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력평가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오류 300건 넘어”
11년 전 교학사 역사교과서 오류 반복
“역사 배우고, 수능 치를 수 없을 수준”
“사실관계의 오류, 일관성 없는 용어 사용, (저자의 역사관이 드러난) 유도성 질문 등 날림·불량 교과서라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일·독재 미화 등으로 논란이 된 한국학력평가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300건이 넘는 오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는 한상권 덕성여대 명예교수(사학 전공),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오수창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 등 학계 전문가와 교과서 집필 경험이 있는 현직 역사 교사 등 총 13명에게 의뢰해 이 교과서에 대한 검증을 했다고 밝혔다. 검증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얼핏 보면 집필 기준에 따른 무난한 서술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어떻게 검정을 통과했는지 의문이 들 만큼 수준 이하의 내용”이라고 공통으로 지적했다.
민문연은 이 교과서에 대해 △연도나 단체명 등 기본적인 사실관계 오류 △일관성 없는 용어 사용 △부적절한 사진·도표·자료 인용 △음력과 양력의 표기 오류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 등 모두 338건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교학사 교과서와 유사한 오류 반복한 ‘조선 교육령’ 설명
눈에 띄는 것은 일제 식민지 교육정책인 ‘조선 교육령’에 관한 것이다. 민문연은 한국학력평가원 고등학교 한국사2 교과서 12쪽에 실린 조선 교육령 설명에 대해 “표로 간략히 요약하였으나 조선교육령에 아예 없거나 틀린 내용투성이”라며 “표 안의 설명 중에 올바로 쓴 내용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 교과서는 1922년 시행된 2차 조선 교육령 설명에 ‘조선어 필수’라고 쓰고 있다. 민문연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은 1911년 1차 교육령부터 1943년 4차 교육령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에게 고등 교육의 기회를 제한하고, 보통 교육과 실업 교육을 했다. 1차 교육령 시기 각종 규칙에서 이미 한국어(조선어)는 일본어와 함께 필수 과목이었다. 2차에 와서 달라진 점은 1차에서 조선어가 한문과 통합돼 ‘조선어급한문’이라는 명칭으로 필수 과목이었다면, 2차에 와서는 ‘조선어’와 ‘한문’으로 과목이 나뉘고 전자는 필수, 후자는 선택 과목이 되었다는 것이다. 2차 교육령 시기 보통학교의 한국어 수업 시수는 1~2학년 매주 4시간, 3~4학년 3시간, 5~6학년 3시간으로 학년별로 합치면 총 20시간이다. 1차 교육령 시기에는 1~2학년 매주 6시간, 3~4학년 5시간으로 총 22시간으로,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반면 2차 교육령 시기 일본어는 총 64시간으로 한국어에 비해 3배 이상 시간을 써서 가르쳤다. 따라서 2차 교육령 시기 언어 교육에 관한 설명을 쓰겠다면, ‘일본어 교육 강화’ 등이 오히려 맞는다는 것이다.
3차 교육령 시기(1938년)에 ‘일본어(국어로 사용)’ 등도 명확하게는 잘못된 설명이다. 일본어를 국어로 사용한 건 이미 일제 강점 초기부터다. 3차 교육령 시기보다 훨씬 이전부터 일본어 교과서는 국어 교과서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황국신민 서사 암송’이나 ‘궁성요배’(일본제국과 그 식민지 주민이 궁성 방향으로 절을 하는 것) 등의 내용은 학교에서 실행된 정책이긴 하나 조선 교육령엔 쓰여 있지도 않은 내용이다.
민문연은 조선 교육령은 “(2013년 역사 왜곡으로 논란이 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치명적인 오류라고 지적된 부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당시 2차 교육령 원문의 “국어 숙달을 목적으로 한다”는 부분에 대한 설명으로 ‘한국인에게 한국어 필수화’라고 썼다. 원문에 쓰인 ‘국어’는 일본어를 의미하는데, 당시 이를 한국어로 오해해 적은 위키피디아를 그대로 옮겨 쓴 것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당 부분 설명에서 ‘조선어 필수’라고 썼다는 것이다. 민문연은 “내용상으로 틀리진 않았지만, 일본어 교육 시간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강조할 필요가 없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뉴라이트 역사 인식 관철
현장 교사 등을 통해 이미 다양한 사례가 지적된 뉴라이트 역사관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한국사2 교과서 94쪽 ‘이승만의 정읍 발언, 그 역사적 배경은?’이라고 쓴 주제탐구 부분에서는 2008년 출간된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직접 인용했다. 교과서포럼은 2005년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주축이 돼 창립한 단체다.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는 △식민지 근대화 인정 △반공독재체제 긍정 △북한 체제 비판을 기조로 한다.
민문연은 이 부분에 대해 “스탈린의 지시로 북한이 먼저 단독정부를 세운 점을 강조하며 이승만의 정읍 발언은 이미 공산화된 북한에 대한 대응을 위한 용단이었다는 평가를 유도하고 있다”며 “교과서포럼-교학서-국정교과서를 거쳐 이승만에 대한 단독정부 수립 책임론을 벗기기 위한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이 관철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사2 교과서 25쪽 ‘대륙 침략과 병참 기지화 정책’에 대해서 민문연은 “한반도 공업화가 광복 이후 한국 경제의 바탕이 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뉴라이트적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과서에 처음 등장하는 기독교 성향 역사 사료 선택
기존 역사 교과서에 일반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나 사료가 등장한 점은 특이하다. 한국사2 교과서 34쪽에서는 3.1 운동을 설명하며 “전국적인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이승훈과 한용훈 등 민족 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다”고 썼다. 이에 대해 민문연은 “일반적으로 33인의 대표 이름 첫 번째로 손병희를 서술하는데, 손병희를 빼고 종교계 대표라 할 수 있는 이승훈과 한용운을 쓴 것은 처음 보는 서술”이라고 말했다. 또, 같은 책 88쪽 ‘자기주도 역사 탐구’의 제목은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다. 기존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새로운 인물을 발굴할 수는 있으나 민문연은 “손양원 목사 사례는 교학사 교과서에서 여순사건의 희생자로 처음 등장했다”고 지적했다. 같은 책 112쪽에 나오는 ‘남산 부활절 예배’ 사건도 한국 기독교계의 반독재 투쟁을 촉발한 사건으로 중요하긴 해도 교과서에서는 처음 다루는 사건이다. 민문연은 대표적인 반독재 민주화운동인 민청학련 사건에 대한 소개는 미약한데, 남산 부활절 예배 사건은 비중 있게 다룬 점에 대해 물음표를 던졌다. “이후 (뉴라이트 대부 격인) 김진홍, 인명진(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등 기독교 전도사들의 구속이 이어진 사건을 연상시킨다”고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전문가들은 “교육부 검정을 통과했으니 교과서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기본 요건은 충족했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해당 교과서로는 학생들이 역사를 배우고, 수능을 치를 수 없을 수준”이라며 “향후 본격적인 극우 교과서의 출간을 준비하는 디딤돌 역할에 충실한 여론 떠보기 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검증 관계자들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국정동력 잃고 노무현 괴롭혔던 MB 정권…지금도 마찬가지”
- “후지산 폭발 3시간, 도쿄 마비”…일 ‘예보시스템’ 도입키로
- 국내 통신망 유선 인터넷·IPTV 접속 장애…전국서 ‘먹통’
- 의사 출신 인요한, 전 직장에 ‘환자 부탁’…“수술 중” 문자에 “감사”
- 안중근, 홍범도도 없다...항일운동 대폭 뺀 군 정신교육 교재
- 윤 퇴임 뒤 양평?…대통령실 140억 ‘사저 경호동’에 예민한 까닭
- [단독] ‘부산 돌려차기’ 생존자 손배 승소…법원 “가해자 1억 지급하라”
- 아파트 전단지 뗐다고 중학생 송치한 경찰, 사과도 구설
- ‘김건희, 김영선 지역구 옮기라’ 보도...민주, 특검에 공천 개입 포함
- ‘경기도 법카 유용’ 의혹 김혜경 검찰 소환…취재진 질문에 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