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아의 도시스카프] 명품도시의 유혹과 그 이면
서울 시내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하철역에는 여행용 트렁크를 쉽게 들고갈 수 있도록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어 '글로벌 도시' 서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관광객들의 트렁크도 다양하다. 그중에는 단순한 여행 가방도 있지만, 가격이 2~3억원에 이르는 트렁크도 있다. 바로 루이비통이다.
오늘날 같으면 포장이삿짐센터에서 일했던 루이비통이 나폴레옹 3세의 황후에게 인정을 받아 만든 회사가 '루이비통'(LOUIS VUITTON)이다. 황후의 든든한 지지 속에 루이비통 트렁크는 귀족들의 '잇템'(it item), 있어야 하거나 갖고 싶어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은연중에 '부와 자유, 그리고 낭만'의 상징이 되었다. 잘 만들어진 제품과 소비자의 조합이 만들어 낸 절묘한 결과다.
얼마 전 LVMH 그룹(루이비통, 크리스찬 디올, 마크 제이콥스, 펜디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 최대의 럭셔리 명품기업)이 파리올림픽에 약 2200억원을 후원했다. 가방과 고급 양주를 팔던 기업 LVMH가 이제 전 세계 주요 도시의 부동산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샹젤리제 거리의 루이비통 플래그십 스토어부터 미국 마이애미 디자인 지구까지 개발했다. 올해에는 캐나다 몬트리올에 '모두를 위한 명품'(luxury for all), '진정한 자아의 표현과 꿈의 실현'(to live their dreams and express their truest selves)을 내세운 대규모 '레이마운트(Raymount)몰'을 개장했다. '꿈의 도시' 라스베가스와 유사하다.
이러한 도시 개발은 세련된 디자인과 고품질의 시설로 도시 경관을 개선하고 관광 수입도 증대시킨다. 그러나, 동시에 도시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경제적 괴리감과 박탈감 조장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도시민보다는 관광객을 위한 수익 창출 수단이기 때문이다.
파리의 유서 깊은 라 사마리텐 백화점은 창문 디자인 문제로 약 16년간 지역 사회와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비록, 시민사회가 졌지만 기업의 진통도 컸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한 그저 사기업이니 비난할 것도 없다. 다만, 터를 잡고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이 더욱 무거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명품도시'는 2010년경 명품 소비가 증가하는 시점부터 등장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좋은 도시와 명품도시는 다르다. '명품도시', '명품아파트', '명품공원', '명품관광', '명품한우', '명품사과' 등 명품이 안 붙는 데가 없다. 명품(名品)의 사전적 정의는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하고 가격이 아주 비싼 상표'의 제품이다.
우리가 말하는 명품도시는 소위 '베벌리 힐스' 구현이다. 고급 주거단지, 프리미엄 문화시설, 명문 학교 등이 밀집해 있는 곳을 명품도시로 칭하는 경우가 많다. 명품아파트를 보면 명쾌하다. 고급 주거단지와 근사한 공원을 만들어놓고, 외부인의 출입은 금지한다.
당연하다. 누가 명품을 나눠 쓰겠는가. 논현동에 펜디가 디자인한 초고가 레지던스인 펜디까사가 들어설 예정이다. 입주민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프리미엄 인테리어도 선보인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LVMH 같은 럭셔리 브랜드가 '우리 도시'를 매수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보가티(Bogaty)의 브랜드 컨설턴트 압둘라지즈는 명품도시의 가장 큰 특징은 '높은 생활비'라고 말한다. 매우 정확하다. 우리의 명품도시도 LVMH같은 럭셔리 브랜드 기업들이 만들고자 하는 도시와 유사하다. 15분 보행 생활권, 생태 정원과 탄소 제로, 에너지 효율화, 복합문화공간, 충분하고 쾌적한 도시! 추구하는 가치가 유사하다. 도시가 더디게 진화하고 있지만, 해 그늘 아래 달동네는 여전히 존재한다. 명품도시는 특정인의 도시가 아니다.
생활권 내에 제대로 된 공원이나 산책로 하나 없이 해외 유명 디자이너가 설계한 화려한 건축물과 쇼핑몰, 박물관을 유치하고, 대규모의 국제행사를 한다고 해서 명품도시가 되지는 않는다. 럭셔리 브랜드 기업이 왜 매장으로 만족하지 않고 부동산을 사들이고 도시계획에 손을 뻗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도시는 단순한 건축물 몇 개로 이루어진 정량적 합이 아니다. 건축물은 공간과 장소를 만들어 낸다. 공간의 연속성으로 존재하는 도시는 사용자의 생각과 의식을 지배할 수 있는 중력, 곧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
명품기업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은 공공재가 아니다. 극단적으로는 소비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100여 년 이상 소비자를 연구해온 기업들이다. 명품도시에서 시민들은 무엇을 소비하고 무엇으로 지불하는가. 도시는 시민의 집이자 안식처다.
우리나라의 명품 소비율은 세계 1위다. 지자체들이 힘주어 지난 14년 동안 명품도시를 만들어왔다. 과연, 우리 국민은 행복한가?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2023년 기준 세계 55위, 자살률 세계 4위, 서울의 글로벌도시지수는 세계 7위다. 행복지수 최상위 군에 있는 북유럽의 선진국의 글로벌도시지수(GPCI)는 높다.
그러나 도시지수가 높은 국가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아니다.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의 명품 소비율은 높지 않지만, 글로벌도시지수가 높은 도시는 명품소비율도 높다.
지자체의 안내 책자에는 특산물과 주요 관광지, 건축물 이야기 등 온통 사고 팔 것만 있다. 슈퍼마켓 카달로그와 다를 바가 없다. 명품은 '가격표'로 존재를 과시하고, 도시는 유명 건축물로 폼을 낸다.
도시는 공공재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의 극대화다. 한 사람을 하나의 꽃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예술적 열망이 '크리스찬 디올'을 만들었다. 영감과 가치의 원천은 순수하다. 모든 시민이 2~3억짜리 트렁크를 들고 돌아다니지는 못해도 어디든 누릴 수 있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많다면 살만한 도시이다.
단순히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어야 한다. 시민들에게 진정한 행복과 안정감을 제공하는데 아직 부족한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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