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도 아닌 그 유전자에 사사로이 ‘가위’를 대지 말지어다[최정균의 유전자 천태만상]
국제법으로 보호받는 바다처럼
유전자도 ‘인류공동유산’이라면
누구도 배타적인 권리 주장 못해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의 문제점
지금까진 ‘위험성’ 측면만 부각
만약 기술 발달로 ‘안전’해지면?
살인적 약값과 제약사 지재권
생명의 가치를 돈으로 따져
이런 사적 영리 추구는 옳은가
바로 지난 글 ‘유전자 수지부모(受之父母)’의 마지막에 언급했듯이 유전자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우리 모두의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인류의 유전자 정보를 누구의 소유도 아닌 상태로 두는 것과 인류 전체의 공유물로 규정하는 것이 현재로는 상징적인 의미의 차이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본질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큰 차이를 초래할 수 있는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바로 ‘크리스퍼(CRISPR)’라고도 불리는 유전자 가위 기술 때문이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유전자는 그 누구의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누군가가 자신의 비용으로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여 새로운 유전자 서열을 도입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당사자가 획득한 것이다. 만일 이 행위가 자신의 생식세포 유전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자손에게 상속될 수 있다. 라마르크가 제시했던 ‘획득형질의 유전’이 자연적으로는 대체로 불가능했지만, 이제 과학의 힘으로 그것이 확실히 가능해진 것이다. 인류의 유전체 정보가 누구의 소유도 아닌 상태에서는 이러한 유전자의 사유화를 막을 근거가 없다.
법적으로 누구의 소유도 아닌 것을 고대 로마의 법에서는 ‘레스 눌리우스(res nullius)’라고 했다. 이러한 ‘무주물’은 선점하는 자에게 그것의 이용과 이익의 취득이 허용된다. 이에 반대되는 개념은 ‘레스 코뮤니스(res communis)’, 즉 ‘만인공리물’이다. 로마의 위대한 황제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유스티니아누스가 공화정 이래 제국의 법률, 판례, 칙령 등을 집대성하여 성문화한 <로마법 대전(Corpus Iuris Civilis)>에는 만인공리물이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자연법에 따르면 공기, 흐르는 물, 바다 및 해안가와 같은 것들은 모든 인류에게 공동으로 속한다.”
이러한 개념으로부터 발전한 국제법 원칙 중 하나가 바로 ‘인류공동유산(common heritage of mankind)’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인류 모두에게 속하는 특정한 지리적 영역이나 자연적 혹은 문화적 요소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 보호되어야 하며 특정 국가나 기업에 의한 착취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해양법에 관한 유엔(국제연합) 협약’이나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외기권 우주조약’ 등이 이러한 원칙에 입각하여 결의된 것들이다.
인간의 유전자군(gene pool) 역시 이러한 인류공동유산에 해당한다는 견해를 처음으로 제시한 것은 놀랍게도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 몰타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이매뉴얼 아지우스(사진)였다. 그가 이 문제를 성찰하게 된 것이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위에 언급한 ‘해양법에 관한 유엔 협약’이 만들어진 계기가 바로 1967년 유엔 총회에서 결의된 ‘심해저의 인류공동유산’ 선언이었는데 그 안을 발의한 것이 바로 몰타 정부였던 것이다.
크리스퍼라는 이름이 만들어지기도 전인 1989년 아지우스가 발표한 짧은 논문에 담긴 내용은 심오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심해저보다 더욱 명백한 인류 전체의 유산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유전 정보다. 유전자군은 국적도, 국경도 없이 그야말로 전체 인간 종이 공유하는 생물학적 유산으로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계속해서 전해지므로 인류의 모든 세대에 속한 공통의 것이다. 어느 특정 세대도 인간의 유전자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를 가질 수 없으므로 그것에 대한 소유권은 오직 인류 전체에 속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인간의 유전체 정보를 만인공리물 혹은 인류공동유산으로 규정하게 되면,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자 편집은 오직 국제사회의 합의에 의해 도출된 가이드라인에 따라서만 허용되어야 하며, 이에 어긋나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사사로운 이용은 제재의 대상이 된다.
2018년 중국 허젠쿠이 박사 연구팀은 출생 전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편집하여 에이즈(AIDS)를 일으키는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에 저항성을 가지는 쌍둥이 아이들을 탄생시켰다고 밝혔다. 이것은 인간에 대해 시행된 최초의 유전자 편집으로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전 세계 과학자들의 공분을 사고 엄청난 논란이 일자 중국 인민법원은 비공개로 진행된 심리를 통해 ‘불법의료행위죄’라는 명목으로 허젠쿠이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사적인 명예와 이익을 위해 윤리심사 서류를 위조하여 지원자를 모집하는 등 규제와 감독을 의도적으로 회피하였다는 것이 법원이 밝힌 선고 이유였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유전자 편집을 금지할 법적인 근거는 뚜렷하지 않은 것 같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허젠쿠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윤리, 법률, 정책 분야 등의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구성하여 문제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2년이 지나서 발표된 보고서는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질병 치료 서비스의 제공이나 인위적인 기능 향상을 위한 기술의 사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함께 국제적 윤리 표준의 제정과 해당 실험에 대한 국제적 등록 절차 등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WHO는 자문단의 권고 사항을 검토하여 3년 안에 적절한 방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아직은 너무 위험하며 윤리적 근거는 이제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형을 마치고 2023년 4월 출소한 허젠쿠이는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으로 알츠하이머(치매)를 예방하는 연구에 관한 제안서를 공개했다. 시험관 내 인공수정으로 정자 2개와 난자 1개가 결합되어 태아로 발전하지 않는 수정체를 이용하는 계획으로서, 알츠하이머의 원인이 되는 아밀로이드 전구체 유전자에 특정 돌연변이를 도입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사실 과학자들로서는 유전자 편집이 낳을 수 있는 부작용의 위험성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2020년 학술지 ‘네이처’에는 연구 목적의 배아 유전자 편집이 허용되어 있는 미국과 영국의 연구팀에서 수행한 3편의 연구 결과가 소개되었다. 요약하자면 기술의 부정확성으로 인해 의도치 않은 유전체 변이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연구들에서 사용한 크리스퍼 기술은 DNA 이중나선의 양쪽 가닥을 모두 절단하는 초창기 방법이었다. 이후 데이비드 리우 하버드대 교수팀 등은 차세대 크리스퍼 기술을 개발하여 정확도를 크게 끌어올렸다. 실제로 기초과학연구원과 서울대학교, 한양대학교 등으로 구성된 국내 연구팀들도 각각 2022년과 2023년에 인간의 배아줄기세포 및 암세포주에 적용된 차세대 유전체 편집 기술이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는 것을 학술지 ‘네이처 생명공학’ 및 ‘핵산 연구’에 보고한 바 있다.
차세대 크리스퍼와 함께 언급할 만한 또 하나의 중요한 기술은 시험관 내에서 정자와 난자를 생성할 수 있는 ‘체외 배우자 형성’이다. 일본의 생물학자 야마니카 신야가 개발하여 노벨상을 수상한 ‘유도 만능 줄기세포’ 기술을 이용하면 우리 몸에 있는 피부 등의 체세포를 줄기세포로 만든 후 이것이 생식세포로 분화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은 부부라면 잘 알겠지만 여성의 몸에서 난자를 채취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이렇게 어렵게 얻어진 적은 수의 배아로 유전자 편집을 하는 것에 비해, 얼마든지 채취 가능한 체세포로 유전자 편집을 시행한다면 세포들의 유전체를 스크리닝해서 정확히 원하는 대로 편집된 태아를 얻는 게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이렇게 위험성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유전자 맞춤아기에 대한 윤리적인 논의는 더욱 어려워진다. 우리가 통상 유전자 가위로 도입하려는 변이들은 자연 상태의 인간에게서 이미 발견된 것들이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콜레스테롤에 대한 임상시험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도 해당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가진 사람들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허젠쿠이가 편집을 시도한 유전자 변이 역시 많은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유전자를 도입하는 것은 예측하기 어려운 생물학적 위험성 때문에 자발적으로 시도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의 구별은 대단히 어렵다. 또한 오늘날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는 부모들은 10개 미만의 배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며 원하는 경우 유전자 진단을 먼저 받고 착상을 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특정 변이를 인위적으로 선택하는 기술을 널리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미래에 체외 배우자 형성 시술을 이용하게 되면 100개 이상의 배아 중에서 선택이 가능해진다.
결국 WHO의 자문단이 제안했던 국제적 윤리 표준의 제정이라는 작업은 인류공동유산으로서의 유전자군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합의에 달려있다. 고통을 유발하는 질병도, 사회적인 차별을 유발하는 형질도, 남들보다 우월한 재능이나 능력도 모두 개인이 아닌 인류가 함께 짊어지거나 누려야 할 만인공리물이다. 깊은 바닷속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희소한 자원은 모두가 동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우리는 그곳에서 조난을 당하거나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조건 없이 구조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유전자의 바다도 마찬가지다. 열성 유전자에 대해서는 공중보건이나 공공보험과 같은 의료적 구조 체계가 필요할 것이며, 경제력을 비롯한 사회적 특권을 이용하여 우성 유전자를 획득하려는 행위는 철저히 방지해야 할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복권당첨자를 숭배’하는 문화가 없어져야 그러한 행위가 근절되겠지만 말이다.
아지우스가 논문의 말미에 지적했듯 과학적 지식 역시 인류가 공유하는 지적 유산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인 스핀라자는 2016년 승인되었는데 출시 당시 첫 1년 75달러, 이후 매년 37만5000달러였다. 우리나라에서는 2021년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급여가 첫해 5억5000만원, 이후 매년 2억7000만원 기준으로 적용되었다. 크리스퍼에 기반해 1회 치료로 영구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졸겐스마는 210만달러 혹은 약 25억원에 달한다. 다행히 2022년 8월에 건강보험 급여로 환자 부담금은 600만원 정도가 되었다. 유전성 망막질환 치료제인 럭스터나 역시 1회 투여로 정상 시력을 회복할 수 있으나 출시 가격이 85만달러에 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1년 9월 허가를 획득했지만 9억5000만원이라는 약가로 인해 출시가 미뤄지고 있었으며, 2024년 2월부로 급여에 진입했다.
건강보험 급여의 적용과 그 기준을 놓고 환자의 가족들은 시위에 나서기까지 해야 했으며, 급여가 적용되더라도 천문학적인 약값은 국가의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된다. 존스홉킨스 대학의 제프리 칸 교수는 이렇게 특정 유전자나 크리스퍼와 같이 공공의 지식에 기반한 치료제에 지식재산권을 허용한 것이 과연 정당했는지 따져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무니없는 액수의 근거에 대해 “당신 아이의 생명의 가치는, 시력의 가치는 얼마인가?”라고 되묻는 제약회사의 뻔뻔스러운 답변을 보면, 어쩌면 우리가 정말로 공분하고 시급히 고민해야 할 대상은 허젠쿠이나 맞춤아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최정균 교수
카이스트 교수로 2009년부터 재직하며 인간유전체학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목표는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유전학적 원인 규명과 진단 및 치료기술 개발이며, 진화론을 접목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다. 아산의학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선정 과학기술인상을 포함해 여러 학회의 학술상을 수상하였고, 과학기술한림원 선도과학자, 포스코사이언스펠로십에 선정된 바 있다.
최정균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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