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각형 인간 [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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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처럼 무리 지어 사회생활을 하는 벌은 육각형으로 집을 짓는다.
서로 붙여놓았을 때 빈 공간 없이 맞닿는 육각형 구조는 벌집을 짓는다 치면 최소의 밀랍으로 최대 공간을 확보하면서 사각형보다 균형 있게 힘을 배분한다.
육각형 인간이 일종의 소비 트렌드라는 점을 상기하면 한때 논란이 됐던 결혼정보회사 등급표의 진화인 셈이다.
과거 등급표가 기껏해야 학벌과 직업 정도를 반영했다면 육각형 인간 진단표는 벌집만큼이나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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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인간처럼 무리 지어 사회생활을 하는 벌은 육각형으로 집을 짓는다. 서로 붙여놓았을 때 빈 공간 없이 맞닿는 육각형 구조는 벌집을 짓는다 치면 최소의 밀랍으로 최대 공간을 확보하면서 사각형보다 균형 있게 힘을 배분한다. 수리적으로 가장 경제적인 동시에 안정적인 도형이다. 그런 육각형을 요즘은 인간을 평가하는 척도로 쓴다.
육각형 인간이라 한다. 외모, 성격, 학력, 자산, 직업, 집안이라는 세상의 잣대에서 어느 한 가지도 모자람 없는 완벽에 가까운 인간을 뜻한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팀이 매년 발표하는 올해의 ‘트렌드 코리아’ 키워드 중 하나였다더니, 과연 자주 듣게 된다. 육각형 그래프로 여섯가지 항목을 비교 분석해 서로를 점수로 줄 세우는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다.
육각형 인간은 최근 부산 서면미술관에서 만난 전시 제목이기도 했다. 전시는 당신은 몇 점짜리 인간인지 묻고 있었다. 가치를 수치화하는 젊은 세대의 문화라지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육각형 인간이 일종의 소비 트렌드라는 점을 상기하면 한때 논란이 됐던 결혼정보회사 등급표의 진화인 셈이다. 실제로 육각형 인간은 연애 혹은 결혼 시장에서 상품성을 따지는 저울질에 주로 언급된다.
확실히 더 깐깐해졌다. 과거 등급표가 기껏해야 학벌과 직업 정도를 반영했다면 육각형 인간 진단표는 벌집만큼이나 견고하다. 관객 참여형 전시 덕분에 새삼 진지하게 육각형 그래프 위에 올랐다. 쉽지 않네, 소리가 절로 난다. 외모, 자산 등으로 점수를 매길 때 마주하는 질문은 이런 식이다. ‘8등신 이상의 비율을 갖고 있습니까?’, ‘거주지의 가격이 30억 이상입니까?’ 개인의 노력이 닿을 수 없는 타고난 조건까지 평가하는데 무슨 수로 육각형 그래프를 채울 수 있을까.
혹자는 육각형 인간 현상을 계층이동 사다리가 부서진 현실에서 청년층이 표출하는 욕망의 희화화라고 분석한다. 타고나기를 부유한 환경에 외모와 능력까지 겸비한 이른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조건을 욕망의 목표점으로 설정하고 개천에서 용 나는 노력 신화를 부정하는 편이 속은 편하다는 얘기다. 좌절된 욕망은 배경 좋고 용모 수려한 유명인을 통해 대리 충족하니 노력형 흙수저보다 타고난 금수저를 선망하는 경향의 이유다.
그렇게 전시는 모자란 오각형 사각형들끼리 결핍을 확인하게 한다. 흥미로운 건 그 뒤의 태도다.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당당함. 깨진 도자기를 이어붙여 새 생명을 불어넣는 공예 작가 서명진은 신작 ‘끼워 맞추는 중’에서 깨진 유리, 거울 조각으로 육각형 그래프 위에 개성 있는 사각형 오각형을 만들어냈다. 완벽할 수 없는 현실에서 결핍 말고 외모든 학력이든 성격이든 잘난 구석을 들여다보자는 발상의 전환이다.
2030 청년 기획자와 작가들은 평범함을 부족함으로 느끼는 세태를 직시하기로 했다. 그러곤 세상의 잣대에 끼워 맞추기보다 나만의 행복 요소를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각자의 육각형을 만들 수 있다는 취지다. 뻔한 조건 대신 경험, 관계, 휴식, 성장, 감사, 꿈 같은 가치를 말할 수 있다. 어쩌면 틀 자체가 불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한 관객은 그래프 한가운데 꽃을 그려 넣었다. 누군가에게 꽃이 되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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