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범죄, 소수 괴물의 일탈이 아니다”···“성평등 교육해야”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 보도를 처음 접하고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부끄럽지만, 익숙함이었습니다. 남고 재학 시절 같은 반 친구들이 여성 교사·학생·연예인의 사진을 돌려보며 품평과 성희롱을 하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 주최 ‘디지털 성범죄 근절, 청소년을 위한 정책 총력 대응 촉구 기자회견’에서 대학생 김찬서씨(20)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돌아보며 반성했다. 그는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딥페이크 성폭력이 왜 문제인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가해자를 악마화하기만 한다면 남성 청소년들은 이러한 문화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견에서는 이 같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화’와 이를 방치한 사회가 최근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됐다. 손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여성을 조롱하고 여성의 신체 부위를 품평해도 사회가 이를 허용했기 때문에 이처럼 참담한 결과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한 남다른성교육연구소 성평등교육전문위원은 “이번 사태는 소수 괴물의 일탈이 아니다”라며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한 반발)에 올라타 적극적으로 여성 혐오를 조장·방치한 정치인,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과 같은 기관의 문을 닫아버린 서울시, 성 인권 교육 예산을 0원으로 만들고 성평등 주무 부서인 여성가족부를 유명무실하게 만든 정부가 차곡차곡 성평등을 무너트린 결과”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에 대한 대안을 ‘교육’에서 찾았다. 단체들은 이날을 ‘제1회 성교육의 날’로 선포하고 포괄적 성교육·성평등 교육의 실시를 촉구했다.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는 “올해 처음 선포되는 성교육의 날의 슬로건은 ‘모두를 잇는 성교육, 서로를 잇는 성교육’으로 했다”며 “지난해 1377명의 청소년과 시민들이 ‘학교와 가정에서 성교육이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모아 제정됐다”고 밝혔다. 이어 “사교육이 아닌 공교육에서, 청소년들이 건강하고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도록 성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옥희 한국다양성연구소 활동가는 “제도와 문화가 성착취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니 딥페이크 성착취는 하나의 ‘놀이 문화’로 확산한 것”이라며 “제대로 된 성평등·성교육이 공교육 내에서 의무 학년제로 자리할 수 있도록 포괄적 성교육 기본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학부모단체도 이날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회견을 하고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을 위해 국가 차원의 대책과 예방교육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학부모회 등은 전국 초·중·고교 대상 딥페이크 성범죄 전수조사, 피해자 회복 및 법률지원 보강, 실질적 성폭력예방교육 확대, 국가 차원의 디지털 성범죄 비상상태 선포 등을 촉구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두 딸을 키우는 학부모 서동규씨는 “남성 중심의 성문화 아래 여성의 나체 사진을 미끼로 유혹하는 성인 사이트가 만들어지고 이 사이트를 통해 청소년들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로, 그러면서 범죄자로 흘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혁신교육학부모네트워크 소속 학부모 송윤희씨는 “아이들을 위한 안전 조치로 SNS 계정 사진을 모두 지우라고 하는 것은 ‘성적 충동을 느껴 성범죄가 일어날 수 있으니 노출 있는 옷을 입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행위”라며 “지금이라도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사회적으로 어떤 안전장치가 필요한지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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