서는 심각한 파장이 여러 차례 목격됐다. '도산'이다.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알렛츠는 지난달 말 영업을 종료하겠다고 돌연 공지하면서 '부득이한 경영 사정'을 언급했다.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던 알렛츠는 투자유치를 논의하고 있었으나, 티메프 사태가 커진 이후 투자가 무산되고 판매자들이 빠져나가면서 자금 사정이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경찰은 서울 성동구 소재 알렛츠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박성혜 대표를 소환해 조사를 진행했다.
티몬과 위메프가 주요 판로였던 회사들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대표적인 곳이 해피머니 상품권을 운영하는 해피머니아이엔씨다. 티몬‧위메프에서 7% 이상의 높은 할인율로 판매된 해피머니는 미정산을 우려한 판매처의 사용 중단 조치로 인해 종잇조각으로 전락했다.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던 해피머니아이엔씨는 지난달 28일 법원에 회생 절차 개시와 ARS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판매대금을 정산받지 못한 식사권 유통업체, 기프티콘 업체들도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큐텐 계열사인 티몬과 위메프, AK몰에서 식당 식사권을 유통해온 테이블엔조이 제휴처 사용 불가 방침과 고객들의 취소‧환불 요청에 결국 모든 채널에서의 판매를 중단했다. 모바일 상품권 기프트팝 브랜드를 운영하는 엠트웰브도 마찬가지다. 엠트웰브가 판매 서비스를 중지하자,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 쿠폰을 판매해온 카카오는 관련 계약을 해지하고 본죽, 할리스 커피 등 모바일 교환권에 대한 환불 처리를 진행했다.
중소업체들 사이에서 도산에 대한 위기감이 떠오르면서 규모가 작은 플랫폼에 물건을 넣지 않는 판매자도 늘어났다. 플랫폼 폐업 등에 따른 연쇄적 피해를 우려한 까닭이다. 소상공인연합회가 발표한 '티메프 사태 관련 소상공인 피해 긴급 실태조사' 보고서에도 판매자들의 인식이 드러난다. '사태 재발 우려로 온라인 플랫폼 사용을 줄이거나 중지할 것'이라는 응답자 비중은 44.3%로, '사용 유지하거나 사용할 예정'(36%)이라는 응답을 넘어섰다.
소비심리도 위축…중대형 이커머스 루머까지 돌아
400만 명 이상이 이용하는 이커머스 플랫폼의 몰락을 지켜본 소비자들은 플랫폼의 '거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온라인쇼핑 거래액이 역대 최저 증가율을 기록한 점도 이번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총 19조962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5.4% 증가하는 데 그쳤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7년 1월 이후 최저 증가 폭이다. 특히 온라인 상품권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급감했다는 사실은 티메프 사태로 인해 소비심리와 신뢰도가 위축된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불똥은 업계에서 어느 정도 체급을 키운 중대형 이커머스에도 튀었다. 플랫폼이 판매대금으로 지급할 현금을 충분히 보유하지 않았다면 '제2의 티메프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시각 때문이다. 대표의 해외 도피설, 정산 지연설 등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제기되면서,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와 오늘의집 운영사인 버킷플레이스, 아이디어스를 운영하는 백패커 등이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컬리의 정산주기가 긴 편이고 올해 상반기 상각전영업이익(EBITDA) 흑자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적자인 점, 오늘의집의 지난해 기준 자본잠식 규모가 8000억원에 달한다는 점 등이 루머의 근거가 됐다.
컬리 등은 자사의 재무구조가 안정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허위 사실이나 비방 행위에 대한 강력한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버킷플레이스는 "공시된 재무제표만 보면 완전자본잠식 기업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회계기준을 변경하며 발생한 오해"라며 "2023년 일반기업회계기준 연간 흑자 기업이고, 당기순이익에서 연간 흑자를 기록했다. 창사 아래 한 번도 정산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또 월 2회 정산주기를 '일 정산'으로 개편하는 강수를 두면서 불안을 불식시키려는 움직임에 나섰다.
운명 결정 앞둔 티메프…피해 보상은 요원
사태의 여진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시선은 티메프의 '운명'으로 향한다. 티메프와 채권자 간 자율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양사에 대한 법원의 ARS는 지난 2일 종료됐다. 기업의 자구 노력에 따라 ARS는 최대 3개월까지 연장 가능하지만, 티메프는 지난 한 달간 채권자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자구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자금 조달 계획을 명확히 밝히지 못한 티메프에 법원은 더는 자율성을 보장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스스로 길을 선택할 수 없는 티메프가 법원에 의해 갈 수 있는 방향은 두 가지다. '회생' 그리고 '파산'이다. 법원이 회생 개시 결정을 내리면 회사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 경우 티메프는 회생계획 인가 전에 외부 투자유치 등을 위한 인수합병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법원이 회생 개시를 기각하면 파산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방향으로 향하더라도 피해 셀러들의 보상은 요원한 상황이다. 법원이 회생 절차를 개시하면 전체 채무의 상당 부분이 탕감될 가능성이 커져 피해 복구가 힘들어진다. 티메프가 파산한다면 자산을 정리해 마련할 수 있는 돈은 300억원 수준에 그친다. 우선순위 채무를 변제하면 정산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티메프의 미정산 금액은 1조2790억원에 달하고, 피해 판매업체 수는 4만8000곳이 넘는다. 미정산 금액이 1억원 이상인 업체만 총 417곳이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티메프 파산으로 인해 영세 플랫폼의 줄도산이 현실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판매업체 비상대책위원회는 판매자들의 의견을 취합해 빠른 시일 내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법원은 채권자들의 의견을 취합해 이달 중 회생 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티메프에서 환불받지 못한 소비자들의 집단분쟁조정 절차도 진행 중이다. 소비자원이 티메프에서 해피머니 등 상품권을 구매한 피해자들에게 집단분쟁조정 신청을 받은 결과, 총 참여자 수는 1만2977명으로 집계됐다. 앞서 모집한 여행상품 집단분쟁조정 신청자까지 더하면 2만 명이 넘는다. 머지포인트 사태(7203명), 메이플스토리 확률조작 사건(5804명) 신청자 수를 훌쩍 상회하는, 역대 최대 규모다. 그러나 집단분쟁조정이 법적 강제성이 없는 데다 해피머니아이엔씨 등 관련 업체까지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만큼, 소비자 피해 보상 역시 요원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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