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밥 먹듯 운동하자

기자 2024. 9. 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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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산길에서 집채만 한 개를 만나면 우리 몸은 어떻게 반응할까. 도망칠 태세를 갖추거나 주변에 무기가 될 만한 뭐가 있는지 눈을 부라리며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은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기에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고 콩팥 위 부신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될 것이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서둘러 근육에 혈액을 보내야 한다. 당장이라도 수축과 이완을 거듭할 근육에 산소와 에너지를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엔 당질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스트레스 반응 체계를 가동해 유기체의 적응 능력이 향상되는 일은 인간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동물에서 일관되게 발견된다.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30분쯤 뒤에 최고치에 도달한 호르몬 수치는 1시간 정도가 지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물론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진 후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동물 대부분은 긴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적응 방식을 진화시키지는 못했다.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여서 장기간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대처 방식에 따라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스트레스에 덜 취약하고 회복력도 뛰어나다. 스트레스나 역경에 노출되어도 사회적, 정신적, 신체적으로 효과적인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왜 생길까.

인간은 예측하고 걱정하는 존재이다. 훌륭한 대뇌 피질을 가진 덕분이다. 이 뇌 기관은 인류가 언어를 발달시키고, 아이디어와 상황에 적절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꼭 좋은 점만 있지는 않다. 가끔 인간은 걱정을 사서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을 억지로 꾸며 거기에 극단적인 해석을 부여하기 일쑤다.

예일대학의 에마 세팔라는 스트레스 회복력을 높일 몇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이를테면 휴대전화기를 들여다보지 않는다거나 아이와 껴안고 놀기처럼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 주는 활동을 해보라고 한다. 어떤 활동이든 생각의 속도를 늦추고 신체와 의식에 여유를 두라는 것이다. 키 큰 나무 아래를 천천히 걷는 산책도 좋다. 스트레스가 생겼을 때 그것을 억누르려고 하기보다는 스트레스로부터 회복하는 뇌와 신체의 자연스러운 능력을 북돋우는 데 초점을 맞추라는 권고다. 어려운 일이다.

2024년 중국의 장 리 박사는 규칙적으로 운동하면 스트레스 회복력이 향상된다는 논문을 ‘세포 대사’에 발표했다. 사실 거의 모든 생리학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운동이 도움된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중국 연구진은 젖산(lactic acid)에 초점을 맞추었다. 격한 운동 뒤 찾아오는, 근육 통증을 유도하는 피로물질로 잘못 인식되던 젖산은 이제 대사 경로를 조절하는 세포 신호물질이자 운동할 때 근육에 필수적인 에너지원으로서 ‘권토중래를 꿈꾸는’ 화합물이 되었다. 젖산은 포도당을 절반 쪼갠 물질이다. 근육에서 만들어진 젖산을 간으로 보내 다시 포도당을 만들면 근육은 이를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다.

운동할 때 근육세포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에너지를 요구한다. ‘포도당깨기(glycolysis)’ 과정을 거쳐 이 탄수화물을 젖산으로 바꿀 때는 충분한 양의 에너지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세포는 속도로 저생산성을 벌충한다. 포도당깨기 과정은 무척 빠르게 진행돼 포도당만 있다면 근육의 에너지 요구량을 맞출 수 있다. 또 이 작업은 산소가 없어도 진행될 수 있다. 그렇기에 격하게 운동할 때 우리 신체는 포도당을 이산화탄소로 완전히 산화시키는 대신 중간 단계까지만 진행하는 신속한 대사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므로 30분 정도 뛰고 나면 근육세포에 젖산의 양이 늘어난다. 세포는 이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까? 장 리 박사는 대뇌 피질에서 스트레스 회복에 관여하는 단백질에 젖산이 달라붙는 현상을 발견했다. 젖산이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신호물질로 작용하는 것이다. 만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조작한 생쥐의 대뇌 피질 단백질에는 젖산이 제대로 붙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날에 걸쳐 쳇바퀴를 돈 생쥐에서는 젖산 단백질 유형이 정상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피질 신경 연접부의 구조와 기능이 뚜렷하게 좋아졌다.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받아도 불안에 떨지 않게 된 것이다. 사람의 뇌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다. 결국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힘은 신경이 관여하는 능동적인 과정에서 비롯된다. 운동하자.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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