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칼럼] 일단 지르고 보는 ‘어퍼컷 국정’의 뒤탈

김창균 논설주간 2024. 9. 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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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희 임명 거부 나비효과… MBC 지도부 교체 뻐그러져
불쑥 내민 2000명, 200만원… 의료계 및 軍 혼란 불러
눈앞밖에 못 본 즉흥 결정이 敵 만들고 후유증 남겨
김창균 논설주간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후 경기 수원 팔달구 서호 잔디광장에서 열린 제28회 농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3.11.10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정치적 중립성이 필요한 국가기관의 지도부는 여당 몫, 야당 몫을 나누어 추천받는다. 방송통신위원회도 그중 하나다. 방통위 상임위원 5명 중 대통령이 2명을 지명하고, 나머지는 여당 몫 1명 야당 몫 2명을 국회가 추천한다. 정부 여당에 주도권, 야당에 견제권을 각각 부여하는 숫자 배분이다.

이런 취지에 따르면 작년 3월 야당이 방통위원 후보로 추천한 최민희씨를 대통령이 임명 보류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대통령실은 최씨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통신 사업자 이익을 대변하는 자리를 지내 이해 상충 소지가 있다는 점을 결격 사유로 들었다. 목소리 크고 ‘골치 아픈’ 최씨를 배제하고 싶은 게 진짜 속내였을 것이다. 하염없이 임명이 미뤄지자 작년 11월 최씨는 자진 사퇴했다. 대통령 지지층은 환호했다. 윤 대통령의 강공이 먹혀든 게 뿌듯했고 ‘미운 털’ 최씨가 잘려 나간 것이 통쾌했다.

민주당은 “눈에는 눈” 보복에 나섰다. 과반 의석을 앞세워 자신들의 야당 몫 2명은 물론, 여당 몫 1명까지 국회 추천을 무산시켰다. 방통위 5인 상임위원 체제는 2인 체제로 쪼그라들었다. 행정법원은 “2인 체제는 하자가 있다”면서 2인 체제가 의결한 방문진 새 이사진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방문진이 인사권을 쥔 MBC 사장 교체가 뻐그러졌다.

최씨는 4월 총선에서 당선돼 방통위를 관할하는 국회 과방위원장 자리를 꿰찼다. 그래서 상임위원이 못 된 분풀이를 톡톡히 했다. 오죽 시달렸으면 방통위 직원들이 정신 질환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언젠가 최씨 대신 방통위원 자리를 채울 야당 인사도 최씨 못지않을 것이다. 대통령 입장에서 야당 몫 방통위원 임명을 잠시 퇴짜 놓는 쾌감을 맛본 대가로 MBC의 야당 나팔수 역할을 연장시키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복지부 장관이 새로 임명될 때마다 “손대지 말라”는 충고를 듣는 금기 사항 중 하나가 의대 정원 문제다. 의사들의 반발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400명 증원 방침이 무산되는 것을 목격한 게 불과 4년 전이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2000명 증원”을 발표했을 때 “괜찮을까” 우려했다.

2000명이라는 수치가 어떻게 나왔는지 모두 궁금했다. “이런 회의에서, 이런 논의를 거쳐 결론이 났다”는 과정이 밝혀지면 ‘2000명’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정부는 설명하지 못했다. 대통령 담화에서 “2035년까지 1만5000명이 부족하다. 의사 배출에 10년이 걸리기 때문에 2025년부터 2000명씩 늘려야 한다”고 밝힌 것이 전부다. 국민들은 “2000명은 대통령 머리에서 나온 수치”라고 믿게 됐다. 의정 갈등은 6개월째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당근도 채찍도 로드맵도 없다. 시간이 해결해 주길 기다릴 뿐.” 사태 초기 윤 정부 측 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다.

초급 장교와 부사관들의 이탈이 군(軍)의 큰 걱정거리다. 지난 한 해 동안 1만명 가깝게 군을 떠났다. 역대 최대 수치다. 초급 장교의 70%를 차지하는 ROTC 지원율은 해마다 급감해 정원의 절반도 못 채운다. 윤 대통령 대선 공약인 “사병 월급 200만원”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초급 간부는 사병보다 복무 기간이 훨씬 긴데 월급마저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200만원’은 앞뒤 재보지 않고 불쑥 꺼내 든 수치였다. 그런데도 손본다는 얘기는 안 들린다. 누가 감히 대통령 공약에 토를 달겠는가.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어퍼컷 세리머니를 즐겨 했다. 어퍼컷은 온몸의 힘을 모아 상대 턱을 올려 치는 최후의 일격이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이 결정을 못 하고 좌고우면하면 “그냥 질러”를 외친다고 한다. 결과 걱정은 나중에 하고 일단 밀어붙이라는 뜻이다.

대통령이 서 있는 국정 현장은 상대를 향해 KO 펀치를 날리는 복싱 링이 아니다. 수많은 이해 당사자가 모두 “손해 보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게 고차방정식을 풀어내야 한다. 국민의 특정 집단을 적으로 몰아 일시적으로 승리하면 그 후과를 치르게 마련이다.

심지어 복싱에서도 큰 펀치부터 휘두르며 덤비는 건 초짜들이다. 잽과 스트레이트를 날려가며 상대의 수비 태세를 먼저 흐트러뜨리는 것이 수순이다. 한 방에 때려눕히겠다고 날린 어퍼컷이 허공을 가르면 카운터펀치를 맞고 휘청거리게 된다. 무작정 지르고 본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R&D 예산 대폭 삭감’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등이 어떤 뒤탈이 났는지 국민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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