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훈칼럼] 국민연금만 개혁해선 실패한다

송성훈 기자(ssotto@mk.co.kr) 2024. 9. 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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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주 매클레인에 가면 '마이터(MITRE)'라는 곳이 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항공망부터 국토안보·국방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곳이다.

마이터 본사를 안내해준 한국인 직원의 설명은 대략 이랬다.

고령화가 초고속으로 진행 중인 한국은 더욱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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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은퇴자 90만명씩 쏟아져
중장년층 고용 대책 마련해야
노동개혁없는 정년연장은
일부 대기업 정규직만 혜택

미국 버지니아주 매클레인에 가면 '마이터(MITRE)'라는 곳이 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항공망부터 국토안보·국방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곳이다. 냉전 시절에 생겼고 아직도 미국 의회에서 직접 예산을 지원받는다.

20년 전 방문이었지만 독특하게 일하던 방식이 아직도 생생하다. 조직 구성을 보면 이공계 출신 엔지니어와 경영대 MBA 출신을 반반 섞었다. 나이도 20대부터 60대까지 골고루 다양했다. 마이터 본사를 안내해준 한국인 직원의 설명은 대략 이랬다.

"사내 게시판에 누구나 프로젝트를 같이할 사람을 구한다고 올릴 수 있고 어느 정도 팀원이 모이면 시작한다. 프로젝트마다 달랐지만 20·30대가 팀 리더를 맡고 50·60대 선배들이 팀원으로 활동할 때 좋은 성과가 나오는 프로젝트도 많다. 젊은 층 특유의 밀어붙이기와 고참들의 오랜 경험이 잘 어우러졌을 때다."

오래전 마이터 취재 기억을 떠올린 것은 국민연금 개혁안을 보면서다. 세대 간 형평성과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는데, 은퇴자 고용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당장 정년 연장이 이슈인데 지금 같은 상황에선 극소수 대기업의 정규직 중장년층만 혜택을 볼 뿐이다.

은퇴자 고용은 전 세계적인 화두다. 마우로 기옌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마이터처럼 여러 세대가 함께 일하는 '멀티 제너레이션' 시대가 왔다고 강조한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베이비붐세대부터 MZ세대까지 한 곳에서 일하는 것이 보편화하고 있고 이미 BMW를 비롯한 다양한 기업에 도입돼 있다는 설명이다.

고령화가 초고속으로 진행 중인 한국은 더욱 시급하다. 올해 53세인 71년생 돼지띠를 중심으로 하는 '2차 베이비붐세대'를 어떻게 할지 답을 내놔야 연금개혁이 제대로 풀린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71년생은 92만8584명이다. 연령별 인구 막대그래프를 그려보면 가장 높다. 뒤를 이어 68년생, 69년생, 70년생이 줄줄이 90만명을 웃돈다. 2차 베이비붐세대로 분류되는 65년생부터 74년생까지 인구만 954만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의 20%에 육박한다.

이들이 앞으로 10년간 줄줄이 정년을 맞아 쏟아져 나온다. 지금대로라면 변변한 일자리 없이 연금을 기반으로 버티는 노후생활자로 대부분 전락한다. 2022년 기준으로 한국은 55~65세 임금 근로자 중에서 임시고용 근로자 비중이 30%를 넘겨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그만큼 고용 불안정성이 높다는 얘기다.

올 3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보고서에서 "해고가 자유로운 노동시장으로 알려진 미국에 비해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중장년층 임금 근로자의 고용 불안정성이 더욱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한국과 미국 근로자가 한 직장에서 얼마나 근속하고 있는지 비교해봤다. 50대 초반까지는 거의 똑같이 높아졌던 근속연수가 50대 중반에서 확 달라졌다. 미국 남성은 근속연수가 10년을 넘어 15년을 향해 계속 늘어갔지만, 한국은 10년에서 5년으로 뚝 떨어지더니 60세가 되면 2.5년으로 급락했다. 해고가 쉬운 미국은 50대 중반 이후에도 정규직 직장을 계속 다니지만, 한국은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얘기다.

한번 채용하면 해고하기 힘들고, 나이가 많아질수록 연공서열에 따라 임금이 급격히 높아지는 구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강력한 근로자 보호가 강력한 장벽이 된 셈이다.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은퇴자들이 젊은 세대와도 함께 일할 수 있게 된다. 그러지 않으면 71년생 돼지띠 상당수는 또 다른 치킨집 사장의 길을 택할 것이 뻔하다.

[송성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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