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의원의 ‘본분’ 따져물은 美 유권자들

워싱턴/이민석 기자 2024. 9. 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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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 부시 미 하원의원이 지난 8월9일 자신의 지역구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열린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 주니어 사망 10주기 추모식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2014년 브라운은 백인 경찰 대런 윌슨의 총격으로 숨졌고, 이후 전국적인 시위로 번졌었다. /UPI 연합뉴스

의원(議員)의 가장 중요한 의무이자 권한은 입법이다. 국민 삶에 도움이 되도록 법을 만들고 고치라고 뽑힌 사람들이다. 최근 미국에서 한 연방의원이 본분을 소홀히 해 유권자들에게 외면당한 일이 있었다. 11월 대선 레이스가 한창임에도 워싱턴 정가의 이목이 집중됐다.

민주당 소속 코리 부시(48) 하원의원은 지난달 6일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하원 선거 후보 경선에서 패배했다. 싱글맘에 노숙자 생활까지 했던 흑인 인권 활동가 출신으로, 2020년 ‘BLM(흑인 목숨은 소중하다)’ 시위를 전면에서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해 당내 경선에서 10선의 거물 현역을 꺾었다. 보수 성향이 강한 미주리주에서 최초의 흑인 여성 연방의원에 올라 현재 재선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급진 성향으로 분류되는 의원 모임 ‘스쿼드’(Squad·집단)의 핵심 일원인 그가 외친 목소리는 강경 일색이었다. ‘흑인을 과도하게 진압하는 경찰 예산을 끊어버리자’고 해 지도부가 “당론이 아니다”라고 해명해야 했고, 바이든 행정부 역점 안건인 인프라법에 반대표를 던져 백악관을 당황하게 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발발 이후론 바이든의 친(親)이스라엘 외교 정책을 정면 비판하면서 당내 영향력을 더욱 키웠다.

‘전국구’로 떠오르던 그의 발목을 돌연 잡은 건 의정 활동 부족이었다. 법안을 대표 발의해 온전히 통과시킨 사례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동료 의원들을 설득하고 협상하는 대신 틈만 나면 거리로 뛰쳐나갔기 때문이다. 4년간 발의한 법안이 25개에 불과했다. 그 중 법안 24개가 폐기됐거나 계류 중이다. 흑인 노예 후손들에게 연방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결의안 11건 중 단 하나도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특히 표결 불참률이 21%에 달했다. 미 의원들의 평균 불참률은 2~3% 정도다. 투표를 하지 못할 경우 불참 사유를 상세하게 작성해 국민에게 공개한다. 어떻게 표결했을지와 그 근거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한다. 의무를 다하지 못한 데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시는 이런 해명조차도 하지 않았다. 남편을 경호원으로 고용해 선거 자금을 유용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황이었다. ‘의원으로서 기본이 안 됐다’는 여론이 지역구에서 강하게 일었고, 결국 밀려났다.

부시 의원이 ‘폭주’ ‘파행’ ‘마비’로 가득 찬 한국 국회의원이었다면 아무 문제 없었을 것이다. 우리 의원들의 표결 불참률은 부시보다도 더 심한 수준이다. 오히려 강성 지지층의 팬덤을 발판 삼아 더욱 인기를 끌었을 수 있다. 민생은 내팽개치고 정쟁에만 몰두해도 승승장구하는 곳이 우리 국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유권자들은 ‘거리의 투사’보다 근본 책무에 충실한 사람을 원했다. 의원의 업(業)은 말다툼이나 몸싸움도 시위도 아닌 의정 활동이라는 걸 보여준 사례다. 의원의 ‘불성실성’을 심판하는 자정(自淨) 능력을 언제쯤 한국에서도 기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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