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공작원 고니시, 실존 인물?... 페루 증인과 1만6000㎞ ‘영상 신문’

방극렬 기자 2024. 9. 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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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4일 오전 9시 서울중앙지법 408호 법정. 피고인석 뒤편 스크린에 서울과 1만6295㎞ 떨어진 페루 리마의 주(駐)페루 한국 대사관 사무실이 나타났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정훈(당시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씨가 만났다는 북한 공작원 추정 인물인 ‘고니시(Konishi)’의 실존 여부를 증명하기 위한 증인 신문이었다.

이씨는 2017년 북한 공작원과 4차례 만나 진보 진영의 동향을 보고하고 암호화된 지령문 송수신 방법 등을 교육받은 혐의로 2021년 기소됐다. 검찰은 이씨가 만난 공작원을 일본계 페루인으로 위장한 ‘고니시’로 지목했다. 고니시가 ‘노구치’라는 여성 공작원과 부부 행세를 하며 페루와 필리핀 등에서 간첩 활동을 하다가 이씨를 국내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씨는 “조작 수사”라고 주장했다. 고니시가 간첩이 맞는지, 페루에 살았던 게 맞는지, 위장 신분자가 맞는지 불분명하다고 했다.

문제는 고니시 부부가 2020년 2월 사망해 존재 확인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검찰은 페루에서 고니시를 봤거나, 그의 부부에 대해 알 만한 페루 현지인들을 증인으로 부르겠다고 했고, 재판장인 이준구 형사18단독 판사는 해외 영상 신문 선례를 검토해 이를 허가했다.

페루와의 시차(14시간)를 감안해 재판부는 보통 오전 10시에 열리는 재판을 오전 9시(페루는 오후 7시)에 시작했다. 법정에 설치한 스크린은 네 부분으로 분할해 대사관의 증인과 법정 내 피고인 및 변호인, 검사, 통역인 등을 각각 비추도록 했다. 판검사와 변호사가 한 문장씩 질문하면 통역인이 이를 스페인어로 통역하고, 증인이 답하면 다시 한국말로 통역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현지 대사관에 출석한 증인 3명은 고니시를 조사하거나 직접 만난 사람들. 이들은 모두 “고니시를 페루에서 봤고, 위장 신분이 의심된다”고 증언했다. 페루 시민 후안은 “고니시 부부가 1996년 페루에서 결혼할 때 증인을 섰다”며 “한국 수사관이 보여준 남성 사진과 내가 본 고니시의 얼굴, 스타일 등이 흡사하다”고 증언했다. 페루 변호사 바네사는 검사가 “고니시의 출생 증명서 등에서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느냐”고 묻자 “부모의 호적 자료가 전혀 없고, 고니시가 다녔다는 학교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신분이 위조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였다.

이날 영상 신문은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이 판사는 증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증언이 끝나면 안전하게 귀가하라”고 당부했다. 오는 11월 6일 법원은 국가정보원 직원들에 대한 신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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