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다운 위기’ 아주대병원 응급실…“폭풍전야의 고요” [오상도의 경기유랑]

오상도 2024. 9. 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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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 갈등으로 번진 ‘셧다운 위기’…아주대병원 응급실 가보니
응급실 앞 ‘진료 제한’ 안내문…놀란 환자들 “폭풍전야와 같아”
의료진 부족에 4일 군의관 3명 배치…“언제 환자 몰릴지 긴장”
안철수 의원 “모두 사표내고 응급실 문 닫는 건 아닌지 두려워”
김동연 지사 10억원 긴급지원은 ‘역풍’…“병원장들 합의” 해명
의료공백 장기화…대형병원 응급실마다 위기 고조, 대응책 마련
코로나19 사태 이어 ‘번아웃 증후군’ 호소…곳곳 당혹·침울·우려

“인근 아파트에서 급성 복통으로 쓰러진 70대 여성을 이송해왔는데 다행히 빈자리가 있어 곧바로 들어올 수 있었어요.”

3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병원 응급실. 정문 앞에서 마주한 경기소방재난본부 소속 응급구조사 김모씨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제한구역’ 표시가 된 응급실 입구 너머로 환자를 의료진에게 넘긴 뒤 잠시 숨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동네 병·의원이 아직 문을 연 시간이라 평소 같으면 다소 한가할 때이지만 의정 갈등이 촉발한 의료 대란 이후에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고 했다. 
아주대병원 응급의료센터를 가리키는 표지판.
김씨는 “요즘은 야간보다 주간이 더 긴장되고 구급 신고도 몰린다”며 “오후 1∼3시에 환자를 수용 가능한 병원을 찾느라 폭염을 뚫고 돌아다니는 게 일상”이라고 전했다. 김씨가 떠난 뒤 도착한 다른 구급 차량에서 내린 30대 응급구조사도 “예전 2차 병원에서 받아주던 환자도 지금은 응급실을 찾기가 힘들어 규모가 큰 병원부터 돌아다닌다”고 하소연했다.

이곳 응급실 문 앞에는 ‘권역 응급의료센터 한시적 축소 운영’이라는 빨간색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15세 이하 소아 응급실은 매주 수·토요일, 성인 응급실은 목요일에 각각 오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최소 인력으로 운영한다는 내용이다. 목요일에는 심폐소생술(CPR)을 필요로하는 초중증 환자만 받는다는 문장도 눈에 띄었다.

◆ “폭염 뚫고 대낮에도 ‘응급실 뺑뺑이’”…곳곳 위기감

경기남부권 최대 규모로 알려진 아주대병원은 의정 갈등의 가장 큰 피해자로 꼽힌다. 225명의 전공의 대다수가 사직서를 제출하며 의정 갈등이 촉발한 의료대란의 최전선에 놓였다. 진료 지연에 이어 중증 환자의 생명이 오가는 응급실 운용까지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경기남부권역 응급의료센터’라는 글씨가 새겨진 거대한 건물의 왼쪽에는 응급실이, 오른쪽에는 중증외상센터가 자리한다. 중증외상센터는 국내 중증 외상 분야 권위자이자 ‘아덴만의 영웅’인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이 한때 몸담았던 외상 응급치료의 선구자격인 곳이다. 응급실도 지역 최상급 응급실로 자리매김했다.
응급실 문 앞에 붙은 ‘한시적 축소 운영’을 설명하는 안내문.
이런 아주대병원이 일주일 중 하루 응급실 운영을 중단(셧다운)하는 걸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의료계는 충격에 빠져들었다. 반년 넘는 의정 갈등에 지친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줄줄이 사표를 던지고 병원을 떠나면서 남은 의료진마저 ‘번아웃’에 빠진 탓이다.

아주대병원 등에 따르면 이곳 응급실에는 애초 14명의 전문의가 있었다. 하지만 의정 갈등 이후 전공의들이 떠나며 가중된 업무는 전문의들의 몫이 됐고 과도한 부담으로 돌아왔다. 결국 3명이 사표를 던졌고, 남은 11명 중 4명도 격무를 호소하며 또다시 사직서 대열에 합류했다. 다만, 병원의 집요한 설득으로 두 번째로 사표를 낸 4명은 사직을 보류하고 가까스로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소아응급실 전문의도 일부 사직해 현재 6명이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성남 분당갑)은 최근 방송에 출연, 이 병원의 명칭을 거론하며 “(남은 분들이 모두) 사표를 내고 결국 (응급실이) 문을 닫는 건 아닌지 굉장히 두렵다”고 말했다.

의도치 않게 의료계의 화두가 된 아주대병원 응급실은 잔뜩 신경이 곤두선 모습이었다.

이날 병원 측은 응급실 입구에 보안요원들을 배치해 취재진의 입장을 철저히 막았다. 의료진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환자를 데리고 온 보호자들의 표정에서도 불안감을 읽을 수 있었다. 이들은 대기실 곳곳에 앉아 굳은 표정으로 통화하거나 한숨을 내쉬었다.
3일 오후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이 병원 안에서 대기하고 있다.
다행히 이날 이 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와 보호자들은 극한 상황에 내몰리진 않았다. 응급실 특성상 잠시 기다려야 하는 때도 있었으나, 중증 위주로 매뉴얼에 따라 진료가 진행된 덕분에 혼란이 빚어지지 않았다. 마치 폭풍이 몰아치기 전 고요함을 드러낸 ‘폭풍전야’를 연상케 했다. 

치료를 마치고 나온 60대 환자의 보호자는 “빈 병상이 많아 신문과 방송에서 듣던 얘기와 많이 달랐다”고 전했다. 이 병원의 한 직원도 “응급환자가 몰리지 않을 때는 이런 모습”이라며 “경증 환자들은 응급실보다 인근 중소병원을 찾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 5일 첫 ‘축소진료’…“군의관 배치됐으나 도움될지 불투명”

이날 백일을 갓 넘긴 아이를 품에 안고 화성시 발안읍에서 이곳 소아응급실을 찾아온 김모(41)씨는 “(아이가) 급성 열성 경련을 일으켜 동네 병원에서 차를 타고 왔다”며 “진료에 큰 차질을 빚진 않았다”고 전했다. 화성시 남양읍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올라온 30대 여성도 “체계화된 소아응급실을 갖춘 곳은 일대에선 이곳뿐”이라며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인근 오산시에 거주한다는 50대 남성도 “생각보다 한가했지만 응급실 의료진 얼굴이 지친 듯 보여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역시 지난달 30일 이 병원 응급실을 찾아 한상욱 의료원장과 현장 의료진을 격려하고 10억원을 긴급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오히려 역풍만 불러왔다. 아주대 총장 출신인 김 지사가 특정 병원만 지원한다는 여론의 반발이 일었기 때문이다. 결국 경기도는 “아주대병원 지원은 9개 권역 응급센터 병원장 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3일 오후 아주대병원 응급실 앞에 구급차가 정차해 있다. 
이처럼 응급실 전문의들의 숫자가 줄고, 업무 강도가 세지면서 병원 측은 중증 환자를 우선으로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다. 내부 구성원 논의를 거쳐 응급실 셧다운은 일단 없던 일이 됐지만, 대신 매주 목요일 축소진료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남았다. 이달 5일부터 달라진 응급실 운용방식이 적용된다. 앞서 소아응급실 역시 수요일과 토요일에 한해 축소진료를 이어오고 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한 차선책”이라며 “(지역 의료의) 최후 보루 역할을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응급의학과(외과학)의 한 조교수도 “끊임없이 당직을 서면서 꿋꿋이 버티고 있다”며 “안 할 수도 없고, 환자를 두고 나갈 수도 없는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튿날인 4일 정부는 아주대병원(3명)을 비롯해 응급실 셧다운이 우려되는 전국 주요 병원에 군의관들을 긴급 파견했으나 곧바로 진료에 투입되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적응 기간이 필요한 데다 투입되는 군의관보다 빠진 인력이 많아 의료공백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다.
아주대병원 권역 응급의료센터와 외상센터가 입주한 건물.
◆ 서울 강남 119, 안산까지 원정…‘바람 앞의 촛불’ 응급의료

의정 갈등 장기화로 악화하는 사정은 아주대병원뿐만이 아니다.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용인시 용인세브란스병원 등도 서울 강남과 강북, 경기 북부, 충청권 등에서 몰려드는 응급환자들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주지 종합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경계를 넘어 다른 지역 병원을 전전하는 ‘응급실 뺑뺑이’가 불러온 낯선 풍경이다. 

지역 의료계에선 경기 파주에서 응급실을 찾아 헤매던 환자가 인천까지 이송됐다가 며칠 만에 숨졌다거나, 서울 강남에서 경기 안산의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는 ‘카더라’ 통신이 떠돌고 있다. 
아주대병원 응급실 입구.
이런 가운데 각 종합병원의 전공의 공백으로 반년 넘게 이어진 응급실 위기는 이번 추석을 기점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추석 연휴(9월 9~12일) 권역·지역 응급의료센터 166곳의 환자 내원 건수는 약 9만건 수준으로 평일의 1.9배가량을 기록했다. 화상과 교통사고, 관통상 등이 급증하며 의료진의 속을 끓였다는 것이다.

응급실 상주 의사가 절반 이상 줄어든 현 상태에서 추석 연휴 응급환자가 몰리면 병원마다 체감하는 응급환자는 기존의 4배 이상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전문의는 “이제 환자를 태운 구급 차량이 응급실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나 의료진이 체력적, 정신적 피로를 호소하는 풍경은 예사로운 일이 됐다”고 푸념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도 “이번 의료대란은 개별 병원이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고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원=글·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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