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대한사람 대한으로
수의사가 직업이니 별의별 개들을 다 만납니다.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는 개도 있었고, 돈을 주면 넙죽 인사부터 하는 개도 봤습니다. 그리 거창할 것 없더라도 개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것까지 알지?’ 하며 놀라고, ‘얘는 천재 아닐까?’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에 반해 우리집 나비는, 순수하다고 해야 할까, ‘너는 왜 이런 것도 몰라?’가 일상입니다. 하도 모르는 것이 많으니, 귀찮아서 일부러 모른 척하나, 의심이 일기도 합니다. 누구나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상식이라고 합니다. 일정 수준의 지식이나 교양도 상식이고, 공동체가 합의한 가치관도 상식입니다. 우리는 버스나 안방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거리낌 없던 시절을 지나, 공공장소나 실내에서의 금연은 상식이 된 시대에 이르렀고, 교통사고에는 목소리 큰 사람이 으뜸이던 시절을 지나, 사고 접수와 블랙박스가 상식이 된 덕에 대거리가 없어진 시대를 살아갑니다. 알아야만 하는 것과 몰라도 되는 것의 경계는 흐리지만, 상식이라는 이름을 빌려 더 좋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최근 한 장관 후보자는 청문회 도중, 일제강점기를 살던 우리 선조들의 국적이 당연히 일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상식”이라며 언성도 높였습니다. 집에 강도가 들면, 우리 식구들 모두 그 강도 호적에 올라간다는 식의 궤변입니다, 을사늑약 이후에도 우리 선조들이 일본인으로 된 일은 없었고, 1919년 이후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버젓이 있었으니 우리의 국적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입니다. 하물며 일본의 입장에선 준 적도 없는 국적입니다. 일본인이 되고자 혈안이었던 친일파들에게도 귀화는 허락되지 않았고, 창씨개명 또한 강제는 고사하고 큰 은혜 삼아 베푼 것이라 합니다. 일본에 한국인은 그저 ‘조센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인이 되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일제를 찬양하며 분칠을 해댑니다. 2013년에 이어 또 한 번 역사교과서에 손을 대고 있습니다. 교과서는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상식, 그중 꼭 알아야 할 것으로 강제하는 최소한입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미화된 일제강점기와 용서 가능한 친일을 물려주려고 합니다. “상식” 장관 후보자는 장관에 임명되었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이 독립기념관장이 되었고, 일제강점기 옹호론자가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일부러 그러는 게 맞습니다. 우리 나비야 모르는 것이 많든 일부러 그러든 어리고 어여쁘니 용서할 수밖에 없지만, 배울 만큼 배우고 늙을 만큼 늙은 어른들이 그 모양이니 용서가 쉽지 않습니다. 한쪽에서 상식의 최소한인 교과서를 만지작거리니, 반대하는 측에선 규범의 최소한인 법을 마련합니다. 민족정체성, 국가정체성에 반하는 사상을 가진 이들은 공직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막자는 법안들이 발의되고 있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면 없어도 좋을 법들이지요. 상식이 상식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법까지 만들어가며 지켜야 하는 시절이 부끄럽습니다. 버스에서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 그러하듯, 교통사고가 나면 멱살부터 잡던 시절이 그러하듯, 미개하여 부끄러운 시절입니다.
김재윤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 협동조합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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