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보의 회장의 고백 “응급실 투입?…공보의가 할 수 있는 치료는 사실상 없다”

정윤경 기자 2024. 9. 4.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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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갓 졸업해…병원서 실무 교육도 못 받았다”
응급의학과 교수 “공보의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청소뿐”
공보의 파견으로 농어촌 지역 보건지소 문 닫기도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정부가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응급실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중보건의(공보의)를 투입했지만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성환 대한공중보건의사협회 회장은 "환자들로부터 MRI·CT 검사 동의서를 받는 아주 기본적인 업무만 하고 있다"며 "의료 교육을 아예 받지 않고 응급실에 투입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이 회장은 서울시내 한 대형병원에 파견된 공보의다.

병원 입장에선 숙련되지 않은 공보의에게 응급환자 진료를 맡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투입된 공보의 상당수가 의대를 갓 졸업하고 의사 면허만 취득한 일반의라서다. 응급의료 정상화를 위해선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배치해야 하는데, 투입된 공보의 중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인원은 10명 중 3명꼴이다. 이마저도 응급의학과와 관련이 없는 영상의학과 등 다른 진료과목 전공자가 대다수다.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공보의가 할 수 있는 일은 의국 청소뿐"이라고 말했다.

9월4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응급실 운영이 일부 제한된 의료기관에 총 15명의 군의관을 투입했다. 9월9일부터는 약 235명의 공보의와 군의관을 위험 기관 중심으로 집중 배치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정부가 국민에게 안도감을 주기 위해 응급실의 양적 인력만 늘리는 데 급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응급실 병상 포화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응급실에 투입된 공보의들은 어떤 일을 하나.

"공보의는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위치기에 아주 제한적인 수준으로 실무를 보조한다. 환자들로부터 MRI·CT 검사 등에 대한 동의서를 받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다. 동맥혈 채혈, '콧줄'이라 불리는 비위관 삽입 등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낮은 업무에 투입되기도 한다. 환자들은 공보의가 늘어남으로써 제때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공보의가 할 수 있는 치료는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

환자를 적극적으로 진료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파견된 공보의 중 전문의 비율이 30%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응급의학과 전공은 한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정부가 이를 알면서도 응급실 인원을 늘려야 하니까 무리하게 인력을 배치한 것 같다."

기본적인 실무 교육은 받고 투입되는 건가.

"'공보의들이 전공의 업무를 맡기 전 병원에서 열흘간 실무 교육을 받는다'고 정부가 발표한 적 있는데, 의료 관련 교육은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일분일초가 급박한 응급실에서 어떠한 교육이 이뤄지겠나. 짧게는 며칠, 길어도 4주 안에 떠날 사람들인데 병원도 가르칠 여력이 없을 것이다. 행정 직원이 와서 6시간 정도 EMR(전자의무기록시스템) 사용법 등을 알려주는 것이 전부다."

만약에 의료 사고가 발생하면 법적 책임은 누가 지나.

"어느 병원으로 파견을 가는지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 서울시내 주요 병원인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의 경우 워낙 환자도 많고 사건사고도 자주 일어나다 보니 법무팀이 잘 갖춰진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소병원은 그렇지 못한 곳이 대다수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공보의 의료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병원에 위임해 버렸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에 이 같은 문제점을 전달해 봤나?

"해봤는데 복지부로부터 '의사 결정 라인에서 반려됐다'는 답변을 들었다."

공보의들이 대형병원으로 파견되면서, 근무했던 보건지소 등이 진료를 중단하고 있는데.

"전북 부안의 보건소에서 근무를 하다 병원 배치를 받았는데 두고 온 환자들 생각에 사실 마음이 무겁다. 지역 보건소에서는 결핵에 대한 판독뿐만 아니라 예방 접종, 원격 진료 등 굉장히 많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지역 내 유일한 의료기관인 보건지소가 문을 닫게 되면 환자들은 갈 곳을 잃는다. 이곳을 찾는 환자 대다수가 고령인 데다 코로나19가 재유행한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공보의들이 응급실에서 도움을 줄 수 없다면, 파견을 취소하고 지역 의료라도 지킬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막 대학을 졸업한 의사와 사직한 전문의를 동일한 선상에서 보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정부는 국민에게 당장의 안도감을 주기 위해 질적인 측면은 전부 무시하고 응급실의 양적 인력만 늘리는 데 골몰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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