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디폴트옵션 30조…"'알아서 척척' TDF 제도 개선해야" [이슈+]
TDF 선택 '위험도→연령' 전환 목소리 나와
몸집은 불어나는데 상품 기능 제한적
"TDF 빈티지, 가입자가 선택" 의견도
노동부 "현재 금융 환경서 어려움 커"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운용지정제도)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금융투자업계에서 상품 포트폴리오에 포함되는 타깃데이트펀드(TDF) 관련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디폴트옵션에서는 가입자의 투자 성향에 따라 위험도 선택만 가능해 생애 주기에 맞춰 운용되는 TDF 본연의 기능이 제약되고 있는 만큼 예상 은퇴 시점을 가입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권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지난해 말 12조5520억원에서 올해 2분기 말 기준 32조9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올해 들어서만 두 배 이상 증가해 제도 시행 1년 만에 30조원을 넘어섰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별도의 투자 지시를 하지 않아도 사전에 지정한 상품으로 적립금을 자동 운용하는 제도다.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이 대상이다. 그동안 가입자들이 원리금 보장 상품에만 투자하고 방치해 수익률이 저조하자 정부가 지난해부터 이 제도를 도입했다.
이처럼 적립금은 해마다 수십조원씩 몸집을 불리고 있지만,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상품 선택권에는 일부 제약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디폴트옵션은 가입자의 투자 성향에 따라 △고위험 △중위험 △저위험 △초저위험 등 4개의 위험도를 기준으로 선택할 수 있다.
문제는 디폴트옵션 포트폴리오 구성 상품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TDF가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TDF는 생애 주기 관점에서 운용된다. 가입자의 예상 은퇴 시점에 맞춰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주식과 채권 비중을 다르게 가져가는 전략을 보인다. 예를 들어 현재 가입자가 은퇴 시점을 30년 후로 계획하고 있다면 'TDF 2055'를 선택하면 된다. TDF 뒤에 붙은 숫자가 예상 은퇴 시점(빈티지)을 의미한다.
특히 TDF는 은퇴 시점이 다가올수록 적립식보다 일시금 투자 효과가 크게 나타나도록 설계돼 있다. 조만간 은퇴를 앞둔 상황에서 주식시장에 예상치 못한 충격이 발생할 경우 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적립금과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입자의 예상 은퇴 시점을 가장 정확히 반영한 TDF를 선택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현재 디폴트옵션에서는 위험도만 선택할 수 있는 탓에 가입자가 예상 은퇴 시점에 맞는 TDF를 고르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예를 들어 '우리은행 디폴트옵션 중위험 포트폴리오2'를 선택할 경우, 이 안에 담긴 '미래에셋전략배분TDF2035'와 'KB온국민TDF2035'로만 자산이 운용된다. 이 TDF들은 예상 은퇴 시점이 2035년으로, 30대가 이 상품을 선택했어도 50대에 맞는 자산 배분 전략이 실행되는 셈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가입자가 위험도뿐 아니라 TDF의 예상 은퇴 시점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TDF는 은퇴 시점에 가까워질수록 안전자산인 채권 비중을 높여 위험량을 낮추도록 설계된 상품"이라며 "지금의 디폴트옵션 제도에서는 그러한 상품 특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TDF는 은퇴 시기를 설정하면 나이대에 맞춰 자금을 운용하기 때문에 가입자가 본인의 빈티지를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바꿔줘야 한다"며 "현재 디폴트옵션에서는 TDF도 투자 성향으로 매칭했기 때문에 가입자가 본인 빈티지에 맞는 상품을 고를 수 있게 일정 부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우리나라의 금융 환경에서는 TDF 빈티지를 별도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설명이다. 가입자들의 근속 연수가 짧을 뿐만 아니라 이직 이후 처음 선택한 상품을 계속 가져갈 수 있는 시스템도 부재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TDF 빈티지를 따로 선택할 필요가 있다는 업계 의견이 있어 사업자들과 논의하고 있는 중"이라면서도 "중장기적으로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한국은 한 기업의 근속 연수가 6~7년 정도에 불과하고, 처음에 선택한 TDF를 타깃데이트까지 계속 가져갈 수 있는 실물 이전 등의 금융 시스템도 조성돼 있지 않다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그는 "투자 성향은 중위험이나 저위험인데 퇴직 시점이 많이 멀었다면, TDF 빈티지를 높은 것으로 선택해야 한다"며 "이 경우 주식 비중이 높아져 고위험으로 분류될 수 있고,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적합성 원칙에 위배되는 이슈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정삼 한경닷컴 기자 js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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