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냐 해리스냐, 재계는 지금 ‘열공 중’

김형민 아시아경제 기자 2024. 9. 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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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미국 대선 석 달 앞두고 비상!

● 최태원 미국 출장서 인디애나주 건너뛴 이유
● 재계, 트럼프 1기 행정부 인사들 두루 만나
● 트럼프 ‘관세 인상’ ‘돌발성’ 등 미리 대비
● 지지율 오른 해리스, 바이든 정책 계승?
● 노조 옹호·불법 처단… 해리스의 변수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7월 31일(현지 시각) 펜실베이니아주 주도인 해리스버그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왼쪽).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7월 23일(현지 시각) 위스콘신주 웨스트앨리스의 센트럴 고등학교 행사에서 유세 연설하고 있다. [AP/뉴시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6월 21일~7월 9일 미국 출장 중 인디애나주를 가지 않았다. 인디애나주는 SK하이닉스가 38억7000만 달러(약 5조2000억 원)를 들여 첨단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짓는 웨스트라피엣이 있다. 웨스트라피엣에 세워질 공장은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그룹 리밸런싱의 목표로 내세운 SK에는 상징적 장소나 다름없다. 최 회장이 미국 출장 중에 인디애나주를 당연히 방문할 것이란 재계 관계자들의 전망이 나왔지만 결과는 달랐다.

재계는 최 회장이 인디애나주를 방문하지 않은 이유를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찾는다. SK하이닉스는 4월 웨스트라피엣 공장 건설과 투자 계획을 발표한 뒤 미국 정부에 '칩스법(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을 신청했다. 미국 정부는 이 신청 내용을 검토 중인데, 결론은 현 정부가 아니라 다음 정부 때 나올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바이든 표 칩스법이 유지될 수 있을지 알기 어려운 만큼 보조금의 향방도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최태원, 트럼프와 공화당에 밉보일까 우려

최 회장은 이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인디애나주를 가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된다. 인디애나주를 갔다가 만에 하나 반도체 보조금을 기다리고 있는 사정이 트럼프 측과 공화당에 포착되고, '민주당 인사들 및 현 정부와 SK가 가깝다'는 인식이 생길 경우 향후 미국에서 하는 여러 사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 미국 대선은 우리나라 4대 그룹 중 하나인 SK그룹 총수의 일정을 좌우할 만큼 그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걸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대선 결과가 나오기까지 이제 석 달만을 남겨뒀다. 대권에 도전하는 트럼프(공화당) 전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민주당) 부통령의 경쟁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재계는 외신 보도와 국내 보고서 등 대선을 전망하는 모든 자료를 수집하며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의 주요 인사들을 초청하거나 직접 미국에 가서 만나기도 했다. 주요 생산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기업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올해 들어 우리 기업의 대미(對美) 수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이런 경향은 더 짙어진 것으로도 보인다. 통계청,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1~5월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 규모는 533억 달러였다. 같은 기간 대중(對中) 수출 규모는 529억9000만 달러였다. 이런 흐름이 연말까지 지속되면 2002년 이후 22년 만에 미국이 중국을 추월해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이 된다. 우리 기업들의 주 고객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는 것이다.

다만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이런 흐름은 또 뒤바뀔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선 결과는 우리와 미국 사이를 급속도로 냉각시킬 수도, 가열시킬 수도 있는 양면성이 있다는 것. 트럼프와 해리스, 두 사람의 외교 및 경제 정책은 또 극과 극을 달린다. 누가 되느냐에 따라 우리 기업들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 우리 재계가 미국 대선 랠리가 시작된 올해 초부터 약 8개월간 끊임없이 만반의 준비를 해온 이유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 세 번째)이 3월 12일 방한한 세라 허커비 샌더스 미국 아칸소 주지사(왼쪽 네 번째)를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샌더스 주지사실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
‌우선 재계는 트럼프 쪽을 선택해 집중하고 있다. 올해 미국을 방문한 경제단체 대부분은 공화당 인사들을 많이 만나 눈길을 끌었다. 이른바 '지한파'로 불리는 의원들이 모여 결성한 모임인 '코리아 코커스'와 접촉을 늘리면서도 공화당 유력 인사, 특히 트럼프의 측근들과 회동을 많이 했다. 우리나라를 찾은 이들도 많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세라 허커비 샌더스 아칸소 주지사가 3월 12일 우리나라를 찾아 정의선 현대차 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등 재계 인사들과 만난 것이 대표적이다. 8월 27일에는 데릭 모건 헤리티지재단 부대표가 한국무역협회의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찾을 예정이다. 헤리티지재단은 미국 내 대표적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로 불리며 공화당의 각종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일단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에 집중

재계가 트럼프를 집중해서 공부하는 건 '해리스는 예측이 가능하고 트럼프는 예측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다. 해리스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점을 주목해, 그가 당선될 경우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 추진하는 여러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을 것으로 우리 재계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내놓은 '7월 통상이슈브리프'에 따르면 해리스는 트럼프와 나이(59세), 성별(여성), 인종(흑인/소수인종), 경력(전직 검사), 정치적 성향 등 모든 면에서 극명하게 대비되고 이를 기반으로 지지층을 확보한 뒤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을 한층 강력하게 이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올해 전당대회를 앞두고 발표한 강령을 통해서도 노동 및 환경, 청정에너지 등 지속 가능한 경제 질서와 동맹국과의 경제 안보를 강조했다. "관세 조치와 공급망 재편성을 통한 미국 우선적 통상정책 추진"을 공개적으로 밝힌 공화당과는 완전히 반대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공화당의 색깔과 정치 성향을 따르지 않을 '돌발성'도 있어서 예상이 어렵다. 우리 재계는 1기(2017~2021) 때 이러한 트럼프의 성향을 경험한 바 있어 더욱 유의하는 경향이 있다. 1기 때 트럼프는 정부 관료들과 정책을 논의하기 전에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본인의 생각을 먼저 던져 경제 전반이 혼란스러웠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재계는 트럼프가 중국, 멕시코 등 일부 국가들을 겨냥해서 강행할 관세정책을 우려하고 있다. 높은 비율의 관세를 매겨야 하는 국가 중 하나로 우리나라를 지목하게 되면 대미 수출 규모가 상당한 우리 기업들로선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어서다. 이는 곧 국가경제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있다.

가장 떨고 있는 곳이 철강업계다. 트럼프는 1기 때 비상식적 수준의 고관세를 철강에 부여했는데, 이번에도 자신이 당선되면 자국의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산 철강에 60%의 고관세율을 적용하겠단 입장까지 밝혀 우리 철강 기업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는 철강에 대해서만큼은 이런 기조를 접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어서 우려를 더욱 키웠다.

트럼프의 정치적 고향 또는 제2의 고향으로 불리는 플로리다주는 한때 탄광이 활발히 운영됐고, 석탄 사업도 성황리에 이뤄졌다. 하지만 미국의 철강산업이 힘을 잃으면서 철을 녹이는 데 쓰는 석탄의 사용량이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플로리다주의 많은 광산이 문을 닫았다. 광부들은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로 내몰렸다. 이를 주목한 트럼프는 플로리다주의 실직자들로부터 지지를 얻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확립해 왔다. 이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2기에서도 철강에 대해 고관세 정책을 유지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우리 재계가 트럼프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는 사이, 미국 대선의 판도는 8월 들어 완전히 뒤집힌 분위기다. 해리스 부통령이 조 바이든의 바통을 이어받고 민주당이 그를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한 8월 3일 이후 지지율 조사에서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를 두고 많은 외신은 '돌풍'이라고 표현했다. 현지 시간으로 7월 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발생한 '암살 미수' 사건 이후 지지율을 급격히 올리며 조금 이른 '대관식'을 하는 듯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세는 완전히 꺾인 것으로도 보인다.

해리스 돌풍에 필요해진 '벼락치기'

미국 CBS뉴스와 여론조사업체 '유거브'가 7월 30일부터 8월 2일까지 유권자 31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4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선 해리스 부통령이 전국 단위 지지율 50%로 트럼프 전 대통령(49%)을 오차범위(±2.1%) 내에서 앞섰다. 초박빙의 승부가 이어지는 가운데서 승부의 추가 아주 조금은 해리스 부통령 쪽으로 기운 것으로 읽히는 결과다. 바이든과 트럼프, 고령의 대통령 후보 간 충돌로 적지 않은 피로감을 느껴온 젊은 지지층은 물론, 트럼프의 성추문 사건에 학을 뗀 여성 유권자들이 해리스 부통령을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다는 분석이 이 조사 결과와 함께 현지 외신들로부터 나왔다.

이는 우리 재계가 해리스를 '벼락치기'로 공부해야 할 시점에 놓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재계는 해리스 부통령의 과거 행보를 돌아보며 그가 당선됐을 때의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일단 해리스 부통령은 당선 시 저소득 근로자, 여성, 소상공인, 중산층 가족에 정책의 방점을 찍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미국 현지에 공장을 두고 있거나 짓고 있는 우리 대기업들 사이에선 특히 노동조합 이슈가 적지 않게 거론되고 있다. 미국에선 최근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지급의 비공식적 조건으로 '노조 설립'을 달았고, 반도체기업들의 노조 설립 움직임이 적지 않다.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될 시 이런 흐름이 더 강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앞서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은 2022년 9월 반도체 기업들에 보조금 527억 달러(약 72조 원)를 풀겠다고 발표하면서 "노조 설립을 돕는 업체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후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보조금 61억400만 달러(약 8조 원)를 지원받기로 한 뒤 미국통신노동자협회(CWA)와 뉴욕 북부 클레이시 공장이 건설되면, 이 공장에 노조를 설립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 마이크론이 노조 설립을 확정하면 미국에 공장을 짓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고, 같은 주 오스틴시에서도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는 SK하이닉스 역시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외에 해리스 부통령의 검찰 근무 이력도 변수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1990~2011년 검사로 일했고, 2011~2017년 같은 주에서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지낸 이력을 바탕으로 기술 유출 범죄, 독과점 등 각종 경제범죄 처벌 이슈에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 선거 유세, 각종 연설 등에서 이런 가능성이 읽힌다.

불법에 엄격하고 환경에 민감한 해리스

민주당과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를 성범죄자, 사기꾼 사업가 등 불법행위를 수차례 저지른 인물로 규정하며 대선 경쟁 구도를 '범죄자 vs 검사'로 몰고 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 구도를 바탕으로 당선되면 실제 국정 운영에서도 같은 색깔을 보일 수도 있다. 미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기업들도 해리스 부통령의 '정의 구현'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그때는 우리 기업들도 예외가 될 순 없다. 미국에서 범죄를 일으킨 우리 기업들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단죄할 수 있어 재계에 "미국에 수출, 영업 행위를 할 때는 법률 이슈 검토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리스 부통령이 그간 청정에너지와 환경 정의를 우선순위로 둔 점도 우리 기업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으로 꼽힌다. 미국 외신에 따르면 그는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 지속해서 청정에너지를 위협하는 석유 재벌들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다. 지난해 국제 기후 협상에선 녹색기후기금에 30억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했고, 기후에 초점을 맞춘 첫 연설도 했다.

또 부통령으로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납 파이프 및 납 페인트 교체 프로그램 등 오랜 환경 정의 문제를 다루는 환경보호청 정책 출시에도 관여해 환경 정의 실현에 적극적이었다. 해리스 부통령 당선 시 바이든 정부 시절 탄소 배출 문제,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생산, 관련 제품 판매를 고민해 오던 우리 기업들로선 이런 노력을 지속해 나갈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우리 재계가 주목해야 할 부분으로 해리스 부통령 당선 시 대미 무역 및 사업을 하기가 까다로워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형민 아시아경제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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