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글쓰기는 와글와글한 것” 안담 작가의 ‘텍스트’로의 초대

임지영 기자 2024. 9. 5.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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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표정〉은 안담 작가의 세 번째 책이자 첫 번째 책이다. 글을 쓰고 글방을 운영하며, 때때로 연극을 하고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그가 요즘 주력하는 건 글쓰기다.
8월13일 <시사IN>을 방문한 안담 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낮 최고기온이 35℃였다. 노트북을 비롯해 바리바리 가방을 싸는 편인 안담 작가도 이날은 노트 한 권만 챙겼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그의 손 위치가 자연스러웠다. 보통은 사진 찍을 때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다. 가끔 연극배우가 되기도 하는 그는 무대 위에 선 배우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의 경력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우스운 것은 무대에서, 슬픈 것은 글에서 다룬다’는 작가는 요즘 ‘은평구의 개 산책자’로 자신을 소개한다. 개가 탈이 난 후부터는 산책을 피한다는 한낮, 〈시사IN〉 편집국에서 안담 작가를 만났다.

최근 출간한 〈친구의 표정〉은 그의 세 번째 책이자 첫 번째 책이다. 공저자로 참여한 〈엄살원〉은 ‘최초의 책’이고 단편소설 〈소녀는 따로 자란다〉는 ‘최초의 소설’이다. 이번에는 ‘최초의 내 책’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스스로 산문을 본진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글방을 운영하며, 때때로 연극을 하고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안담 작가가 요즘 주력하는 건 글쓰기다. 편집국 곳곳에 붙은 ‘기사 마감은 목요일이 아닙니다. 수요일입니다’ 문구를 보며 자신의 마감도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는 걸 상기했다.

안담 작가의 책 <친구의 표정>.

지난해 6월부터 7월까지 진행한 동명의 메일링 서비스가 책의 몸통이다. 친구, 동물, 글쓰기, 페미니즘, 비거니즘, 몸 등 평소 작가와 가깝게 닿아 있는 주제가 담겼다. ‘이 책의 발원지는 친구들이다. 그리고 이 책은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잘 넘어지는 사람이 친구들에게 기대어 쓴 글을 모았다(프롤로그 중).’ 여러 주제로 뻗어나가는 글들의 뿌리는 ‘실패’다. 다만 스스로는 실패라 부르지 않는다. “어떤 관계의 성공과 실패를 최종적 결과로만 판단하게 되면 괴로워진다. 삶을 다 살고 나서야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판가름할 수 있다면 결과물은 관에 들어가기 전에나 말할 수 있으므로 거의 모든 경험이 실패의 경험일 수밖에 없다. 성공을 낳기 위한 실패는 아닐 수 있지만 뭔가 하려다 잘 안 된 얘기가 많고 그게 나로서는 중요한 경험이다. 실패라고 썼다가 더 구체적인 몸의 감각이 들어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넘어지기’라고 단어를 바꿨다.”

코미디, 연극,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것 같지만 ‘텍스트 기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에세이와 소설도 작가에게는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예 근본이 다른 장르일 수 있지만 내게는 화자의 신상 정보가 나와 동일할 때 잘 쓸 수 있는 글이 있고 그렇지 않을 때 더 잘 쓸 수 있는 글이 있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다. 스탠드업 코미디도 즉흥성이 중요하나 대본을 바탕으로 추임새까지 다 계획되어 있다. 글 쓰는 일과 멀지 않다.”

지난해, 초등학생 여자아이를 화자로 한 작가의 소설 ‘소녀는 따로 자란다’가 온라인에 공개되었을 때, 독자의 열렬한 반응이 있었다. 소설 속에서 여자애들은 ‘나’와 친구가 되지도, 다투지도 않지만, 모두 한 번씩은 비밀을 말하기 위해 찾아왔다. 독자들은 “섬뜩할 정도의 묘사에 교실 마룻바닥 위에 터진 우유 냄새가 떠올랐다” “마치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라는 소감을 비롯해 각자 자신의 ‘시절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어느 순간, 이야기가 소설을 넘어섰다. “사실은 아무도 졸업하지 않은, 어떤 시기를 의도치 않게 건드렸던 게 아닌가 싶다. 한 반에 30명이 있다면 한 명만 느끼고 있던 감정은 아닌가 보다고 이해했다. 그런 반응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건 좋은 일이었지만 그게 얼마만큼이나 내 글에 기반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시점부터 더 이상 내 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글이 통로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 글 쓰실 분들이 많겠다고 생각했다.”

글방을 차릴 때, 책 한 권 안 낸 사람의 글쓰기 수업을 누가 들으러 올까 걱정돼 ‘힘주어’ 작성했다는 그의 프로필은 이렇게 시작한다. ‘1992년 서울 서대문에서 태어났다. 봉고차를 타고 전국을 떠돌다가 강원도 평창에서 긴 시간 자랐다.’ 어릴 때는 누군가 빈집을 소개해주면 거기 조금 살다 또 저기 조금 사는 식으로 지냈다. 캠핑 장비, 이동식 변기가 항상 실려 있던 차가 가장 집의 형태에 가까웠다. 그에게는 좋은 기억이지만 부모인 ‘젊은 부부’에게는 힘든 나날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터를 잡았고, 거기서 제일 오래 살았다.

“모든 예술은 관계적인 일이다”

봉평의 중고등학교는 한 반에 17명씩 두 개 반 정도로 인원이 적었다. 십대 시절 대안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는 간디학교, 산돌학교 등 창의적인 실험을 하고 있던 학교들에 대한 소식을 책으로 접했다. 그러다 대안적인 진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서울의 ‘하자센터’를 알게 되었다. 봉평에 오래 살았어도 10년 내내 전학생으로 불린 그는 부모의 근거지였던 서울에 대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서울 지하철에 타는 순간 깨달았다. ‘이 도시가 나에게 친절하지 않구나.’ 하자센터에 갔더니 ‘이상한 사람’이 많았는데도 편안했다. 어떻게 하고 다녀도 시선이 따갑지 않았다. 그렇게 서울에 다니느라 학교 수업에 자주 빠져 선생님에게 불려갔다.

하자센터에서 글쓰기 수업을 만났다. 수업은 ‘어딘 글방’으로 이어졌고 거기 모인 사람들과 글을 쓰고 비평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만난 친구들은 ‘못 쓴 글’을 서로 견뎌준 사이다. 양다솔, 이길보라, 이다울, 이슬아, 하미나 같은 작가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그의 글에는 글 쓰는 친구들이 실명으로도 등장한다. 안담 작가는 “연극을 하든 글을 쓰든 글방을 하든 그 과정 중에 생겨나는 상념을 나누고, 사유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을 만큼 이야기를 핑퐁하는 친구들이 늘 있었다. 그래서 내게 모든 예술은 엄청나게 관계적인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8월13일 <시사IN>을 방문한 안담 작가가 포즈를 취하다 웃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인용을 ‘당하는’ 연습도 그 관계 안에서 이루어졌다. “너도 쓰고 나도 쓰고 대칭이 되었으니 불만 없지 않나, 이렇게 여긴다는 게 아니라 인용되기는 연습을 해야 할 만큼 엄청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다. 친구들은 발원지이기도 하지만 삶에서든 이야기에서든 미래 나의 자원이기도 하다.” 우정이나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약간의 죄책감이 있다. 특권적인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나 같아도 마음이 어두울 때 들으면 박탈감을 느낄 것 같다.”

누군가에게 박탈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어딘 글방’에서 배웠다. “누가 질투한다면 질투하는 사람의 문제라고 치워두지 않고 그걸 관계에서 발생한 어떤 문제적인 사건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같이 배웠다.” 사람을 챙기는 것도 글방지기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밥을 대접하는 일의 중요성도 이때 알았다. “동물권 개념을 끌고 들어오지 않아도 식탁이 정치적인 장이라는 것을 아주 어릴 때부터 배웠다.”

안담 작가에게 글쓰기는 그렇게 ‘고독의 예술’이 아니라 ‘와글와글’한 일이었다.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피드백을 주고받고 밥을 먹고 신상에 대한 수다도 떨어가면서 하는 게 글쓰기였고 그런 훈련에서 얻은 게 많은 만큼 다른 사람과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오랫동안 논술 학원에서 일하면서 논술을 좋아하면서도 사교육에 몸담고 있는 데 대한 피로감이 있었다. 좋아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했다. 2021년부터 무늬글방을 열어 쓰고 읽고 말하는 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지금은 경로가 다양해졌지만 초반에는 이슬아 작가의 추천으로 오는 이들이 많았다. 주로 2030 여성이다. “출판계가 독자로 염두에 두는 어떤 층과 거의 동일할 것”이라 짐작한다.

스스로에게 ‘덜’ 너그럽기 위하여

이번 책에 실린 글은 동물권과 비거니즘에서 출발했지만 도착 지점이 그보다 멀었다. 프롤로그에서 그는 밝힌다. “우리가 자신에게 더 너그러워야 한다는 입장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고, 종 단위에서 인간이 인간의 사정만을 지나치게 이해했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들 앞에 심각한 두려움을 느낀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우리에게 덜 너그러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썼다.” 활동가 손님을 한 명씩 초대해 비건 만찬을 차려냈던 엄살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가난하고 지친 와중에 비거니즘까지 실천해보려는 여자들”에게 밥을 해주고 싶었던 게 시작이다. 손님은 밥을 먹고 엄살을 부리면 되었다. 음식 앞에서 그들이 꺼내놓은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밥이 이 이야기의 값을 치를 수 있을 만큼 맛있을까’ 불안했다.

2022년 8월 ‘코미디캠프: 파워게임’에서 공연하고 있는 안담 작가와 반려견 무늬. ⓒ지금아카이브 제공

무늬라는 이름도 자주 등장한다. 안담 작가와 함께 사는 개의 이름이다. 데려올 때 고집스럽게 무늬를 ‘친구’라고 명명했지만 지금은 스스로를 ‘엄마구나’ 깨끗하게 인정한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밖에 나가 1~2분만 지나도 까만 털 부위가 뜨거워진다. 산책을 다니며 개와의 산책이 얼마나 평화롭지 않은 행위인지 깨달았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리의 타인과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일이라 처음에는 경계심을 많이 가졌다. “가슴속에 억울함이 자랐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 다들 각자 최악의 하루를 보내는 중일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을 상상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내가 이 개를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미움이 자라는 게 느껴지더라.” 작가와 분리되면 불안을 느끼는 무늬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함께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코미디 캠프: 파워 게임’이라는 제목의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이다. 거기서 작가가 좋아하는 대목의 대사는 이렇다. “사랑이 뭔가를 확장시켜준다고 생각하시죠?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편협하게 만들고 사람을 미워하게 만듭니다.”

본진이라는 에세이에 대한 생각도 밝힌다. 에세이는 작가가 경험한 일을 적은 글이고 독자도 글의 화자를 작가의 자아와 일치시키지만 과연 그럴까. 안담 작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경험을 문자로 옮기는 순간에 뭔가는 소실되고 뭔가는 창조된다. 심지어 월드컵 공원에 간 뒤에 ‘월드컵 공원에 갔다’고 쓰더라도 그게 있는 그대로를 쓴 것인가 하는 생각은 늘 있다. 내가 문장을 경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비언 고닉(미국의 에세이스트)처럼 ‘짬’이 충분히 차서 고약하게 말할 수 있으면 ‘나는 거짓말쟁이다’ 이렇게 말하겠는데 아직 그렇게까지 단언할 수는 없고, 어쨌든 글을 쓰며 이 글이 원하는 바를 감지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는 그래서 정직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긴 시간 평창에서 자란 안담 작가는 몇 차례 이사를 거쳐 이제 서울 은평구에 산다. 팬데믹을 지나며 많은 프로젝트를 온라인과 병행하게 되었지만 그의 집은 여전히 엄살원이자 무늬글방이고 눈뜨기 연습실(아침에 눈뜨기를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위한 연습실)이다. 손님 대접하는 게 좋아서 요즘도 친구들을 불러 맛있는 밥을 해준다. 그의 집도, 그의 작업도 ‘와글와글’하다는 면에서 서로 닮았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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