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와 불륜" 복귀 의사들 조롱…블랙리스트 급증에도 의협 '침묵'
의료 현장을 지키는 복귀 전공의와 전임의, 군의관, 공보의를 비롯해 학교에 복귀한 의대생 등 2400여명의 개인정보가 담긴 '블랙리스트'가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고 있다. 이름, 학번, 근무지 등 개인정보를 넘어 범죄 사실, 연애 관계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며 사실상 사직을 종용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회원 보호를 우선한다는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면서도 작성자 역시 의사라는 이유로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은 채 뒷짐만 지고 있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복귀 전공의, 병원의 전임의 등의 개인정보가 담긴 블랙리스트 '감사한 의사 명단'이 의사 커뮤니티 플랫폼인 '메디스테프'와 텔레그램 채팅방을 거쳐 온라인 아카이브 사이트를 통해 공유되고 있다. 제목에 '감사한'이란 표현은 의료 현장의 의사와 학교로 돌아간 의대생을 비꼬는 표현이다.
아카이브는 웹페이지 캡처본을 보관하는 사이트로 원래 게시물을 삭제, 수정해도 기존 내용을 영구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존에 메디스테프, 텔레그램과 달리 '인증' 없이 누구나 접속하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의사로 추정되는 작성자는 '제보'를 받아 매주 토요일 블랙리스트를 추가하고 있다. 가장 최근 업데이트된 지난달 31일 기준으로 △전공의 가을 턴(9월 모집) 지원자 △복귀 전공의 △수업 듣는 의대생 △촉탁의 △군의관 △공보의 △전임의 등 2400여명의 명단이 실려있다.
머니투데이 취재에 따르면 지난달 20일과 비교해 31일 업데이트된 전공의 명단은 서울대병원이 12명에서 32명, 서울성모병원은 6명에서 58명으로 증가하는 등 약 800명으로 증가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211개 수련병원에 전공의 1197명(2일 기준)이 일하는데 3명 중 2명이 명단에 포함된 것이다.
블랙리스트 전임의도 삼성서울병원이 75명에서 111명으로 증가하는 등 총 1200명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했다. 촉탁의는 5명에서 54명으로 증가했고 앞서 명단에 없던 군의관 29명, 공보의 26명 등도 추가됐다. 의대생도 220여명에 달하는 등 블랙리스트의 '몸집'이 보름 만에 두 배가량 불어난 상황이다.
작성자는 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 전임의에게 사직 후 이를 인증하면 명단에서 빼주겠다며 "술 먹고 여자 동기에게 스킨십과 성희롱" "술집에서 사람 팬 집행유예" "외과 병동 간호사와 불륜 의혹" "죽인 환자가 많음" 등 확인되지 않는 정보를 마치 '사이버 렉카'처럼 퍼트려 의사들을 협박·조롱하고 있다. 실제 작성자는 명단에 "사과하고 회개해서 제외"라며 블랙리스트로 인해 사직한 의사가 있다는 점을 암시하기도 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있는 한 전임의는 "사직은 개별적인 선택이라면서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조롱하는 명백한 집단행동이자 불법행위를 방조·장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동료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받으면서는 일을 못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분노했다.
그러나 회원 권익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의협은 전체 의사 수의 2%에 해당할 만큼 상당한 의사(의대생)가 포함된 블랙리스트는 아무런 제재나 조처를 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사직 전공의 리스트에 대해서는 현황을 파악하고는 있다"며 "그런데 협회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회원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이어 "특정 회원을 상대로 근거 없이 비방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면서도 "그 이상의 조치에 대해서는 현재 검토 중인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이대로 블랙리스트가 유지·확장되면 의사 이탈을 유발해 응급실을 비롯해 배후 진료에까지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최근 의협이 병원장 등 의대 교수에게 "환자 곁을 지킨다는 생각을 내려놓자"라거나 응급실 등에 "추석 연휴 '진료 불가'를 신청해달라"는 등 진료 차질을 부추기는 발언을 계속한다는 점에서 향후 "국민 건강은 외면한 '보건의료계 대표 단체'"라는 비판은 거세질 전망이다.
현재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의뢰받아 해외 공조를 통해 작성자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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