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한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휴전 협상…필라델피 회랑이 왜?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둘러싼 장벽을 넘어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으로 이스라엘 사망자는 1,200여 명에 달했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4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가자지구 주민 대부분은 삶의 터전을 떠나 텐트촌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음식과 식수가 부족하고, 의약품은 구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현지 언론은 전하고 있습니다.
■ 시신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인질 6명···"살려서 집으로 데려와라" 70만 명 시위
지난달 31일, 이스라엘 군은 가자지구의 최남단 라파에서 하마스 땅굴을 수색하던 중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에 끌려간 인질 6명을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한발 늦었습니다. 인질들은 참혹하게 숨진 채 버려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근거리에서 발사된 여러 발의 총탄에 희생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부검 결과 인질들의 사망 시간은 군인들이 발견하기 24~48시간 전으로 추정됐습니다.
인질 6명이 차디찬 시신으로 가족의 품에 돌아왔다는 소식은 이스라엘 국민을 분노하게 했습니다. 인질들을 죽인 하마스에 대한 분노가 컸지만, 인질을 살려 데려오지 못한 정부에 대한 실망도 그만큼 컸습니다. 이런 실망감은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며 휴전 협상을 타결짓지 않고 있는 정부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더구나 죽어서야 돌아온 인질 6명 중 3명은 휴전 협상이 타결되기만 하면 살아 돌아올 기회가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스라엘 국민의 분노 게이지는 치솟았습니다. 지난해 이스라엘 인질과 이스라엘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죄수를 맞교환했는데, 당시 여성, 19세 미만, 50세 이상 노인, 환자 순으로 가족에게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숨진 채 발견된 미국 이스라엘 이중 국적자인 허시 골드버그 폴린(23세)는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공격 당시 심각한 부상을 당해 왼팔 일부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협상이 타결되면 먼저 석방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이 공개되자 성난 이스라엘 국민은 거리로 나서 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 도심에서 수십만 명의 인파가 협상에 미온적인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열리는 등 이스라엘 곳곳에서 시위가 열렸습니다. 인질가족단체는 지난 1일 밤부터 2일 새벽 사이에 70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혔습니다. 전쟁 발발 이후 거의 매주 협상 타결을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대규모 시위는 처음입니다.
시위대는 즉시 휴전에 들어가 남은 인질을 살려서 데려올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마스 척결도 중요하지만, 인질을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소리쳤습니다.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다시 선거를 실시해 새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전쟁 내각, 필라델피 회랑에 군 주둔 결의안 채택···국방장관, 반대표 던져
이스라엘 전쟁 내각 안에서도 지지부진한 협상을 놓고 불협화음이 노출됐습니다. 지난 8월 29일 안보내각 회의가 열렸는데, 이스라엘군을 필라델피 회랑에 계속 주둔시키는 내용의 결의안이 통과됐습니다. 필라델피 회랑은 가자지구와 이집트 국경을 따라 설정된 길이 14km, 폭 100m의 완충지대입니다. 이집트와 가자지구를 가르는 국경 철조망이 있으면, 철조망 넘어 가자지구에 필라델피 회랑이 있습니다. 지난 5월 이스라엘군이 필라델피 회랑을 장악했는데, 네타냐후 총리는 이곳에서 이스라엘군을 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반면 요하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이 결의안이 인질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며 네타냐후 총리를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필라델피 회랑에서 이스라엘군을 철수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필라델피 회랑이 하마스가 무기를 획득하는 주요 경로라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질 6명이 숨진 채 돌아온 직후인 지난 9월 2일 네타냐후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어 “인질들이 생환하지 못한 점에 대해 유족들에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더 많은 학살과 납치, 실존적 위협을 막기 위해 필라델피 회랑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마스가 필라델피 회랑을 통해 무기가 들여오는 경로를 그린 그래픽을 통해 보여주면서 자신의 의견에 비중을 실었습니다.
■ 필라델피 회랑 '가자지구와 이집트 사이 완충지대'
필라델피 회랑은 가자지구와 이집트 국경을 따라 설정된 길이 14km, 폭 100m의 완충지대입니다. 2005년 오슬로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철수하기 전까지는 필라델피 회랑을 이스라엘군이 통제했습니다. 필라델피 회랑에서 이스라엘군이 철수한 이후 이곳은 이집트에서 가자지구로 물자가 유입되는 주요 통로가 됐습니다. 이스라엘쪽 통로를 통해 가자지구로 물자를 들여오려면 다소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해야 했던 탓에 가자지구 주민들은 땅굴을 파서 이집트에서 물건을 들여오는 방법을 선호했습니다. 차량도 터널을 통해 밀반입했다는 증언이 있을 만큼 거의 모든 물건이 땅굴을 통해 가자지구로 반입됐습니다.
2006년 1월 선거에서 승리한 하마스는 2007년 7월 가자지구의 명실상부한 통치권력으로 자리 잡습니다. 하마스가 이 땅굴을 무기 밀반입 통로로 사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하마스는 집권 이후 2008년과 2012년, 그리고 2013년에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릅니다. 2013년 전쟁 당시에는 ‘까삼 로켓’까지 발사하며 이스라엘군에 저항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쌓은 장벽과 이집트 국경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가자지구가 로켓을 들여올 수 있는 통로는 땅굴 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서 하마스가 발사한 로켓으로 이스라엘 민간인의 피해가 잇따랐습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로의 무기 반입을 막기 위해 필라델피 회랑 아래에 있는 땅굴을 주목했습니다.
당시 필라델피 회랑 아래 땅굴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 다만 얼마나 많은 땅굴이 있었는지 유추해볼 수 있는 단서는 있습니다. 하마스와의 무력 충돌이 잦아진 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무기가 필라델피 회랑 아래 터널을 통해 가자지구로 유입된다며, 가자지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집트에 강력 항의했습니다. 필라델피 회랑 아래의 땅굴이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며 단속을 요구했습니다. 이집트는 1979년 아랍국가 중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체결한 국가입니다. 이스라엘과 대화를 하는 몇 안되는 아랍국가입니다. 이스라엘의 강력한 항의를 받은 이집트는 땅굴 수색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2014년 이집트 정부는 땅굴 수색과 파괴 작업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무려 1,200개의 땅굴을 찾아내 파괴했다고 공개했습니다. 14km 길이의 회랑 아래로 1,200개의 땅굴이 있었다고 하니 땅굴이 얼마나 촘촘하게 들어서 있었는지 상상이 안 될 정도입니다.
이집트의 조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가자지구를 접하고 있는 이집트 국경 주변의 민간인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고 민간 시설은 철거했습니다. 이 조치로 인해 이집트 국민은 가자지구와 접한 이집트 국경 5km 이내에는 거주할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는 대신 가자지구의 남부 라파의 건너편에 이집트 라파 신도시를 건설해 주민들의 이주를 유도했습니다. 이집트는 필라델피 회랑과 이집트 국경 주변에서 일어났던 반이스라엘 행위를 단속하고, 억제하는 데 최선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도 가자지구와 맞닿은 이집트 국경은 허가가 있어야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도 필라델피 회랑과 주변 지역에 하마스의 땅굴이 존재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5월 필라델피 회랑을 다시 통제하게 된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땅굴 수색 작전에 나서 필라델피 회랑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지난 8월 이스라엘군이 필라델피 회랑 근처에서 발견한 땅굴이라며 공개한 사진을 보면 땅굴은 군용 트럭이 통과할 정도로 규모가 컸습니다. 이스라엘군은 해당 땅굴이 어디로 연결됐는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른 땅굴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언급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엔은 이 땅굴의 존재로 인해 필라델피 회랑이 하마스의 무기 반입 경로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습니다.
하마스가 필라델피 회랑을 통해 무기를 들여오고 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은 주변국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집트 외무부는 네타냐후 총리의 기자회견 다음 날인 9월 3일 반박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이집트 국경을 통해 하마스의 무기가 반입된다는 네타냐후 총리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네타냐후 총리 기자회견에서 이집트의 국가명이 거론된 자체에 대한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또 이스라엘이 휴전과 인질 석방 협상을 방해하기 위해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을 비난했습니다. 이집트의 성명은 주변 아랍국가의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가자지구 전쟁에 대해 비교적 언급을 자제해온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집트 성명에 대해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협상 중재국인 카타르와 아랍권에서 영향력이 있는 요르단도 이집트 성명에 대한 연대를 선언했으며, 아랍에미리트도 동참했습니다. 필라델피 회랑을 놓고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간의 묘한 대결구도가 형성되는 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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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형 기자 (the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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