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재정 안 좋아지면 수급액 줄인다…'사회적 합의'가 도입 관건

유영규 기자 2024. 9. 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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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인구·경제 여건의 변화에 따라 연금액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인구·경제 여건 변화로 재정 상황이 안 좋아지면 연금 수급액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인데,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해 도입을 검토한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높은 노인 빈곤율 등 국내 상황을 고려했을 때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어 도입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오늘(4일) 제3차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연금개혁 추진 계획을 확정했습니다.

이번 추진 계획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 이은 후속 방안으로, '지속가능성 제고'가 주요 목표 중 하나입니다.

그 일환으로 복지부는 '자동조정장치'(자동안정화장치) 도입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자동조정장치란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 상황 등과 연동해 연금액 등을 조정하는 장치입니다.

예를 들어 기대 수명이 늘어나거나 연금의 부채가 자산보다 커질 경우, 출산율이 감소하거나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 경우 재정 안정을 위해 보험료율(내는 돈)을 올리거나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낮추는 방식입니다.

국민연금은 소비자물가변동률에 따라 매년 수급자들이 받는 연금액을 늘리거나 줄이고 있지만, 자동조정장치는 적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복지부는 최근 저출생, 고령화 추세와 기금 재정 상황 등을 고려해야 하므로 연금 인상의 속도를 조절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자동조정장치가 발동되는 기간에는 물가상승률에서 '최근 3년 평균 가입자 수'와 '기대 여명 증감률'을 반영해 연금 인상액을 조정한다는 것입니다.

출산율이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가입자 대비 연금 수급자 비율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데, 기금 재정 안정성을 위해 수급자들이 받을 돈을 줄이는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 가운데 24개국이 자동조정장치를 운영 중입니다.

이 가운데 일본은 연금액을 기대수명 연장과 출산율 감소에 연동해 삭감하는 자동조정장치를 '거시경제 슬라이드'라는 이름으로 도입했습니다.

임금 상승률과 물가상승률에서 3년 평균 가입자 감소율과 평균수명 증가율을 차감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스웨덴의 경우 기대수명이 늘어나면 연도별 연금 지급액이 축소되고, 연금 부채가 자산보다 커질 경우 균형재정을 달성할 때까지 지급액을 줄이는 방식입니다.

독일에서는 경제활동인구와 연금 수급자 규모의 변화에 따라 급여 수준과 보험료율을 자동 조정합니다.

핀란드는 기대 여명이 증가하는 만큼 연금액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성혜영 국민연금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금 재정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급여나 기여율, 그리고 연금 수급연령을 자동적으로 조정하고자 공적연금에 자동조정장치를 사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복지부는 연금 수지 적자나 기금 소진 시점을 늦출 수 있는 자동조정장치 시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현행 보험료율 9%·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할 경우 연금 수지는 2041년 적자를 기록하고, 2056년에는 기금이 소진됩니다.

이번 정부안처럼 모수 개혁을 통해 보험료율을 13%, 소득대체율을 42%로 올리면 수지 적자와 기금 소진 시점은 각각 2054년, 2072년으로 미뤄집니다.

복지부 추계에 따르면 모수 개혁 이후 연금 급여 지출이 보험료 수입보다 많을 때인 2036년에 자동조정장치가 발동될 경우 수지 적자 시점은 2064년으로, 기금 소진 시점은 2088년으로 늦춰집니다.

수지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2054년에 자동조정장치가 발동하면 기금 소진 시점은 2077년까지 연장됩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재정 위험신호 등을 고려해 자동조정장치 발동 시점을 다양하게 검토해볼 수 있다"며 "장치를 도입하면 기금 소진이 늦춰지겠지만, 소득 보장 수준이 달라질 수 있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기금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겠지만, 당장의 보장성을 악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동조정장치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오종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은 "유럽 등에서는 노인 빈곤율이 10% 아래로 낮아진 상태에서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됐는데,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0%에 육박한다"며 "보장성 강화에 대한 고려 없이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오히려 노인의 빈곤을 초래하는 연금 개악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다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도 "노인 빈곤 상황이 향후 50∼60년 동안 괄목할 만큼 해결되지 않을 텐데, 그런 상황에서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수급자가 받을 급여가 얼마나 삭감될지 전혀 모른다"고 지적했습니다.

보장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동조정장치 도입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큽니다.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소득대체율 42%의 의미가 없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합의를 위해 굉장히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되면 (상황에 따라) 연금액이 조정되기 때문에 소득보장 수준과 관련해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며 "이런 점에서 국회에서 많은 논의를 할 수 있게 여러 가지 방안을 제안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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