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자동조정’ 땐 실질수령액 감소…“기금 수명 늘리려 노후 위협”
정부가 4일 발표한 국민연금 개혁안에는 연금액의 실질 가치가 떨어질 수 있는 자동조정장치, 세대 간 차등을 둔 보험료율 인상 속도 등의 구상이 담겨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재정 안정에만 치우쳐 노후 보장이라는 연금 본연의 기능을 퇴색시키고, 사회적 합의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단 우려를 표했다.
지속가능성 얻고 실질 연금액 깎아
정부가 도입을 추진하는 자동조정장치란 연금액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는 현행 체계에 3년 평균 국민연금 가입자 수 증감률(보험료 수입)과 기대여명 증감률(급여 지출) 등을 반영해 연금 인상액을 조정하는 장치다. 예를 들어 현재는 물가상승률이 2%라면 연금을 100만원 받던 수급자는 그해에 102만원을 받는다.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되면 그해에 가입자 수 감소율이 1%, 기대여명 증가율이 0.5%라면 2%에서 1.5%를 뺀 0.5%의 인상분만 반영된다. 현재 수급액 102만원이 100만5천원으로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자동조정장치 도입이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 정부 개혁안에 따라 보험료율이 13%, 소득대체율이 42%로 오르면 기금소진 시기는 2072년이다. 여기에 자동조정장치를 급여 지출이 보험료 수입보다 많아지는 2036년 발동하면 기금소진 시기는 2088년으로 16년 더 늘어난다.
다만, 저출생·고령화로 가입 수는 줄고 수령자는 많아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자동조정장치 도입은 물가상승분 보전조차 어렵게 한다. 이스란 보건복지부 사회정책실장은 “전년도 받은 연금액보다 적어지지는 않지만, 실질가치 보전이 부족한 것은 맞다”며 “지속가능성을 위한 부담을 서로 나눠야 한다는 취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소득대체율이 충분히 오르지 못한 상황에서)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되면 청년들이 노인이 됐을 때 노인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세대 갈등 우려 낳는 차등 인상
정부는 현행 9%인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면서 세대별로 차이를 두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50대(1966~1975년생)는 1%포인트씩, 40대는 0.5%포인트씩, 30대는 0.33%포인트씩, 20대(1996~2007년생)는 0.25%포인트씩 오르는 등 차이를 뒀다. 13%까지 도달하는 데 50대는 4년, 20대는 16년이 걸린다.
문제는 1개월 차이로 부담이 달라지거나 9년 차이에도 부담은 같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39살은 0.33%포인트씩 오르지만, 한살 차이인 40살은 0.5%포인트씩 보험료가 오른다. 반면 40살과 49살은 아홉살 차이지만 인상 속도가 같다. 여기에 ‘세대 간’ 형평을 고려하느라 ‘계층 간’ 형평을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같은 연령에도 소득 격차가 심한 상황에서 저소득층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주은선 경기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보험료 부담은 소득 수준에 따라 부담을 느끼는 정도가 굉장히 다르다”며 “50대 중 소득이 낮은 경우는 빠르게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짚었다.
정부의 ‘기초연금 인상’은 빈곤 해결엔 역부족이란 평가다. 정부는 2026년 소득이 적은 어르신에게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우선 인상하고, 2027년에는 대상을 소득 하위 7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2026년에는 기초연금이 물가 연동으로 약 36만원까지 올라 있을 것”이라며 “취지를 살린다면 45만원 정도로 상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안에 이견이 큰 방안이 여럿이어서 국회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오건호 위원장은 “자동조정장치는 연금개혁 논의가 흐트러질 수 있어서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정부안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어 “국민연금의 재정만을 고려한 연금개악안”이라며 “자동조정장치, 세대 간 보험료율 인상 속도에 차등을 두는 방안 등은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연금액을 낮춰 국민의 존엄한 노후를 위협할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도 성명에서 “더 많이 차별적으로 내고도 연금은 대폭 삭감되는 정부의 연금개악안”이라며 “제대로 된 국민연금을 만들어 달라는 시민의 요구에 노후 파탄에 이를 자동 안정장치, 분열을 조장하는 세대간 차등보험료 인상, 사적연금 강화 등 삭감과 차별, 민영화로 답하는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안은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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