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공시만으론 탄소 안줄어”…돈줄 쥔 투자기관이 나섰다[인터뷰]
기후변화는 한 나라의 성장세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제 이슈다. 기업들의 생산여력을 떨어뜨려 금융기관의 부실, 경제 시스템 전반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한국은행은 기후변화에 따라 205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2020년 대비 최대 7.4%, 국내은행의 BIS 비율(위험가중자산 대비 자기자본)은 최대 5.8% 하락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그럼에도 금융당국 입장에서 기후변화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그렇다면 기업의 ‘돈줄’을 쥔 투자기관이 나서 기업들에게 탄소배출을 줄이라고 압박하면 어떨까.
NH아문디자산운용은 자산운용업계 최초로, 관련 주주 활동을 이미 수행하고 있다. 배출 위험도가 높은 투자 기업들을 선별해 기후위기 위험도를 평가하고 투자 결정에 반영한다. 주주총회장에서 기후변화 관련 발언도 한다. NH아문디자산운용의 ESG리서치팀 최용환 팀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35개 탄소 고배출 기업에 대한 주주활동
등급 낮은 기업은 펀드편입 불가능
-자산운용사가 투자 기업의 탄소배출 상황을 점검한다는게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인가.
“신용평가사들이 1~2년 전 데이터로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을 평가한다면, 우리 리서치팀은 현재 ESG 활동 사항, 앞으로의 목표, 관련 대응을 평가한다. 관련 질문을 만들어 35개 기업에 주주서한을 보내고 인터뷰도 직접 한다. 이러한 전 과정을 ‘세이 온 클라이미트(Say on Climate)’라고 이름 붙였다”
-이미 상장사 300여곳이 ESG 관련 성과를 담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내고 있는데 따로 모니터링하는 이유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내지만 기업들이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는 식이다. 목표·이행수준·배출량 데이터의 정의와 범위가 매년 변경되는 식이라 추적도 안 되고, 내부 기준이 제각각이어서 제대로 된 평가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모니터링하는 35개 기업은 연간 배출량 1000만톤 이상, 3년간 배출량이 계속 증가하는 기업, 탄소집약도 섹터 내 하위 10% 기업이다. 기후위기 노출도와 대응수준에 따라 5단계로 평가한다. 그 결과를 스튜어드십 활동, 투자 결정에 반영한다”
-자산운용사로서 투자 종목 편입에도 반영하나.
“그렇다. 우리 리서치팀은 매일 모델포트폴리오(MP·자산운용사의 자체적인 분석을 통해 투자유망 종목군을 가리는 작업) 회의에 들어가 기후변화 관련 인터뷰 분석 내용을 공유하고, 펀드 조성에 반영되도록 돕는다. 기후변화 관련 성과가 좋은 기업은 ESG 모델포트폴리오에 반영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빠지도록 의견을 준다”
2차 협력사들은 여전히 준비 부족
공시 의무화와 별개로 자산운용사 개입 필요
-기업 인터뷰에서 파악한 최근 기업들의 탄소배출 대응 현황이 어떤지 궁금하다.
“상장사 공급사슬의 1차 협력사까지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준비가 잘 되어있다. 발전, 철강 같은 소재 회사들도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에게 이미 질문을 많이 받아 대응 수준이 높다. 하지만 2차 협력사들은 여전히 준비가 부족했다. 유명 스포츠브랜드의 운동화 밑창을 만드는 2차 협력사를 인터뷰할 일이 있었는데, 이 회사는 배출 정량 지표 관리도 안 되어 있었다. 1·2차 협력사들이 함께 태양광 설치 같은 업무를 공유하더라도 2차 협력사가 개별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수치나 감축목표를 갖추진 못한 식이다”
-공급사슬이 얽혀있는 산업 생태계에서 개별 기업의 탄소배출 감소 노력에 한계가 있다는 말로 들린다.
“포스코·현대제철의 탄소 배출량이 높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 이번에 활동하면서 이들에만 배출량 감축을 압박해선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들의 배출량은 고로(용광로에 철광석·코크스·석회석 등을 넣어 쇳물을 만드는 방식) 때문인데 그렇게 생산되는 철강의 대부분이 현대차·기아차에서 쓰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자동차 제조사에 대한 저탄소 철강 요구가 없다. 전기차나 수소차를 생산할 때 친환경이라고 내세우지만 그 차는 고탄소 철강으로 만든다. 소비자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운용사인 우리는 포스코·현대제철·현대차·기아차 등을 묶어 대응하려고 준비 중이다”
-글로벌 기준에 상응하는 ESG 공시 의무화가 늦어지고 있다.
“공시기준은 마련돼야 한다. 기후 공시가 의무화되면 개별 애널리스트의 ESG 평가가 더 정교해지고 시장 이해에도 도움을 준다. 기후위기 대응을 잘 하는 기업은 자본시장에서 기업 가치를 높게 책정받아 자본조달 비용도 줄일 수 있다”
-공시가 의무화돼도 자산운용사의 기후변화 관련 주주활동은 의미가 있나.
“코스피 366개사가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공시했는데 핵심 지표 준수율이 62.3%에 그친다. 공시 제도가 아무리 의무화돼도 회사들이 준수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회사의 경우 국내 주식시장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ESG에 소홀할 수 있다. 투자기관이 압박을 가하는 건 공시와 별개로 또 다른 자극이 될 수 있다”
-운용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투자금 유치와 수익률이다.
“지난해 기준 전체 운용자산 60조원 가운데 ESG 자금만 4조4000억원, 그중 주식에 대한 ESG 운용자금이 2조5000억원에 달한다. ESG 주식 2조5000억원은 업계 최상위 수준이다. 2006년부터 국민연금 위탁 운영을 맡았는데 18년간 국내 최장기 운용하고 있다. 공무원 연금에서도 최우수 운용사로 선정됐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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