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심장’ 호남, 양보할 수 없는 ‘한 판 승부’ 예고하는 이재명과 조국
혁신당, 2016년 국민의당 돌풍 소환…“호남 지자체 선거서 ‘당대당’ 경쟁력 확보한 첫 사례”
여전히 ‘적수’ 안 된다는 민주당…“총선 득표율은 ‘지민비조’ 효과 덕분, 이번엔 달라”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호남은 사실상 민주당 일당의 독점 상태다. 고인 물은 썩으니 흐르게 해야 한다."(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전남의 도움만 받는 민주당이 아닌, 적격한 민주당으로서 새롭게 노력하겠다."(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진보 진영의 심장인 호남에서 펼쳐질 '10‧16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치열한 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혁신당은 '비교'를 키워드로 민주당 독점 상태인 호남 정치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겠다며 총력전을 선포했다. 당내 의원들은 바쁜 중앙정치 일정에도 호남 '월세살이'까지 예고했다. 이에 맞서 민주당 지도부도 호남 현장으로 발걸음을 재차 옮기며 최근 불거진 '호남 홀대론'을 불식시키려는 모습이다. 총선 후 펼쳐질 민주당과 혁신당의 첫 전면전에서 호남이 어느 편에 손을 들어줄지 주목된다.
'호남살이' 구애 나선 혁신당, '호남 홀대론' 방어 중인 민주당
혁신당은 '10‧16 재‧보궐선거는 2026년 지방선거의 바로미터'라는 기치를 바탕으로 중앙당 차원에서 일찌감치 재‧보궐선거기획단을 꾸려 화력을 쏟아붓고 있다. 혁신당은 선거가 열리는 전남 영광·곡성군수, 부산 금정구청장, 인천 강화군수 후보를 내고, 지역별 '책임 전담제'를 도입해 당내 의원들도 선거전에 주력하게 했다. 구체적으로 ▲전남 영광에 서왕진·박은정·강경숙·정춘생 의원 ▲전남 곡성에 신장식·김준형·김선민 의원 ▲부산 금정에 황운하 원내대표와 김재원·이해민·차규근 의원이 전담한다.
특히 혁신당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던 전남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조국 대표와 의원들은 정기국회를 대비한 전체 의원 워크숍을 지난 8월29~30일 영광‧곡성에서 개최한데 이어, 영광 터미널 시장과 곡성 노인정을 방문하며 민심 스킨십에도 나섰다. 당시 조 대표는 "우리 후보와 우리 정책이 민주당보다 낫다"고 자신하며 "추석 연휴 전에 재보선 지역별 맞춤 공약을 발표할 것"이라고 지역 주민들에게 약속했다.
여기에 조국 대표‧신장식 원내부대표 등 지도부 일원은 호남에 '월세살이'를 예고하며 바닥 표심을 진정성 있게 다질 계획도 세워둔 상태다. 혁신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조 대표는 전남에서 월세살이를 하는 동시에 부산 금정도 활발히 오가며 선거를 총지휘할 계획이다. 신 원내부대표는 9월7일부터 곡성살이를 시작할 예정이다. 정기국회 시즌에도 매주 곡성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면서 국정감사 등 바쁜 일정을 병행하겠다는 각오다.
혁신당의 행보를 견제한 듯 민주당 지도부도 부랴부랴 '호남 민심 달래기'에 나선 모양새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8월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전남 지역은 민주당의 정치적 원천일 뿐만 아니라 이재명 대표의 에너지 고속도로 실현의 최우선 지역"이라며 차별화된 호남 공약들을 예고했다. 실제로도 김민석 최고위원은 한준호 최고위원과 함께 8월24일 전남 곡성을 방문해 지역 주민들과 스킨십하며 당의 호남 지원 의지를 다졌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김 최고위원은 8월30일 인천에서 1박2일 워크숍이 끝난 직후 박찬대 원내대표, 이언주 최고위원과 곧바로 전남 순천‧영광으로 또 발걸음을 옮겼다. 이들은 전남도의원‧영광군의원들과 릴레이 간담회를 가진 후 영광터미널 인근 시장에서 현지 민심도 함께 청취했다. 당시 박 원내대표는 전남도의원 간담회에서 "민주당이 이전까지 아쉽고 많이 부족했다"고 반성하기도 했다. 호남에서 기세등등한 혁신당의 태도와 대조되는 부분이다.
"호남 유권자는 똑똑해…민주당 못하면 '국민의당 돌풍' 재현될 것"
혁신당이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자신감을 보이는 근거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데이터 수치'에 있다. 당초 혁신당은 지난 4‧10 총선에서 민주당을 꺾고 비례대표 호남지역 득표율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혁신당이 군수 출마를 예고한 전남 곡성‧영광에서도 각각 39.88%, 39.46% 득표율을 보였다. 민주당 주도 위성정당이었던 더불어민주연합의 득표율(41.13% 40.1%)과 근소한 차이였다.
민주당 내 최대 이벤트인 전당대회에서 나타난 수치도 호남의 변화된 기류를 보여주고 있다. 최종 권리당원 온라인 투표율은 전북(20.28%)·전남(23.17%)·광주(25.29%) 모두 20%대 초중반에 머물러 역대 전당대회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 전당대회 결과로 꾸려진 지도부 구성에서 호남 정치인이 사실상 실종되면서 민주당은 자연스레 '호남 소외‧홀대' 지적까지 받게 됐다.
실제 호남 민심도 민주당에 대한 '의리' 대신 지역 발전에 도움 되는 '대안'을 찾는 목소리가 부쩍 늘고 있다. 일각에선 2016년 4월 총선 당시 '국민의당 돌풍'을 소환하는 말까지 나온다. 당시 안철수 대표(현 국민의힘 의원)가 만든 국민의당은 호남 지역구 28석 중 23석을 휩쓸며 민주당을 압도한 바 있다. 호남 지역구의 민주당원 전아무개(56)씨는 시사저널에 "호남 유권자들은 똑똑하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에 힘을 실어주면서 입증하지 않았나"라며 "이번에도 민주당이 제대로 못하면 혁신당에 힘이 실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재관 혁신당 전략부원장은 통화에서 "호남 민심에 대한 '기대'가 있다"며 "지난 30년간 호남 지방선거에서 '당대당' 경쟁이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총선에서도 2016년 국민의당이 민주당과 한 차례 경쟁한 것이 전부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런데 지난번 총선의 정당 투표에서 민주당과 대등한 싸움을 하고 정당 투표에서 전남에서는 이기면서, 당대당으로 경쟁력을 갖춘 있는 정당이 사실상 처음 나온 것"이라며 "유권자들이 당대당으로서 후보들에 대해 '비교견적'을 해볼 수 있도록 새로운 선택지가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혁신당 여론조사 성적표는 '기대 이하'…민주당에선 "이변 없을 것"
민주당에서는 겉으로는 호남 민심에 구애하며 바짝 엎드리는 모습이지만, 내심 "여전히 혁신당은 적수가 안 된다"는 시각이 만연한 분위기다. 민주당의 자신감에도 역시 데이터 수치와 자체 분석 결과가 바탕으로 깔려 있다. 일단 최근 실시된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혁신당의 정당 지지율은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로 떨어진지 오래다. 국회가 거대 양당의 강대강 대치로 흘러가는 가운데 소수 정당인 혁신당의 입지가 크게 줄어든 셈이다.
혁신당이 자신감의 근거로 내세운 '총선 비례대표 호남지역 득표율'에 대해서도 "걱정할 것 없다"는 것이 민주당 입장이다. 총선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투표 방식이 다른 만큼, 총선 결과를 이번 선거의 전망 지표로 활용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이유에서다. 총선은 한 유권자가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정당을 따로 선택할 수 있는 반면, 재‧보궐선거에선 한 유권자가 한 명의 후보만을 선택할 수 있다.
총선 당시 혁신당이 내세웠던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 전략에 따라 민주당을 지지하는 호남 유권자들이 지역구는 민주당 후보를, 비례 정당은 혁신당을 선택하면서 혁신당의 득표율이 이 정도로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 민주당 측 설명이다. 민주당 전략 사정에 밝은 한 의원은 "총선 상황의 특수성으로 당시 혁신당이 호남에서 기록한 득표율은 맥스(max·최대치)였을 것"이라며 "이번 선거의 혁신당 승리 근거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총선 직후부터 최근까지 여론조사를 보면, 혁신당에 대한 호남 지지율은 박스권에 갇혀 있는 모양새다. 한국갤럽의 총선 직후(4월3주차)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혁신당의 호남 지지율은 22%에 그친 반면, 민주당은 51%를 기록했다. 특히 한국갤럽의 최근 4차례 조사에서 혁신당은 20%(7월3주차)→17%(7월4주차)→17%(8월4주차)→15%(8월5주차)의 호남 지지율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민주당의 호남 지지율(48%→53%→52%→50%)과 비교하면 양당의 격차는 3배 이상으로 벌어졌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같은 수치적 열세를 뒤집을 전략으로 혁신당은 '절실함'에 방점을 찍고 있다. 윤재관 부원장은 "의원들이 호남에 상주하는 것도 한 번의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의 절실함과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지역 정치는 사실상 텃밭 정당과 실력자에 줄 서는 것에 불과했다. 그것을 바꾸고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는 우리의 절실한 마음을 잘 전달하는 게 최고의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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