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만 되면, 죽어서 병원가라?" 반발 산 차관…尹 응급현장 방문도 동행
응급의학과 전공의였던 박단 "개탄한다…소생가능 중환도 사망후 병원가란 셈"
직접 응급실 내원한 환자도 중증 드러나…"진단이 간단? 차관 망언" 입모은 의협
윤석열 정부표 의료개혁 실세 격인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환자 본인이 (중·경증 여부를) 전화해서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란 것 자체가 경증"이라며 추석 연휴기간 응급실 이용 자제를 주장하자, "결국 (중증 규명 이전) 소생 가능한 환자에게 지금이 아니라 사망한 후에 병원에 가란 것"이란 질타가 나왔다.
전공의단체 대표인 박단(34)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4일 오후 페이스북에 박민수 차관의 당일 MBC라디오 출연 발언 보도를 공유하면서 "개탄한다. '머리가 아프다, 가슴이 답답하다'며 응급실에 걸어들어오는 환자는 정말 많다. 그중 진단 결과 뇌출혈, 심근경색인 경우는 정말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일부는 죽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단 비대위원장은 지난 2월 윤석열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등 의료패키지 정책 강행에 반발해 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에서 사직한, 응급의료 당사자였다. 그는 "내원 당시 그들(뇌출혈·심근경색 사망자)은 전화를 할 수 있었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왔다면 살았을지도 모른다"며 "증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의심조차 어려운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전공의 1년차 때 주로 치통을 호소하며 내원했던 고령 여성의 사례를 들었다. 의식이 명료했고, 걸어서 내원했고, 원인을 알기 어려운 증상을 호소했는데 각종 검사 결과 "CT 상 '대동맥 박리'가 확인돼 흉부외과 전공의에게 연락을 했고, 환자는 곧장 수술실로 올라갔다"며 "당시 집요하게 파고들지 않았다면 그 환자는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차관의 분류법대로라면 응급실을 찾을 필요가 없는 경증이겠지만, 의학적 진단 결과는 예측불허란 것이다. 박 비대위원장은 해당 환자가 사망했을 경우 "그랬다면 환자 가족들은 소송을 제기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사법리스크를 자조한 한편 "차관의 말은 결국 소생가능한 환자에게 '지금이 아니라 사망한 후에 병원에 가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진단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전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중증과 경증을 나눌 수 있다면 트리아지(Triage)라는 '응급환자 분류 체계'는 물론 6년(예과 2년·본과 4년)의 의과대학 교육과 5년의 응급의학과 전공의 수련 과정 역시 불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차관에게 "당신의 가벼운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죽음을 가져오게 될지" 무겁게 반성하라고 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2020년 서울역 노숙인 진료소 근무 시절 서울시청 공무원과의 마찰을 계기로 "노숙인도 사람이다. 사회적 약자랍시고 숫자와 통계로, 당신들의 실적으로만 보지 마라"고 메모한 과거도 전했다. 관가(官家)를 향해선 "대통령에게 보고할 숫자를, 국민을 호도할 통계를 예쁘게 정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환자를 당신의 실적으로만 보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 기자회견에서 응급의료 위기 우려에 "의료 현장에 가보시라"고 받아쳤던 것도 상기시켰다. 같은 날 대한의사협회도 입장을 내 박 차관을 '망언' 주체로 꼽으며 "경·중증 판단은 의사들도 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실제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이 경증으로 진단받았다가 추가 검사로 중증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의협은 "전화 사실만으로 경증을 판단할 수 있다면 의사들은 (트리아지에 따른) '레드 플래그 사인'(위험신호)을 왜 공부하겠나"라며 "'전화로 쉽게 경·중증 판단이 가능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면 현재 국정운영 상태가 중증"이라고 규탄했다. 한편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국정브리핑 엿새 만인 4일 심야 경기도의 한 권역응급의료센터 의료진을 만났고, 박 차관이 동행해 입지를 재확인한 양상이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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