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이복현의 위험한 언행
겉으론 상생, 실상은 금융권 팔 비틀기
상법 개정·경영 개입 등 월권 도 넘어
소비자 보호 등 본연 임무 집중해야
“가계대출 금리 인상은 금융당국이 바란 것이 아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방송에서 이같이 언급하며 “은행 자율성 측면에서 개입을 적게 했지만, 앞으로는 부동산 시장 상황 등에 비춰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도 했다. ‘관치금융’ 비판을 감수하고도 대출금리로 손쉽게 가계부채를 관리하려는 은행권을 질타한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뭔가 찝찝하다.
가계부채 해결이 국가적 과제라지만 은행들의 대출금리나 정책이 조변석개식으로 바뀌는 건 문제다. 그것도 금융위원장이 아닌 금감원장의 말이라니 황당할 따름이다. 이 원장의 행보는 도를 넘었다. 2022년 10월 ‘레고랜드 사태’ 당시 자금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시중은행의 여·수신 금리가 대폭 올랐다. 정부 개입으로 채권시장이 안정됐지만 여·수신 금리인하 격차로 은행 수익이 급증했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오기 무섭게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을 돌며 ‘상생금융’을 외쳤다. 말만 상생일 뿐 금리를 내리라는 팔 비틀기와 무엇이 다른가.
기준금리는 한국은행이 정하고 대출금리는 금감원이 총대를 멘다는 말까지 들린다. 과도한 금리 개입은 부작용이 크다. 시장금리 하락으로 예금금리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인위적 대출금리 상승은 은행이 돈을 벌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과 진배없다. 무엇보다 은행 자체 시스템이 아닌 당국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금리는 시장 불신만 키운다.
월권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1999년 은행·증권·보험감독원과 신용관리기금 등 4개 기관을 통합해 설립된 금감원은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 업무 전반을 담당한다. 막강한 권한 탓에 ‘저승사자’로 불린다. 하지만 금감원장은 금융위 의결과 금융위원장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금융위원회 지도·감독을 받는 하위 조직이다.
하지만 이 원장 취임 2년은 다르다. 걸핏하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VIP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금리나 은행 신규 설립 허용, 성과급 체계 개편은 물론 CEO 선임 등 경영 개입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 금융사 CEO들과 해외 기업설명회(IR)까지 다닌다. 심판과 선수의 해괴한 동행이다. 경제부총리나 법무장관을 제쳐두고 상법 개정에 대해서도 말을 쏟아낸다. 세상 일을 선악(善惡)으로 재단하는 검사 출신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다.
시장을 이길 순 없다. 정부의 엇박자 정책이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 마당에 ‘관치금리’가 먹힐 리 없다. 대통령의 의중에 맞춰 ‘약탈적’이라는 급진적 수식어까지 동원해 과잉 충성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금융사들을 더는 관치의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본업은 제쳐두고 정치만 한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본연의 임무에 집중해야 한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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