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네이티브’와 한자 교육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가을 개강을 앞두고 미국 언론에서 교육 관련 기사가 자주 눈에 띈다. 교육 관련 기사의 키워드는 해마다 차이가 있는데, 올해는 ‘교사의 불만’이다. 2018년까지만 해도 교사의 70%가 직업에 만족한다고 답했는데, 올해는 40%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만족도가 낮은 이유로는 적은 급여와 학생들의 태도를 주로 꼽았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수업 시간 휴대전화기 사용이 문제로 대두하였는데, 이 때문에 실제 많은 학교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휴대전화기 사용을 못 하게 막기도 한다.
이와는 별개로제트(Z)세대 중에는 컴퓨터 키보드로 글씨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기사도 눈에 띄고, 교육 현장에서 예전처럼 필기체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기사도 관심 있게 읽었다. 휴대전화기, 키보드, 필기체 등의 단어를 들으면 예전의 한국에서 치열했던 한자와 한문 교육 논쟁이 떠오른다.
한자와 한문은 한글과 한국어처럼 다른 개념이다. 한자와 한글은 문자이고 한문과 한국어는 언어다. 한국어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어느덧 전 세계 8100만명이 사용하는 언어지만, 한문은 라틴어 같은 고전 문어다. 한국에서는 이 두개를 혼용해서 사용한다. 1970년대 이후 한자는 국어 교육 과정에서 사라졌는데, 논쟁이 이어지면서 국어와는 별개로 ‘한문’이라는 선택 과목을 개설했다.
한문을 배우려면 한자를 익혀야 하니 이 수업에서는 한자를 가르쳤는데, 선택 과목이라 ‘제2외국어’처럼 교육 과정에서 다소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한자는 제2외국어와 달리 한국의 언어,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런 처우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한자 교육을 강조하는 이들의 요점은 대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한자를 알면 대부분 한자어로 이루어진 전문용어의 이해가 쉽고 표현 능력도 확장된다. 둘째, 한국 전통문화와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는 한자를 모르면 전통과 단절된다. 셋째, 한자를 알면 한자를 사용하는 중국과 일본의 언어를 더욱 쉽게 배울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인정받아 2022년 교육과정 개정에 반영되었다. 일반 선택 과목 ‘한문’을 비롯해서 진로 선택 과목 ‘한문 고전 읽기’, 융합 선택 과목 ‘언어 생활과 한자’ 과목이 등장했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한자를 안 배울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국어와 분리한 뒤 한자를 배우려는 학생은 계속 줄고 있다. 교육 과정과 입학 제도 변화가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그 저변에는 한자는 배우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렵다는 인식과 다른 과목이 더 중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깔렸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제2외국어 ‘한문 I’ 시험을 응시한 학생이 전체 학생 중 2.3%에 불과했다는 점이 현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실은 교육 제도와 학생들의 인식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오늘날 학생들의 언어 처리 방식은 매우 크게 달라졌다. 이들은 컴퓨터, 인터넷, 휴대전화기가 일상에 깊이 들어온 2000년대 이후 태어나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다. 2010년대 이후 태어난 이들은 아예 종이와 연필은 물론, 심지어 키보드보다 전화기 입력에 더욱 익숙하다. 이들에게 학교는 그 자체가 매우 묘한 아날로그 공간이다. 그러니 수업 시간에 교실에 앉아서 일상생활에서 거의 쓸 일이 없는 한자를 배운다는 것은 관심이 있어도 어렵고 관심이 없으면 괴로운 일이다. 한문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한자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디지털 네이티브’가 다수가 될 것은 자명하다. 학교도 어쩔 수 없이 세대의 변화에 맞춰 변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오늘날 휴대전화기를 방해자로 규정하기보다 친구로 만드는 쪽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조의 변화에 맞춰 한자 역시 이들의 흥미를 끄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한자 교육 관련 논쟁은 이제 명분보다 방법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한국어의 특성상 외면할 수만은 없는 한자 교육에 21세기 중반에 맞는 새로운 매력을 부여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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