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처럼 응급실 진료비 폭탄?…"의식 있다면 경증" 발표에 의사들 반박
응급이 아닌 환자가 응급실에 몰려드는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가 경증·비응급 환자에게 총진료비의 90%까지(기존 50~60%) 부담하게 하겠다는 개정법안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일반인이 자기 증상이 '경증'인지 아닌지 알기 힘들어 자칫 응급실에 갔다간 '진료비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른다. 특히 올 추석연휴 기간, 정부가 '문 여는 병·의원'을 강제로라도 지정하겠다고 하자, 대한의사협회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문 연 데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응급실에 가더라도 환자는 기존보다 '웃돈'을 내게 생겼다.
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가 경증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지표로 삼은 건 '케이타스'(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라고도 부르는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다. KTAS는 2012년 캐나다 응급환자 분류 도구인 '씨타스'(CTAS·Canadian Triage and Acuity Scale)를 우리나라 의료상황에 맞게 바꾼 것으로, 원래는 응급실에 온 환자의 진료 순서를 정하기 위한 가이드로만 활용됐다. 정부는 KTAS 4~5급에 해당할 때 경증·비응급으로 분류해 본인부담률을 90% 받겠다는 것이다. 5등급의 경우 '긴급해도 응급은 아닌 상태'를 말하는데, 환자가 스스로 긴급한 상태라고 느껴도 응급까지는 아닐 수 있단 얘기다.
이날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경증과 중증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구분하느냐, 당장 아픈데 환자나 보호자들이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본인이 경·중증을 판단해서 갈 수는 없다"면서도 "본인이 전화해서 (경·중증 여부를)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 자체가 경증이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답했다.
아픈 정도와 상관없이 '의식이 있다'면 경증이라는 것이다. 박 차관은 "중증은 거의 의식 불명이거나 본인이 스스로 뭘 할 수 없는 마비 상태에 있거나 이런 경우들"이라며 "그렇지 않고 열이 많이 나거나 배가 갑자기 아프거나, 어디가 찢어져서 피가 많이 난다면 경증"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KTAS가 환자를 경증이냐 중증이냐로 나누는 정확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게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주장이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4~5등급을 경증·비응급으로 분류하는 게 틀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100% 다 맞는 것도 아니"라고 언급했다. 이 회장은 "응급실에서 환자를 처음 봤을 때 (당장 처치가) 급한지 아닌지 정도만 분류하려는 기준"이라며 "처음에 4등급이었다가 진료 후 2등급으로 바뀌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같은 환자여도 적용 시점에 따라 KTAS 등급이 달라질 수 있단 얘기다.
예컨대 췌장암으로 등 통증이 생겨 응급실에 환자가 찾아와도 당장 5분 이내에 진료하지 않아도 되면 4·5급으로 분류될 수 있다. 또 칼에 베였는데 얼마나 깊이 파였는지, 피가 얼마나 많이 나는지에 따라 1·2·3급일 수도, 4·5급일 수도 있다. 이런 환자가 만약 4급으로 경증으로 분류될 경우 본인부담금을 총진료비의 90%를 내야 한다. 이 회장은 "외국에서는 환자 수에 비해 의사가 적어, 이 응급환자 분류 도구를 응급실에 온 환자가 기다려도 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활용할 뿐 경증이냐 중증이냐를 나누는 데 적합한 도구는 아니"라고도 언급했다.
그는 "응급실에 온 환자를 경증인지 중증인지 나누는 건 지난 30여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과제"라며 "본인부담률을 올린다고 해결되는 문제라면 지난 30여년간 왜 올리지 않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30여년 동안 모두가 편하게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왔는데, 이제 와서 경증 환자는 이용하지 말라 하면 국민의 반발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본인부담률을 90%로 올릴 때 건보공단만 이득 볼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진료총액은 같은데 본인부담률을 높이면 건보공단을 병원에 줄 돈을 아끼겠지만, 경증으로 구분된 환자는 내가 왜 경증이냐며 의사와 실랑이를 벌일 수 있다. 책임은 국민이 지고, 욕은 의사가 먹고, 이득은 정부만 보는 시스템"이라고 꼬집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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