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양치기 소년'과 표현의 자유

김주동 국제부장 2024. 9. 5.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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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은 거짓말로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다. 동네 사람들이 그를 도우러 달려갔지만 헛걸음이었다. 이후 거짓말이 반복됐고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는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소년은 양들을 잃었다. 거짓말의 자유(?)를 즐긴 대가를 치른 셈이다. 거짓의 수위가 더 높았다면 어땠을까.

1919년 미국의 한 판결에서 나온 비유는 아직도 종종 언급된다. 1차 세계대전 때 국가의 징병에 대해 평화적 불복종을 권유한 전단지를 배포했다가 간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표현의 자유'(수정헌법 제1조 근거)를 주장했다.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사는 사람 많은 극장에서 허위로 "불이야!" 외치는 것은 헌법에 의해 보호받지 않는다고 했다. 상황에 맞는 비유였는지를 떠나, 그의 말은 피해를 만드는 행위(표현)는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1910년대 미국의 한 극장에서는 누군가 거짓으로 "불이야"를 외쳐 어린이 수십명 등 다수가 압사한 사건이 있었다.

100년여 전 기소건의 '전단지'나 우화 속 '거짓말' 같은 행위는 이제 소셜미디어에서 많이 이뤄진다. 영향력은 더 크다.

최근 텔레그램 CEO(파벨 두로프)가 프랑스에서 체포되고, X(옛 트위터)가 브라질에서 차단된 일이 잇따라 벌어지자 세계적으로 빅테크의 부작용 문제가 주목받는다. 특히 2년 전 X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가 두 사건 모두에 대해 "표현의 자유 침해"를 주장하며 강하게 맞서자 논란이 커졌다.

4일(현지시간) 영국 로더럼의 한 호텔 밖에서 시위자들이 쓰레기통에 불을 지르고 있다. 2024.08.04. /로이터=뉴스1

두로프 텔레그램 CEO가 받는 혐의는 미성년자 성착취물, 마약 밀매, 사기 등을 공모(방조)했다는 것과 관련 수사에 대한 협조 거부 등 12가지이다. 텔레그램은 부당하다고 반발했지만 그가 예비기소되는 등 파장이 확대된 데다, 한국에서도 딥페이크 성범죄 영상물 문제가 커지자 부랴부랴 관련 콘텐츠를 삭제했다.

X 문제는 결이 좀 다르다. 미국과 똑같은 대선 불복 의회폭동 사건을 지난해 1월 겪은 브라질은 알렉샨드리 지 모라이스 대법관 주도로 공격을 선동하거나 관련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극단 성향의 소셜미디어 글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모라이스 대법관은 올해 4월 X에 전 대통령(자이르 보우소나루) 패배 관련한 허위 정보를 올린 극우 계정들을 삭제하라고 명령했지만, 머스크는 반발하며 따르지 않았다. 벌금은 매일 쌓여갔고 이후 X는 현지 사업장 철수로 추가 대응했다. 모라이스는 법률에 근거해 브라질 내 법률 대리인 선임을 요구했고 시한까지 따르지 않자 서비스를 차단시켰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지난 7월 영국에서 발생한 어린이 3명의 피살 사건 이후 곳곳에서 발생한 반이민 폭력 시위에도 X는 주요 비판 대상이 됐다. 이번 폭력 시위를 자극한 인물로 꼽히는 극우 운동가 토미 로빈슨은 X에 이민자가 이번 살인을 저질렀다는 글을 퍼날랐다. 인스타그램과 달리 X는 앞서 그의 계정을 복구시켰고 그의 팔로워 수는 100만이 넘는다. 일론 머스크는 X에 올라온 시위 영상에 "내전은 불가피하다"고 글을 붙여 영국을 더 자극했다.

대중은 방송이 공정하고, 도덕적으로 옳고, 정확해야 한다고 믿는다. 영향력이 큰 만큼 엄격한 잣대를 대는 게 옳다는 것이 사회적인 판단이다. 이제 영향력 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소셜미디어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명확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 유럽에 올해 2월 디지털 서비스법(DSA)이 시행됐고, 영국에서는 연말 '온라인 안전법'이 발효하는 등 각국이 움직이지만 보완할 부분은 더 생길 것이다.

영국 잉글랜드·웨일즈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도미닉 그리브는 가디언에 "인종, 신념,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폭력을 선동하는 것은 범죄"라면서도 "관련해 증오를 부추기는 행동은 비판할 권리와 선동 사이 회색지대에 있어 수사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늑대가 나타났다"도 상황에 따라 표현의 자유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온라인 활동에 대해 우리도 적절한 안전판을 고민할 상황이다.

김주동 국제부장 news9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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