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속에서 자유를 찾아 헤맸던 알바니아인의 기록…'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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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레아에게 스탈린은 영웅이었다.
스탈린은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인민을 해방한 위대한 지도자였다.
레아와 선생님들은 스탈린을 사랑했지만, 거리에 몰려든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거리에선 '자유, 민주'라는 구호를 내건 시위대가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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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초등학교 시절 레아에게 스탈린은 영웅이었다. 스탈린은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인민을 해방한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러면서도 만면에 웃음 지으며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하게 사람들을 대했다던 따뜻한 사람이었다. 학교 선생님은 어떤 면에선 레닌보다도 더 위대한 사람이라고 그를 치켜세웠다.
레아와 선생님들은 스탈린을 사랑했지만, 거리에 몰려든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거리에선 '자유, 민주'라는 구호를 내건 시위대가 행진했다. 그중 일부는 스탈린의 동상을 심하게 훼손했다. "언제나 근엄하게, 소박한 외투와 평범한 갈색 구두 차림으로, 마치 심장을 떠받든 것처럼 오른손을 외투 안에 집어넣은 채" 서 있던 스탈린의 동상을 말이다.
런던 정경대 정치이론 교수이자 알바니아 출신 철학자인 레아 이피가 쓴 '자유'(열린책들)는 회고록이다. 책은 알바니아가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던 1990년대의 혼란스러운 풍광을 담았다. 시대의 혼란과 가정에 닥친 불운, 희망이 사라져가는 과정을 소설적인 형식으로 그렸다.
엄숙하게 스탈린주의를 지키던 알바니아는 1990년 12월, 다른 여느 동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체제가 무너졌다. 공산주의가 붕괴하고 자본주의가 싹텄다. 저자 가족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희망에 들떴다.
처음에는 근사해 보였다. 이젠 종교에 대해 다시 말할 수 있게 됐다. 투표를 통해 선출직을 뽑을 수 있는 자유도 얻었다. 당의 지시에 따르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약속한 '자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일자리는 사라지고, 나라는 파산했다. 온갖 곳에서 갱들이 설치며 이권을 탈취해갔다. 정부와 다단계회사, 갱들이 뭉쳐 폰지사기(다단계 금융사기)를 쳐 국민 상당수가 재산을 몽땅 잃었다. 많은 사람이 망명을 떠나다 죽어갔다. 희망은 부서졌다.
"1990년에 우리는 가진 것이 희망밖에 없었다. 1997년에 우리는 희망마저 잃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쓴 일기 등을 바탕으로 당대의 상황을 그려나간다. 문체는 유머러스하지만, 내용은 냉소적이다. 복잡다단한 알바니아의 상황과 복잡한 청소년기 저자의 마음이 책 곳곳에 묻어난다.
책은 저자가 대학 진학을 위해 지긋지긋하면서도, 온갖 정이 들어버린 알바니아를 떠나며 끝을 맺는다. 아버지가 반대하던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어린 시절 '파쇼의 나라'라고 배웠던 이탈리아를 향하면서다.
"해변에 나온 아빠와 할머니에게 손을 흔들었고, 이탈리아로 갔다. 배는 물에 빠져 죽은 수천 명의 시신들, 한때 나보다 더 희망에 찬 영혼을 담고 있었으나 나보다 불행한 운명을 맞았던 사람들의 시신 위를 항해했다. 나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책의 배경인 알바니아는 사실 미국과 중국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국가는 아니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스마일 카다레의 '부서진 사월'에서 잔혹한 '카눈' 관습 정도가 떠오를 만한 곳이다. 책은 그런 알바니아의 근현대사를 냉정하게 보여주며,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서사를, 그런 가운데 꿈을 찾아 헤매는 한 소녀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오숙은 옮김. 408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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