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나쁜 소식 전하기’ [뉴스룸에서]

이정훈 기자 2024. 9. 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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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훈 | 사회정책부장

‘나쁜 소식 전하기’.

2일부터 시작한 의사국가시험 실기 과목 가운데 하나다. 예년의 10분의 1에 그친 응시생들은 환자에게 중병 통보나 향후 치료 계획 등을 얼마나 잘 알리는지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 시험을 보며 모의 환자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충격을 호소하고, 남게 될 가족 걱정을 하소연하면 학생도 덩달아 눈물범벅이 되기도 한다. 연기인 줄 알면서도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며 공감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29일 국정브리핑에서 밝힌 의료개혁 의지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나쁜 소식이었다. 8개월째로 접어든 의료공백으로 수술을 못 받고 있는 환자나 그럴 신세가 될까 걱정하는 시민들의 마음과 동떨어져 있었다. 나쁜 소식을 전하는 방식마저도 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표하는 대신 자신의 입장만을 강변했다. 그는 추석 연휴 의료 대란 우려에 “비상 진료 체제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의료 현장을 한번 가보시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 특히 지역의 종합병원 등을 가보시라”고도 했다.

바로 다음날 정반대 사례가 나왔다. 119 구급대원들은 국회에서 ‘응급실 뺑뺑이’ 영상을 공개하며 위급한 응급실 상황을 전했다. 한 영상에선 한 뇌졸중 환자가 상태가 심각해 2차 병원에서 상급종합병원으로 옮겨가야 했지만 거절당했다. 응급실 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 끝내 심정지 상태까지 이르러서야 겨우 수용됐다. 조금만 귀 기울이면 급박한 위기에도 응급실에서 거절당한 이웃의 사례는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의료공백 장기화로 응급실 진료 축소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고 환자들의 고통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예전에도 그랬다”며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다. 응급의학 등 필수의료 전문의가 늘 부족해 ‘응급실 뺑뺑이’가 있었고, 이 때문에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등 개혁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전공의가 떠나고 남은 전문의들이 의료 현장을 지키다 이젠 녹초가 돼 이들마저 떠났거나 떠나려고 한다. 이로 인한 고통은 오롯이 시민들의 몫이다. 이를 두고 ‘사회 구성원을 대상으로 문해력과 청력을 시험하던 정부가 이제는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는 평가(시민건강연구소)가 나온다.

현실에 대한 인정과 사과는 대통령이 아닌 아래에서 나왔다. “사고들이 빈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 그사이 윤 대통령 지지율은 8월 5주차에 29.6%(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리얼미터 조사)로 취임 이후 두번째로 낮았다. 같은 기관 조사에서 2022년 8월 4주차 29.3%를 기록한 이후 2년 만의 20%대 지지율이다.

윤 대통령은 의료개혁을 “대한민국 어디에 살든지 어느 지역이나 관계없이 차별받지 않고,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이 공정하게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또 “개혁 과정은 험난한 여정”이라며 “쉬운 길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난관에 봉착한 개혁을 스스로 더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지경이다.

모든 개혁이 국민의 공감을 얻어야 가능하지만, 윤 대통령이 내건 ‘4대 개혁’(연금·노동·교육개혁과 의료개혁)은 더욱 그렇다. 27년 만에 의대 증원을 했다지만 여전한 후폭풍은 개혁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개혁은 대통령이 고난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말만으론 이룰 수 없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에도 ‘설득’을 강조했다. 그는 2020년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검사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설득”이라며 “자신의 생각을 동료와 상급자에게 설득해 검찰 조직의 의사가 되게 하고, 법원을 설득해 국가의 의사가 되게 하며, 그 과정에서 수사 대상자와 국민을 설득해 공감과 보편적 정당성을 얻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그 말을 스스로가 실행해야 한다. 환자를 붙잡은 의사들의 인질극에 못지않은 정부의 인내심 테스트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책 ‘3분 진료 공장의 세계’를 펴낸 의사 김선영은 ‘나쁜 소식 전하기’ 과목을 가르치면서 눈물을 보인 학생들에게 ‘오늘의 눈물을 기억해낼 수 있다면, 더 좋은 의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도 환자와 시민의 눈물을 기억해 공감을 이끌어내야 험난한 여정 끝에 개혁을 이룰 수 있다.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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