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열의 경제로] '국민연금 개혁', 눈앞의 정답 두고 왜 돌아가려 하나

허주열 2024. 9. 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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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대표단 의견 존중한 '안'으로 개혁해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정부가 국민연금 보험료율(내야 할 돈)을 현재 9%에서 13%로 인상하는 방안을 담은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했습니다. 국민연금을 120개월 이상 납부한 사람이 (올해 기준) 만 63세부터 받는 돈의 명목소득대체율(가입 기간 평균 소득 대비 연금수령액 비율)은 2028년까지 40%로 하향하기로 한 것을 멈추고, 올해와 같은 42% 수준을 유지한다는 방침입니다. 한 마디로 앞으로 4%P 더 내고 지금과 같은 수준의 연금을 받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 논란의 여지는 더 많습니다.

1988년 정부가 국민들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해 도입한 공적연금제도인 국민연금은 '저부담-고급여' 방식으로 설계돼 재정적 지속가능성에 한계를 안고 출범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1차(소득대체율 70%→60% 하향 및 연금수급 연령 2013년부터 매 5년마다 1세씩 상향, 2033년부터 만 65세부터 수령),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2차 개혁(소득대체율 60%→40% 추가 하향 및 기초노령연금제 도입)이 이뤄졌지만 기금 고갈 시기를 늦추는 미봉책에 불과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연금제도가 유지될 경우 2056년이면 기금이 소진될 예정입니다. 이번 정부안대로 개혁이 이뤄지면, 기금 소진 시점은 2072년까지 연장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최근 몇 년간 저출산 고령화가 정부 예상치보다 더 빠르게 진행돼 이같은 흐름이 지속된다면 기금 소진 시점이 더 빨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난 17년간 '개혁 논의'만 있고, 실제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윤석열 정부가 '단일안'을 내놓으면서 첫발을 뗐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만한 대목입니다.

다만, 목적과 내용 모두 아쉽습니다. 국민연금의 목적은 나이가 들거나, 노년기에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으로 소득활동이 중단된 경우에도 기본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연금의 지급을 정부가 보증해 기금이 부족해지면 정부가 부족분을 메우도록 법률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정부가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연금액 자동조정제도는 인구구조 변화, 경제 상황 등과 연동해 연금액을 조정하는 것으로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연금액을 줄일 수도 있는 제도입니다.

정부가 제시한 국민연금 개혁안의 소득대체율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도 낮은 상황에서 추가로 낮출 수 있는 제도의 도입까지 검토한다는 것은 본래 목적인 '노후생활 안정'보다 '재정 안정'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OECD 가입국의 공적연금 평균 소득대체율은 42.2%이며, 같은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31.2%로 11%P 낮습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OECD가 국가별 노인 빈곤율을 공개한 2009년 이후 쭉 1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이와 같은 낮은 공적연금의 영향도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OECD가 국가별 노인 빈곤율을 공개한 2009년 이후 쭉 1위를 이어가고 있다. /pixabay

복지부는 개혁안 내용과 관련해선 "지난해 10월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의 주요 과제, 통계청의 2023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새로운 재정 전망, 공론화 등에서 나타난 국민 의견을 세밀하게 검토해 수립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내놓은 핵심안이 △보험료율 9%→13% 인상 △소득대체율 올해와 같은 42% 유지 △기금 운용 수익률 1%P+α 제고 △보험료율 13%까지 인상 시 매년 50대 가입자는 1%P, 40대는 0.5%P, 30대는 0.33%P, 20대는 0.25%P 인상입니다.

세대별 보험료율 인상 속도 차별 적용은 전 세계적으로 도입한 전례가 없는 독특한 구상으로 중장년층의 저항이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로 스트레이트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003명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률 세대별 차등화 방안에 대한 공감도를 조사한 결과 '공감한다'는 35.1%,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7.4%로 집계됐습니다. 특히 중장년에 해당하는 4050세대에선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5.1%로 더 높게 나왔습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2%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기금 운용 수익률 제고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가 우리 국민연금이 돈을 굴리는 데는 긍정적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에 기댄 방안입니다. 제도 도입 이후 지난해 말까지 국민연금 누적 수익률은 5.92%로, 지난해 5차 재정추계 당시 도출된 장기 수익률(4.5%)를 1.42%P 상회합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예상한 수익보다 수익률이 더 좋았으니, 앞으로도 이런 수익률이 유지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21대 국회 종료를 앞둔 지난 5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국민의힘은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40%(2028년 기준)인 소득대체율을 43%로 올리는 방안을, 더불어민주당은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더 내는 비율은 같고, 더 받는 방안을 두고 2%P 차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입니다. 정부안은 국회 의석 과반을 점한 거대 야당 민주당안보다 소득대체율이 3%P나 낮은 안으로 4개월 전 거대 여야의 이견보다 간극이 더 큽니다.

당장 이날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윤석열 정부가 마지못해 내놓은 연금개혁안은 매우 실망스럽다"며 "국민연금개혁의 목적은 연금의 안정성과 지속성에 대한 국민 불안을 해소하면서도 국민 부담을 줄이는 데 있는데, 오늘 발표한 정부 개혁안은 안정적 지급을 보장하기보다는 연금으로 인한 정부 재정 부담을 덜어내는 데만 몰두한 개혁으로, 어느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나"라고 혹평했습니다.

지난 4월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가 한 달가량 진행한 시민대표단 492명의 숙의 결과 과반이 '더 내고 더 받는 것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더팩트 DB

연금개혁은 국회 심의·의결로 최종 결정되기 때문에 정부 단일안은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어쩌면 단 2%P 차이 이견을 좁히지 못했던 21대 국회의 잘못을 22대 국회에서 또다시 되풀이하면서 시간만 보낼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환영하는 연금개혁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왕도(王道)'도 없죠. 그렇다고 애초에 불완전하게 설계해 운영하고 있는 국민연금 개혁을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 야당의 연금개혁을 둘러싼 입장 차이는 정답지가 눈앞에 있는데 애써 외면하려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앞서 지난 4월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는 한 달가량 진행한 시민대표단 492명의 숙의 결과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상향하는 방안에 56%가 지지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설문조사는 한 달의 기간을 두고 진행한 시민대표단 모집 직후 1차 조사, 시민대표단 숙의토론회 직전 2차 조사, 시민대표단 숙의토론회 종료 직후 3차 조사 중 마지막 조사 결과로 제도에 대한 이해도를 가진 국민들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고민한 끝에 내놓은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국민은 어떤 연금 개혁안을 원하는지 답이 이미 나온 것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화와 토론을 충분히 했지만, 통일된 의견을 만들기 어려울 때는 투표로 결정하는 게 '기본 원칙'입니다.

다만, 위 공론화위 시민대표단 설문조사의 애초 질문 자체가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와 보험료율 12%·소득대체율 40%로' 선택지가 제한됐었다는 점은 추가로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내고 더 많이 받는 것을 국민 과반이 원한다는 것은 확인이 됐고, 얼마나 더 내고 얼마나 더 받을지에 대해선 추가로 자세한 정보와 전망치를 제공하고 국민의 뜻을 물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테면 새로운 설문에는 OECD 평균 공적연금 보험료율 15.3% 안팎의 수치와 소득대체율, 앞서 개혁을 진행한 유럽 선진국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 포함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국민이 원하는 정답이 나왔고, 방향성도 정해졌는데 여야가 굳이 다른 답을 찾겠다면서 시간을 끌지 말고 부디 이번 국회에선 국민 과반의 뜻대로 개혁을 완수하기를 기대합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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