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서 중국 선전 아이폰 공장 노동자 이야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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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던 지난 2일 저녁, 서울 청계천 변 세운상가 앞 광장.
백지를 손에 든 60여명이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강강술래 추듯 광장을 돌고 있다.
전체 구성을 맡은 홍명교 활동가는 "여럿이 토론하면서 공동 창작 형식으로 만들었다"며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점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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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연극제’ 속으로 들어온 활동가들의 연극
모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던 지난 2일 저녁, 서울 청계천 변 세운상가 앞 광장. 백지를 손에 든 60여명이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강강술래 추듯 광장을 돌고 있다. 언뜻 시위처럼 보이지만, 실은 ‘2024 변방연극제’에 출품된 공연 ‘현지 가이드와 함께하는 동아시아 맞춤 투어’의 마지막 장면이다.
앞서 세운상가 지하 세운홀에서 1시간40분 남짓 펼쳐진 공연은 헤드폰 마이크를 낀 3명의 가이드가 이끄는 가상 여행 형식이다. ‘보이지 않는 이야기, 망각을 강요받는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관객은 중국 선전과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일본 오키나와, 미얀마 양곤, 홍콩 교도소, 중국 우루무치와 상하이에서 최근 벌어진 일들을 목도하게 된다. 무대 정면과 양옆에 설치한 3개의 커다란 스크린에서 다큐멘터리 영상이 흘러나와 일종의 가상 현실을 구현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이 극으로 들어가는 이머시브 공연이다.
1막이 오르자 흰색 모자를 눌러 쓴 무표정한 배우 5명이 아이폰 만드는 동작을 무언극 형식으로 연기한다. 하루 16~17시간 노동, 한달 1~2일 휴무, 월급 33만원이란 안내가 나온다. 선전 폭스콘 공장에서 일했던 1990년생 청년 쉬리즈의 이야기다. 2010년 한해에 이곳 노동자 14명이 연쇄 투신자살한 사건을 떠올리며 종종 시를 쓰던 그는 2014년 공장 근처 숙소 건물 17층에서 투신한다. 대만 회사인 폭스콘은 애플의 최대 부품 공급사다.
2막의 주인공은 인도네시아 모로왈리 니켈제련소에서 일했던 여성 크레인 노동자 니르와나 셀레. 2022년 누전 사고로 크레인이 불길에 휩싸이면서 22살 생을 마감해야 했다. 오키나와 이시가키섬에서 전통 민요 선율에 평화를 노래하는 음반을 낸 야마사토 세츠코, 미얀마의 힙합 스타에서 반체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가 2022년 사형이 집행된 제야 또우 이야기가 3·4막을 채운다. 홍콩 민주화운동(5막)과 우루무치 화재 참사(6막)에 이어 중국 전역으로 퍼진 백지시위를 다룬 7막으로 공연은 마무리된다.
등장인물 17명은 전문 배우들이 아니다. 공연을 제작한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 활동가 10명과 공개 모집한 7명이 참여했다. 전문 극단이 아니라 사회운동단체가 동아시아 주변부를 주제로 만든 연극이 올해로 22회를 맞은 변방연극제 속으로 들어온 것. 전체 구성을 맡은 홍명교 활동가는 “여럿이 토론하면서 공동 창작 형식으로 만들었다”며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점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나고 서울의 한복판으로 나온 배우와 관객은 백지를 들고 광장을 돌며 함께 노래를 부른다. ‘다시 쓰네, 투쟁의 백지’란 제목의 노래는 “연대만이 우릴 살리네~”란 후렴구를 반복한다.
‘자유로운 창작정신과 실험정신’을 내걸고 1999년 출범한 변방연극제의 핵심은 ‘변방의 시선’일 것이다. 연극의 틀을 벗어던지고 관객에게 정서적 공감을 넘어 행동을 촉구하는 듯한 이번 공연은 변방연극제의 취지와 형식에 제법 맞춤한 공연 같다. 지난달 30일 개막한 연극제는 오는 8일까지 서울과 목포, 대전에서 이어진다. 2023년부터 연극제를 맡은 김진이 예술감독은 “우리가 어떻게 지금 여기 함께할 수 있을지를 질문하는 축제”라고 소개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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