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친환경’의 역습
2015년 여름 코스타리카 해안에서 해양생물학 전공 대학원생이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바다거북을 발견했다. 그는 빨대를 빼주자 콧구멍에서 피가 쏟아지며 고통스러워하는 거북을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전 세계에서 6000만명이 보는 등 파장이 커지자, 미국 시애틀시가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스타벅스, 아메리칸항공 등 기업들도 속속 동참했다.
▶한국 정부도 카페에서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한동안 금지한 바 있다.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 빨대가 등장했다. 하지만 엊그제 나온 환경부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생산부터 폐기 과정까지 종이 빨대가 이산화탄소 배출은 4.6배, 토양 산성화 정도는 2배, 부영양화 물질 배출은 4만4000배 이상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종이 빨대가 젖는 것을 막기 위한 코팅에 각종 화학물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가죽 가방을 대체하는 에코백, 종이컵 대체재인 텀블러는 환경을 걱정하는 양식 있는 소비자의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에코백은 목화 재배·가공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문양·사진을 인쇄하는 데 유해성 화학물질도 많이 들어간다. 텀블러의 경우 고무·유리·스테인리스 재료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종이컵보다 온실가스를 24배 더 배출한다. 에코백은 131회, 텀블러는 220회 이상 사용해야 대체재보다 친환경 소비가 되는데, 이 정도로 자주, 오랫동안 사용하는 소비자는 드물다.
▶종이 기저귀 대신 천 기저귀를 쓰자는 운동이 있었다. 하지만 영국 환경부가 천 기저귀를 세탁할 때 쓰는 물, 에너지, 세제를 계산한 결과 종이 기저귀를 쓸 때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가 넓고 수자원이 부족한 나라의 경우 종이 기저귀를 쓴 후 매립하는 게 더 친환경적이다. 유럽·미국에서 자동차 연료로 석유 대신 옥수수 에탄올, 바이오 디젤을 쓰는 정책을 도입했지만 이 정책은 온난화를 되레 가속했다. 밀림을 베어내 경작지를 만들고 옥수수와 야자 열매에서 에탄올, 디젤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가 나오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이 등장하기 전, 인류는 바다거북 등껍질로 빗, 안경테, 보석함을, 코끼리 상아로 피아노 건반, 당구공을 만들었다. 플라스틱의 발명은 연간 바다거북 6만 마리, 코끼리 16만 마리의 목숨을 구했다. 코스타리카 바다거북의 코에 꽂힌 플라스틱은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 중 바다로 유출된 0.03% 중 일부였다. 환경을 염려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만, 친환경 도그마에 빠지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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