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중증 지체장애 문영민씨 중앙대 교수 임용…“장애인의 건강-권리 강의하고 싶어”
12층 연구실에서 7층 강의실까지 이동하는데 15분이 걸렸다. 학생들도 분주한 개강 첫 주라 엘리베이터가 오는 데 10분이 걸렸고, 좁은 엘리베이터에 전동휠체어가 들어서기는 쉽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층마다 멈췄다. 바로 옆 동인 다른 강의실로 이동하는 것 역시 험난했다. 12층 연구실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까지 내려간 뒤 이동통로로 넘어가서 다른 층으로 다시 올라가야 해서다.
이번 학기 신규 임용돼 2일 첫 강의를 한 문영민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의 시작은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문 교수는 중앙대 내 최초의 중증 지체 장애를 가진 교수다. 학교에서 단차가 없고 연구실에서 멀지 않은 강의실을 찾아 배정하는 등 신경을 많이 썼지만 장애를 가진 교수가 자유롭게 강의를 하기엔 생각지 못한 요소들이 아직 많다. 3일 만난 문 교수는 “앞으로 나 이후에도 중앙대에서 일하게 될 장애인이 많을 테니 하나씩 변화를 시켜가자고 너무 조급하지 않게 생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중앙대는 올해 2학기 전 장애인 복지를 전공하는 교수 임용 공고를 냈고 여기에 문 교수가 지원했다. 장애인 복지는 문 교수의 주된 연구 주제이기도 하고 삶 자체다.
문 교수는 한 번도 두 발로 걸어보지 못했다. 문 교수의 부모님은 딸이 생후 8개월 때 척수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부모님은 매일 문 교수의 휠체어를 밀고 일반 초중고교에 등하교시켰고, 문 교수는 서울대 화학부에 입학했다. 원래도 과학을 좋아했지만 고3 때 담임 교사가 한 이야기가 결정적이었다. “화학과는 가만히 앉아서 실험하면 되니까 영민이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도 힘들 게 없어.”
하지만 화학부에서 문 교수는 실험에 거의 참여할 수 없었다. 독성이 있거나 냄새가 강한 물질을 실험할 때 써야 하는 퓸후드는 너무 높았고, 실험실 내에서 왔다 갔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래도 문 교수는 전공을 살려 한국수력원자력에 입사해 3년을 다녔다. 발전소에 가야 할 일이 잦았는데 휠체어가 진입하지 못하는 곳이 많았다.
장애인 노동자로 일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스스로 또 주변 장애인 친구들을 통해서도 경험한 문 교수는 장애인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에 2014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문 교수는 장애인의 건강과 노동을 주로 연구했다. 장애인 노동자의 건강 생애사 연구, 장애인 1인 가구의 삶의 선택과 전략, 장애 청년의 노동에 대한 주관적 인식 유형 연구 등이 대표적이다. 문 교수는 “장애인들은 어려서부터 화장실에 잘 못 가 방광이 좋지 않고 물을 가능한 안 마시려는 습관이 베었다. 남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눈치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는 경험이 축적돼 성인 장애인의 건강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장애인의 건강과 권리 강의하고 싶어
문 교수는 학교에 오래 있었다. 하지만 특수교육법으로 보장받는 학생일 때와 교수일 때는 다르다. 이에 임용을 준비할 때도 대학이 얼마나 장애인 친화적인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문 교수는 “중앙대 사회복지학부는 취약한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을 연구하는 교수들이 많은 만큼 나도 도움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회복지학부 교수들은 솔선수범해 문 교수를 고려해주고 있다. 문 교수는 허리 통증이 자주 있어 3, 4시간에 한 번은 누워 있어야 하는데 동료 교수들이 문 교수 연구실에 안락의자를 넣어줬다. 또 동료들은 연구실이 있는 층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지만 문이 너무 무거워 열기 어려운 점, 문 교수 연구실의 세면대도 거울도 높은 것 등을 모두 체크해 대학본부에 개선해달라고 전달했다. 박상규 총장도 “문 교수를 도와줄 조교를 지원하고 높이가 낮은 스마트 교탁을 제공할 것”이라며 “장애인 복지는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이슈인 만큼 문 교수가 강의하는 데 어려움 없도록 계속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일상생활에서 차별을 경험하는건 부지기수다 . 식당에서 입장을 거부 당하고, 장애인 주차 구역에 차를 댄 일반인에게 “차를 빼달라”고 했다가 “장애가 벼슬이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문 교수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분하고 비참하지만 한편으론 장애인 복지를 연구해야 할 동력이 됐다”고 했다. 그는 장애를 가진 학생에게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 역시 캠퍼스에서 늘 초라한 것 같았고, 졸업 뒤 좋은 곳에서 일할 수 있는지 걱정이 많았어. 우리의 건강 상태가 언제나 단점은 아니고 삶의 자원이 되고 삶을 빛나게 해줄 수 있을 거야.”
앞으로 문 교수는 꼭 등록 장애인이 아니어도 취약한 몸 상태를 가진 사람들의 건강과 권리를 다루는 강의를 하는 꿈을 갖고 있다. 문 교수는 “내가 화학도 공부해서 과학기술과 장애를 융합한 연구도 관심이 많아 관련 강의도 개설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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