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중증 지체장애 문영민씨 중앙대 교수 임용…“장애인의 건강-권리 강의하고 싶어”

최예나 기자 2024. 9. 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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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층 연구실에서 7층 강의실까지 이동하는데 15분이 걸렸다. 학생들도 분주한 개강 첫 주라 엘리베이터가 오는 데 10분이 걸렸고, 좁은 엘리베이터에 전동휠체어가 들어서기는 쉽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층마다 멈췄다. 바로 옆 동인 다른 강의실로 이동하는 것 역시 험난했다. 12층 연구실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까지 내려간 뒤 이동통로로 넘어가서 다른 층으로 다시 올라가야 해서다.

이번 학기 신규 임용돼 2일 첫 강의를 한 문영민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의 시작은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문 교수는 중앙대 내 최초의 중증 지체 장애를 가진 교수다. 학교에서 단차가 없고 연구실에서 멀지 않은 강의실을 찾아 배정하는 등 신경을 많이 썼지만 장애를 가진 교수가 자유롭게 강의를 하기엔 생각지 못한 요소들이 아직 많다. 3일 만난 문 교수는 “앞으로 나 이후에도 중앙대에서 일하게 될 장애인이 많을 테니 하나씩 변화를 시켜가자고 너무 조급하지 않게 생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2학기에 신규 임용된 문영민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중앙대 내 최초의 중증 지체장애인 교수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장애인 노동자로 살아본 뒤 전공 바꿔

중앙대는 올해 2학기 전 장애인 복지를 전공하는 교수 임용 공고를 냈고 여기에 문 교수가 지원했다. 장애인 복지는 문 교수의 주된 연구 주제이기도 하고 삶 자체다.

문 교수는 한 번도 두 발로 걸어보지 못했다. 문 교수의 부모님은 딸이 생후 8개월 때 척수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부모님은 매일 문 교수의 휠체어를 밀고 일반 초중고교에 등하교시켰고, 문 교수는 서울대 화학부에 입학했다. 원래도 과학을 좋아했지만 고3 때 담임 교사가 한 이야기가 결정적이었다. “화학과는 가만히 앉아서 실험하면 되니까 영민이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도 힘들 게 없어.”

하지만 화학부에서 문 교수는 실험에 거의 참여할 수 없었다. 독성이 있거나 냄새가 강한 물질을 실험할 때 써야 하는 퓸후드는 너무 높았고, 실험실 내에서 왔다 갔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래도 문 교수는 전공을 살려 한국수력원자력에 입사해 3년을 다녔다. 발전소에 가야 할 일이 잦았는데 휠체어가 진입하지 못하는 곳이 많았다.

장애인 노동자로 일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스스로 또 주변 장애인 친구들을 통해서도 경험한 문 교수는 장애인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에 2014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문 교수는 장애인의 건강과 노동을 주로 연구했다. 장애인 노동자의 건강 생애사 연구, 장애인 1인 가구의 삶의 선택과 전략, 장애 청년의 노동에 대한 주관적 인식 유형 연구 등이 대표적이다. 문 교수는 “장애인들은 어려서부터 화장실에 잘 못 가 방광이 좋지 않고 물을 가능한 안 마시려는 습관이 베었다. 남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눈치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는 경험이 축적돼 성인 장애인의 건강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장애인의 건강과 권리 강의하고 싶어

문 교수는 학교에 오래 있었다. 하지만 특수교육법으로 보장받는 학생일 때와 교수일 때는 다르다. 이에 임용을 준비할 때도 대학이 얼마나 장애인 친화적인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문 교수는 “중앙대 사회복지학부는 취약한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을 연구하는 교수들이 많은 만큼 나도 도움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회복지학부 교수들은 솔선수범해 문 교수를 고려해주고 있다. 문 교수는 허리 통증이 자주 있어 3, 4시간에 한 번은 누워 있어야 하는데 동료 교수들이 문 교수 연구실에 안락의자를 넣어줬다. 또 동료들은 연구실이 있는 층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지만 문이 너무 무거워 열기 어려운 점, 문 교수 연구실의 세면대도 거울도 높은 것 등을 모두 체크해 대학본부에 개선해달라고 전달했다. 박상규 총장도 “문 교수를 도와줄 조교를 지원하고 높이가 낮은 스마트 교탁을 제공할 것”이라며 “장애인 복지는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이슈인 만큼 문 교수가 강의하는 데 어려움 없도록 계속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문 교수는 지난해 한국사회복지학회에서 우수논문상(신진학자) 수상하고 국제전문학술지(SSCI)와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 주저자로 20편 이상의 논문을 게재하는 등 많은 성과를 냈다. 남들과 똑같이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을 더 쪼개고 쪼개가며 열심히 살아온 덕분이다. 문 교수는 “장애로 인해 수반되는 너무나 많은 문제로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며 “자주 고장나는 휠체어도 고치러 가야 하고 주기적으로 다녀야 하는 병원도 많고 이동하려면 시간도 걸린다”고 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시간도 줄이기 위해 문 교수는 학생 때처럼 지금도 매일 도시락을 싸 온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일상생활에서 차별을 경험하는건 부지기수다 . 식당에서 입장을 거부 당하고, 장애인 주차 구역에 차를 댄 일반인에게 “차를 빼달라”고 했다가 “장애가 벼슬이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문 교수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분하고 비참하지만 한편으론 장애인 복지를 연구해야 할 동력이 됐다”고 했다. 그는 장애를 가진 학생에게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 역시 캠퍼스에서 늘 초라한 것 같았고, 졸업 뒤 좋은 곳에서 일할 수 있는지 걱정이 많았어. 우리의 건강 상태가 언제나 단점은 아니고 삶의 자원이 되고 삶을 빛나게 해줄 수 있을 거야.”

앞으로 문 교수는 꼭 등록 장애인이 아니어도 취약한 몸 상태를 가진 사람들의 건강과 권리를 다루는 강의를 하는 꿈을 갖고 있다. 문 교수는 “내가 화학도 공부해서 과학기술과 장애를 융합한 연구도 관심이 많아 관련 강의도 개설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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