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묘도 ‘우울증’에 걸립니다

최인영 러브펫동물병원장 2024. 9. 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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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영의 멍냥대백과] 식욕 잃은 채 사료 거부하고 ‘그루밍’ 안 하는 것이 대표 증상

※ 반려동물에게도 ‘올바른 양육’이 필요하다. 건강관리부터 문제 행동 교정까지 반려동물을 잘 기르기 위해 알아야 할 지식은 무궁무진하다. 반려동물행동의학 전문가인 최인영 수의사가 ‘멍냥이’ 양육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이번 글에서는 제가 진료를 본 적 있는 한 반려묘 얘기를 먼저 해볼까 합니다. 흰색과 회색 털이 어우러진 랙돌 품종에, 유난히 깔끔하고 새침한 성격을 가졌던 '크림이'에 관한 얘기입니다. 어린 시절 크림이는 아주 밝은 반려묘였습니다. 남들이 자신을 예뻐하면서 구경하는 것을 즐기는 스타일이었고, 특히 보호자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죠. 그러다 크림이가 4세가 되던 해, 크림이 보호자가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안타깝게도 보호자는 며칠 뒤 사망했고, 그때부터 크림이 성격이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급격한 환경 변화, 정신적 충격이 원인

사람과 마찬가지로 반려묘도 우울증에 걸린다. [GettyImages]
보호자가 떠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크림이는 한동안 보호자를 애타게 찾으며 울기를 반복했습니다. 아무리 울어도 나타나지 않는 보호자를 그리워하면서 깊은 우울감에 빠졌죠. 사망한 보호자 말고 함께 사는 다른 보호자가 있긴 했지만, 이 보호자는 반려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어 크림이가 원 보호자에게 하던 대로 무릎 위에 올라가거나 곁에 다가가 앉으려고 하면 귀찮아하면서 혼을 냈습니다. 이후 크림이는 사료를 먹거나 화장실을 갈 때 빼고는 소파 구석에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자기 몸을 단장하는 그루밍을 하지 않아 털이 마구 엉켰고, 시간이 더 지나면서는 식욕도 완전히 잃어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날도 많았습니다. 극도로 소극적이고 어두워진 크림이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보호자는 결국 크림이를 병원에 데려왔습니다.

일주일간의 펫캠 영상 기록을 확인한 저는 크림이에게 '우울증' 진단을 내렸습니다. 크림이네 집은 다묘 가정이었으나 영상 속 크림이는 다른 반려묘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사료를 거부해 심하게 말라 있었으며, 그루밍 같은 기본적인 몸 관리조차 하지 않는 전형적인 우울증 증상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반려묘 우울증이라니 아마 좀 생소하게 느껴질 텐데요. 반려묘 역시 사람처럼 우울증을 앓습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까운 이의 죽음 같은 급격한 외부 환경 변화, 큰 정신적 충격 탓에 우울증을 겪는 거죠. 통상 보호자가 반려묘 우울증을 눈치 챌 때쯤이면 이미 증상이 상당히 진전된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반려묘가 영향받을 만한 중대 사건이 집안에 있다면 이후 활동량, 식욕(식사량), 배변 상태, 수면 시간 등 반려묘 일상생활 변화를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반려묘 우울증이 의심된다면 일단 수의사와 상담을 통해 반려묘 일상에 다시 자극과 활력을 줄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보호자가 반려묘와 함께하는 시간을 평소보다 늘리고, 집 안에 재미 요소를 많이 배치해야 하는데요. 가령 반려묘가 사료를 거부한다면 밥그릇까지 '고양이 터널'을 연결하거나, '푸드 퍼즐'을 통해 재밌게 사료를 먹을 수 있게 하는 등 여러 시도를 해야 하는 거죠. 바깥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반려묘 특성을 고려해 캣타워 위치를 창가로 옮기거나, 반려묘가 쉬는 공간에 캣잎과 마타타비(개다래나무)를 뿌려주거나, 반려묘용 TV 프로그램을 틀어주는 것도 괜찮습니다. 또 보호자가 바쁘다면 우울증 진단을 받은 반려묘가 하루 종일 혼자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반려묘를 대신 돌봐줄 가족이나 이웃, 펫시터를 찾아보기를 권합니다.

은신처 제공해 스트레스 풀어줘야

반려묘 스트레스 관리에는 은신처 제공이 중요하다. [GettyImages]
반려묘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반려묘가 숨을 수 있는 '은신처'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집 안 구석진 공간에 상자나 동굴형 쿠션 등을 놓아주면 되는데요. 은신처가 필요한 이유는 반려묘 특성상 이런 공간에서 외부 소음이나 충격, 집 안 다른 반려동물 등으로부터 차단된 채 혼자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입니다. 반려묘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은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중 어느 때나 생기고, 거기에 모두 대처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집 안 곳곳에 은신처를 만들어두고 반려묘가 그곳에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반려묘 우울증은 반려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질병입니다. 가족의 사망, 이혼, 이사, 질병 등 사람을 우울하게 하는 것은 반려묘에게도 큰 스트레스가 됩니다. 사람의 경우 그런 상황을 예상하거나 이해할 수라도 있지만 반려묘는 그렇지 못해 몇 배는 더 큰 충격에 빠지게 되죠. 또 아무리 사소한 스트레스 요소라도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시간이 길어지면 평소 밝고 사회성이 좋던 반려묘도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격으로 바뀔 수 있고, 나아가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 반려묘가 우울증으로 의심되는 증상을 보인다면 반드시 수의사에게 상담 받기를 권합니다. 수의사와 함께 원인을 파악해 제거해 나가는 게 좋지만, 만일 그럴 수 없다면 보호자와 더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반려묘가 스트레스로부터 관심을 돌리도록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최인영 수의사는…
‌ 2003년부터 수의사로 활동한 반려동물 행동학 전문가다. 현재 서울 영등포구 러브펫동물병원 대표원장, 서울시수의사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 '어서 와 반려견은 처음이지?'가 있다.

최인영 러브펫동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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