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해운대 미군 유해 찾기

강필희 기자 2024. 9. 4.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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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다 전몰 장병 예우 방식이 다르다.

그에 반해 미국은 전시 중 전사자 동시 송환 방침에 따라 유해를 본국으로 반드시 데려간다.

이 합의에 따라 한 달 뒤 실제로 미군 장병 유해 등이 담긴 상자 55개가 미국 측에 전달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과 공동으로 지난 3일부터 오는 27일까지 해운대 연안 12㎢ 해역에서 음파 탐지기 등을 동원해 해저를 수중 조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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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다 전몰 장병 예우 방식이 다르다. 타국에서 사망한 병사를 현지에 그대로 묻는 관례는 영연방 국가와 튀르키예가 대표한다. 부산 남구 대연동에 있는 유엔묘지 안장자 2328명 중에 국적별로는 영국(892명)이 가장 많고 튀르키예(462명) 캐나다(381명) 호주(281명)가 뒤를 잇는 이유다. 그에 반해 미국은 전시 중 전사자 동시 송환 방침에 따라 유해를 본국으로 반드시 데려간다. 6·25전쟁 파병 규모는 최대였지만 유엔묘지 안장자수가 40명에 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마저도 거의 1960년대 이후 사망자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의 초점은 과연 트럼프가 김정은으로부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약속을 받아낼 것인가 였다. 그러나 총 4개항인 합의문 중 3개항은 기왕의 비핵화 방침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고, 오히려 제일 마지막 항목이 더 눈길을 끌었다. ‘6·25전쟁 전사자 유해 송환’이었다. 이 합의에 따라 한 달 뒤 실제로 미군 장병 유해 등이 담긴 상자 55개가 미국 측에 전달됐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자국민은 지구 끝까지 찾아가 수습한다는 미국의 철학을 새삼 확인시킨 계기였다.

한국과 미국이 71년 전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서 실종된 미 전투기와 장병을 찾아 나선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과 공동으로 지난 3일부터 오는 27일까지 해운대 연안 12㎢ 해역에서 음파 탐지기 등을 동원해 해저를 수중 조사한다. 잠수사와 수중 고고학자를 비롯해 해군작전사령부, 부산 해양경찰도 참여한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1월 13일 부산 K9 비행장에서 이륙했다가 바다에 추락한 미 제5공군 소속 B-26 폭격기 1대와 조종사를 찾는 게 목적이다. DPAA측은 당시 미군 3명이 전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 앞바다는 6·25전쟁 첫 승전고를 울린 대한해협 해전 현장이다. 북한에서 내려온 무장 수송선을 해군 최초 전투함인 백두산함이 격침시켰고, 덕분에 최후방 부산이 뚫릴 뻔한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이 전승기념비가 부산 중앙공원에 있다.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국군 실종자나 전사자는 아직 많다. 국방부가 24년째 전국 곳곳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70여년 전 바다에 수장된 사람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러나 실낱 같은 가능성만 보여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호국영령의 희생 못지 않게 우리를 경건하게 만든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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