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다운 위기’ 아주대병원 응급실…“폭풍전야의 고요” [오상도의 경기유랑]
응급실 앞 ‘진료 제한’ 안내문…놀란 환자들 “폭풍전야와 같아”
의료진 부족에 4일 군의관 3명 배치…“언제 환자 몰릴지 긴장”
안철수 의원 “모두 사표내고 응급실 문 닫는 건 아닌지 두려워”
김동연 지사 10억원 긴급지원은 ‘역풍’…“병원장들 합의” 해명
의료공백 장기화…대형병원 응급실마다 위기 고조, 대응책 마련
코로나19 사태 이어 ‘번아웃 증후군’ 호소…곳곳 당혹·침울·우려
“인근 아파트에서 급성 복통으로 쓰러진 70대 여성을 이송해왔는데 다행히 빈자리가 있어 곧바로 들어올 수 있었어요.”
이곳 응급실 문 앞에는 ‘권역 응급의료센터 한시적 축소 운영’이라는 빨간색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15세 이하 소아 응급실은 매주 수·토요일, 성인 응급실은 목요일에 각각 오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최소 인력으로 운영한다는 내용이다. 목요일에는 심폐소생술(CPR)을 필요로하는 초중증 환자만 받는다는 문장도 눈에 띄었다.
◆ “폭염 뚫고 대낮에도 ‘응급실 뺑뺑이’”…곳곳 위기감
경기남부권 최대 규모로 알려진 아주대병원은 의정 갈등의 가장 큰 피해자로 꼽힌다. 225명의 전공의 대다수가 사직서를 제출하며 의정 갈등이 촉발한 의료대란의 최전선에 놓였다. 진료 지연에 이어 중증 환자의 생명이 오가는 응급실 운용까지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아주대병원 등에 따르면 이곳 응급실에는 애초 14명의 전문의가 있었다. 하지만 의정 갈등 이후 전공의들이 떠나며 가중된 업무는 전문의들의 몫이 됐고 과도한 부담으로 돌아왔다. 결국 3명이 사표를 던졌고, 남은 11명 중 4명도 격무를 호소하며 또다시 사직서 대열에 합류했다. 다만, 병원의 집요한 설득으로 두 번째로 사표를 낸 4명은 사직을 보류하고 가까스로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소아응급실 전문의도 일부 사직해 현재 6명이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성남 분당갑)은 최근 방송에 출연, 이 병원의 명칭을 거론하며 “(남은 분들이 모두) 사표를 내고 결국 (응급실이) 문을 닫는 건 아닌지 굉장히 두렵다”고 말했다.
의도치 않게 의료계의 화두가 된 아주대병원 응급실은 잔뜩 신경이 곤두선 모습이었다.
이날 병원 측은 응급실 입구에 보안요원들을 배치해 취재진의 입장을 철저히 막았다. 의료진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치료를 마치고 나온 60대 환자의 보호자는 “빈 병상이 많아 신문과 방송에서 듣던 얘기와 많이 달랐다”고 전했다. 이 병원의 한 직원도 “응급환자가 몰리지 않을 때는 이런 모습”이라며 “경증 환자들은 응급실보다 인근 중소병원을 찾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 5일 첫 ‘축소진료’…“군의관 배치됐으나 도움될지 불투명”
이날 백일을 갓 넘긴 아이를 품에 안고 화성시 발안읍에서 이곳 소아응급실을 찾아온 김모(41)씨는 “(아이가) 급성 열성 경련을 일으켜 동네 병원에서 차를 타고 왔다”며 “진료에 큰 차질을 빚진 않았다”고 전했다. 화성시 남양읍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올라온 30대 여성도 “체계화된 소아응급실을 갖춘 곳은 일대에선 이곳뿐”이라며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인근 오산시에 거주한다는 50대 남성도 “생각보다 한가했지만 응급실 의료진 얼굴이 지친 듯 보여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한 차선책”이라며 “(지역 의료의) 최후 보루 역할을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응급의학과(외과학)의 한 조교수도 “끊임없이 당직을 서면서 꿋꿋이 버티고 있다”며 “안 할 수도 없고, 환자를 두고 나갈 수도 없는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의정 갈등 장기화로 악화하는 사정은 아주대병원뿐만이 아니다.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용인시 용인세브란스병원 등도 서울 강남과 강북, 경기 북부, 충청권 등에서 몰려드는 응급환자들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주지 종합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경계를 넘어 다른 지역 병원을 전전하는 ‘응급실 뺑뺑이’가 불러온 낯선 풍경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추석 연휴(9월 9~12일) 권역·지역 응급의료센터 166곳의 환자 내원 건수는 약 9만건 수준으로 평일의 1.9배가량을 기록했다. 화상과 교통사고, 관통상 등이 급증하며 의료진의 속을 끓였다는 것이다.
수원=글·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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