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 잘 돌아간다`던 尹, 심야 응급실 찾아 "어려움 반영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4일 밤 경기 의정부 성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찾아 "응급실 수요가 많아지는 명절 연휴가 다가오고 있는데 가용한 자원을 가장 우선 투입해 의사선생님들이 번 아웃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며 "필요할 경우 예비비를 편성해서라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정갈등으로 촉발된 의료 대란이 길어지면서 생명이 위독한 환자도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도는 사례가 잇따르고 민심마저 악화하자, 직접 현장을 방문해 진화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저녁 8시50분 쯤 성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해 1시간 20분 가량 머물며 의료진을 격려하고 의견을 들었다. 성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의정부, 양주,동두천, 포천, 연천, 철원 등 의료 취약 지역의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곳이다. 현장에는 박민수 제2차관과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 장상윤 사회수석이 동행했다.
윤 대통령은 병원에 도착해 마스크를 착용한 뒤 한창희 병원장과 최세민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의 안내에 따라 1층 응급센터로 이동해 진료 현장을 둘러봤다. 간호스테이션 앞에 멈춰서서는 근무중인 의료진들에게 "밤늦게까지 수고가 많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병원관계자 및 의료진과의 간담회에서 "응급의료가 필수 의료 중에 가장 핵심인데 국가에서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도와드리지 못한 것 같아 참 안타깝다"며 "헌신하는 의료진에게 늘 죄송한 마음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업무강도가 높고 의료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필수의료에 대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적절한 보상체계가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무엇을 하면 의료진 여러분들이 일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기탄없이 이야기해 달라"고 주문했다.
한 병원장은 "현재 전공의 빈 자리를 채운 교수들의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어 배후 진료에 차질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의료 현장의 어려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의료전달체제를 개선해, 환자 수가 아닌 진료 난이도로 보상받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센터장은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중증 응급환자 위주로 진료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그동안 정부의 수가 정책이나 의료제도가 이런 어려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며 "피부미용이나 비급여 위주인 의원과 비교해 봐도 업무강도는 훨씬 높고 의료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데도 보상은 공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위험, 중증 필수 의료 부문이 인기과가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 개선 등 전폭적인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앞으로 응급, 분만, 소아, 중증을 포함한 필수 의료 인력들에 대해 지원을 의료인들이 느낄 수 있을 만큼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의료인의 법적 리스크나 보상의 공정성 문제도 해결해 소신 진료가 가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이날 응급실 방문은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 발언에서 비롯된 비판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의료현장을 한번 가보시라, 여러 문제가 있지만 비상진료체제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를 두고 현장과 너무 동떨어진 인식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30일 "최근 응급의료 위기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데 대통령은 잘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며 직접 현장을 살펴보길 권했다. 이어 "의사들도 떠나고 배후 진료(응급실 치료 후 진료)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데 응급실이 문을 열었다고 해서 모든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처럼 말하는 건 심각한 정보의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최근 2살짜리 여자아이가 열과 경련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1시간 가량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의식불명에 일도 있었다.
여야 대표의 응급의료현장 방문을 의식해 서둘러서 방문일정을 잡은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후 안암병원 응급실을, 한 대표는 지난 2일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을 방문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여야 대표의 의료기관 방문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전부터 내부적으로 의료현장 방문을 검토해 왔다"며 "지난주 국정브리핑·회견 이후로도 추가로 더 현장을 가자는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의 의료기관 방문은 지난 2월 의료개혁 발표 이후 이번이 9번째"라며 "대통령은 그동안 서울, 경기, 충남, 부산 등 지역의 다양한 의료기관을 방문하며 의료현장을 챙기고 의료진들의 의견을 청취했다"고 부연했다.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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