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장기화·연쇄 이탈에 흔들리는 지역 응급의료[현장에서]
“딸이 갑자기 두통을 호소해 왔는데 하마터면 진료를 못받을 뻔 했습니다.”
지난 3일 세종시 도담동에 있는 세종충남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만난 40대 남성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집이 근처라는 그는 고교생 딸이 증상을 호소해 급하게 이곳을 찾았다. 그는 “야간 진료 중단 사실을 몰랐는데 앞으로 밤에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24시간 운영되던 이 병원 응급의료센터는 지난 1일부터 야간 진료를 전면 중단했다.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24시간 정상 운영되지만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성인은 진료를 받을 수 없다.
이 병원 응급실에는 당초 전문의 15명이 근무했으나 지난달 4명이 그만둔 데 이어 지난 1일 자로 4명이 추가 사직하면서 24시간 응급진료체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이곳은 세종 유일의 지역 응급의료센터로, 향후 급한 환자들은 대전·청주·천안 등 인근 지역 병원을 찾아야 한다.
지역 응급의료체계가 흔들리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따른 의정 갈등으로 전공의들이 주요 병원에서 대거 이탈한 상황에서 수도권 병원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지역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수도권으로 다시 이동하면서 지방에선 전문의를 구하기 힘든 ‘도미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건국대 충주병원과 강원대병원, 순천향천안병원의 상황도 비슷하다.
건국대 충주병원 응급의료센터는 지난 1일부터 야간 진료를 제한해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만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7명 중 5명이 동시에 사직했기 때문이다. 이 병원 관계자는 “현재 오후 7시 이후에는 증상이 가벼운 환자는 돌려보내고 중증 환자만 진료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야간 진료 중단 여파는 충주의료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루 평균 37명 정도였던 충주의료원 응급실 환자는 현재 40∼69명 수준으로 늘었다. 야간에는 대기시간이 1시간을 넘어가기도 한다. 의료원 관계자는 “건국대병원 응급실 진료가 중단되는 오후 7시 전후로 환자가 크게 늘었고, 지난 1일에는 야간에 30명 넘는 환자가 몰려 일부 경증 환자는 진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갔다”라고 전했다.
강원 지역에서도 춘천 강원대병원이 전문의 부족을 이유로 지난 2일부터 오후 6시 이후 야간 성인 응급 진료를 중단한 상태다. 응급실 전문의 5명 중 2명이 휴직에 들어간 데 따른 것이다.순천향천안병원의 경우 권역응급의료센터는 24시간 운영하지만 소아응급의료센터는 주 3회 주간만 진료하고 있다.
다른 지역의 경우 아직 응급실 운영 중단까지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공의 이탈에 따른 인력 부족으로 가까스로 응급실을 가동하고 있는 형편이라 의료진의 피로 누적 문제와 진료 차질 가능성이 남아있다.
대구 경북대병원은 응급실에 근무하던 전공의와 수련의 22명이 집단 사직하면서 현재 전문의 7명이 3∼4교대를 하며 24시간 운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레지던트와 인턴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전문의들에 의존하고 있는데 의료진들이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조선대병원의 경우도 응급실 운영 차질은 빚어지지 않고 있지만 전공의 이탈로 응급의학과 외에 다른과 전문의들이 대체 근무를 하며 진료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역 병원의 응급실 진료 공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인력 부족 병원들은 원래보다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응급의학과 전문의 채용에 나서고 있지만 충원되지 않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응급실 전담의 등 6명을 모집하고 있는 강원대병원은 이미 2년 전부터 16차례나 응급실 의사 채용 공고를 냈지만 충원에 어려움을 겪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세종충남대병원도 응급실에 응급의학과 전문의 6명을 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있으나 아직 충원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 병원들에 4일부터 군의관을 투입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어서 단기간에 진료 정상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충남대병원 관계자는 “응급실 운영에 필요한 최소 인원을 채우기 위해 군의관 6명을 요청했는데 전원 투입된다고 해도 당장 정상화는 어려울 수 있다”며 “의사가 채용돼야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만큼 언제 완전히 정상화될 지 장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종섭 기자 nomad@kyunghyang.com,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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