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방송 현장 있었는데 지금이 미디어 패러다임 완전 바뀌는 시점"
[2024 미디어의 미래] 미디어 현장에서 바라본 인공지능
동아일보 챗봇부터 인공지능이 진행하는 K팝 오디션까지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신문사, 방송사, 미디어 스타트업까지. 2024년 미디어 현장에서 인공지능(AI)은 어떻게 사용되고 있을까. 최전선에서 느끼는 AI의 투자 대비 효과는 얼마나 될까. 김현지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사업전략팀장은 “AI를 활용해 독자와 접점을 찾아내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심한 포털, 빅테크 종속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4일 서울 강남구 섬유센터 이벤트홀에서 미디어오늘 주최로 '2024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가 열렸다. 두 번째 세션 'AI와 미디어 현장'에선 김현지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사업전략팀장, 노혜령 프레스온 대표,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최민근 MBC PD 등이 현장의 인공지능 실험과 관련해 발표와 토론을 맡았다.
신문사가 챗봇을? 동아일보가 만든 챗봇 'AskBiz'
동아일보는 2023년부터 AI를 활용해 챗봇 'AskBiz'와 요약·번역·오디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챗봇 서비스를 도입한 이유로 김현지 팀장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이 전문지라 기사가 길어 다 읽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좋은 정보가 묻히는 안타까운 마음에 어떻게 하면 기사 활용도를 높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챗봇과 달리 'AskBiz'는 답변할 때 참조한 기사의 링크를 공유한다. '할루시네이션'(환각)을 방지하면서 신뢰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진다.
테크기업이 아닌 신문사가 자체 챗봇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김현지 팀장은 “서비스가 주목을 받은 건 챗GPT API(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를 쓰지 않고 저희만의 sLLM(소형거대언어모델)을 만들겠다 했기 때문”이라며 “어려운 길이었다. 답변의 수준이 낮았고 서버 자원을 많이 잡아 비용을 많이 들여도 동시 접속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이후 LLM(거대언어모델)으로 방향 전환을 과감하게 했다. 지금 sLLM 성능은 당분간 LLM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며 “언론재단 챗봇 '빅카인즈AI'와 협업 모델을 구축했다. 빅카인즈AI의 챗봇 프레임과 LLM을 같이 쓰면 개발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올해 고도화를 해 오는 11월 좀 더 개선된 성능의 챗봇을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가 만든 AI '헤이스테커', 새로운 탐사보도 유형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헤이스테커'(Haystacker)라는 빅데이터 분석 AI 툴을 만들어 이를 바탕으로 선거 팩트체크 기사를 만들었다.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미국 내 방영된 선거 캠페인 광고를 모두 수집해 '이민' 키워드를 추린 다음, '헤이스테커'에 분석을 맡겼다. 헤이스테커는 이미지, 자막, 사물 등을 추출해 자동으로 '레이블링'(분류) 작업을 수행했다.
노혜령 프레스온 대표는 “WP는 신문이다. 그런데 첫 화면이 분석한 동영상 광고들로 미디어아트처럼 번쩍번쩍 빛나면서 나온다. 스크롤을 한 네 번 정도 내려야 익숙한 텍스트 기사가 나온다”며 “텍스트 중간에도 동영상이 계속 배치돼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탐사보도 기사와 매우 다른 유형”이라고 말했다.
노혜령 대표는 “영화에 비유한다면 복합 장르의 블록버스터라고 생각한다. 이 기사를 쓴 5명의 기자를 포함하면 직접적으로 투입된 인력이 20명”이라며 “다른 메이저 (해외) 언론들도 이런 비주얼 탐사보도에 AI를 동원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AI를 활용해 속보를 빠르게 내보내는 로이터의 '트레이서' 시스템, 디지털 발자국을 통해 홈페이지 데이터를 분석하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다이내믹 페이월' 등의 사례를 나열한 노혜령 대표는 “결국 AI에 투자해 기자들의 시간을 줄이고 줄인 시간으로 비주얼 탐사 보도와 같은 고품질 저널리즘을 실현한 사례”라며 “새로운 데이터가 필요한 AI 플랫폼들의 저작권료 협상에서 이러한 고품질 콘텐츠로 (언론사들이)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AI에 대한 투자는 대형 언론사들만 가능한 일로 보인다. 노혜령 대표는 “중소 미디어들은 (기업이 만든) AI 툴로 자동화하는 데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결국 차별화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이고 같은 논리로 저작권료 협상력을 줄이는 악순환의 결과를 가져온다”며 “우울하게 말하면 '빈익빈 부익부'가 된다. 이런 걸 타개하기 위해 분산된 언론 구조로 다양성을 자랑하던 북유럽 언론들이 최근 M&A를 통해 덩치 키우기에 나섰다”고 전했다.
노 대표는 “한국은 소형 언론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AI의 지속 가능한 투자를 막는 장애물”이라며 “경영전략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 전통적으로 편집국 의존적인 경영 문화를 갖고 있는데 전략적 마인드를 받아들이고 외부의 다른 경험이 있는 인재들을 영입하는 것 등이 필요하다. 그래야 지속 가능한 언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대비 기자가 적은 한국 뉴스룸… '살인적' 노동량
문체 변경 AI '오웰'을 만든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는 아직 한국 언론이 대대적으로 AI를 도입하기엔 '체력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성규 대표는 “보도자료에 대한 업무 부담은 커지고 기자들의 불만은 늘어난다. AI 시대가 왔다고는 하지만 대응할 만한 자본력, 기술력을 갖추기 어려운 상황이란 걸 여러분들도 충분히 아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오웰은 중소 규모의 언론사 기자들이 깊은 기사를 쓸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자는 솔루션으로 만들어졌다”며 “그 결과 올해 7월 기준 2600만 토큰을 사용하고 ARR(연간반복수입)이 3600만 원에서 4000만 원 사이 리텐션(재방문)은 60%가 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실제로 중소 규모의 지역 언론사 혹은 인터넷 신문사 중심으로 오웰에 대한 유료 전환 의사가 높게 나타난다는 걸 확인했다”며 “영미권의 대형 언론사들에 비하면 국내 뉴스룸의 기자 수는 상대적으로 적다. 그리고 그 기자들의 노동량은 생각보다 살인적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원치 않아도 AI 도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AskBiz'와 같은 챗봇도 언론사들이 결국 도입하게 될 것이란 주장이다. 이 대표는 “모든 언론사들이 챗봇을 갖게 되는 환경으로 넘어갈 것이다. 가격도 싸지고 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결과적으로 검색창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며 “결국은 고품질이 문제다. 품질이 평균 이상 되는 언론사들만 살아남는 흐름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콘텐츠 생산자와 수용자 구분 모호해지는 '하이퍼 소사이어티'
세계 최초로 AI가 연출한 프로그램 'PD가 사라졌다'를 제작한 최민근 MBC PD는 “20년 정도 방송 현장에 있었는데 지금 순간이 미디어 패러다임이 완전 바뀌고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민근 PD는 “지금까지는 콘텐츠 서사가 매체를 우선했다. 어떤 아이디어가 먼저 있으면 텍스트로 대본을 만들고 스토리로 제작해 플랫폼에 띄우는 과정이었는데 이게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앞으로는 제작자와 시청자, 출연자의 경계와 플랫폼의 경쟁력 모두 희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산업 간 융합 현상을 '빅블러'(Big blur)라고 한다. 최 PD는 “레거시 미디어 현장에선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세상은 바뀌었다. 이 경계선에선 항상 새로운 콘텐츠와 장르가 나왔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최종 종착지가 메타버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AI 영역에선 시청자들이 기존 콘텐츠를 활용·가공·변형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재생산한다. 오리지널과 복제물이 앞으로도 구분될 수 있을까”라며 “모든 경계가 무너지고 또 모든 것이 연결되는 '하이퍼 소사이어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하이퍼 소사이어티는 콘텐츠를 마음껏 향유하고 재생산해내는 능동적인 수용자의 진화와 함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 패러다임이 바뀐다 하더라도 제작하는 '인간'의 고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최 PD는 “AI가 많은 걸 덜어준 것도 맞지만 한편으로는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거쳐야 할 고민들도 많아졌다. 지금은 AI와 인간이 서로 협력하면서 조화됐을 때 최적의 결과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최 PD는 'PD가 사라졌다'의 다음 프로젝트로 AI가 진행하는 K팝 오디션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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