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쉴 권리'까지 박탈 당한 사람들 [그림자 밟기]

홍승주 기자 2024. 9. 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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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홍기자의 그림자 밟기
한때 주목받은 ‘아프면 쉴 권리’
하지만 아파도 일하는 직장인들
병가 쓰고 싶어도 관련 제도 없어
시범 사업 중인 ‘상병수당 제도’
2025년 도입 예정이었지만 미뤄져
아프면 쉴 수 있는 사회 언제 올까

코로나19를 거치며 주목받은 '아프면 쉴 권리'. 하지만 지금도 대부분은 아픔을 참으며 일을 하고 있다. 정부는 2025년 상병수당 제도를 전면도입할 방침이었지만, 이 약속은 2027년으로 슬그머니 미뤄졌다. 아플 때 충분히 쉬고, 회복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어쩌면 당연한 사회는 언제쯤 찾아올까. 홍기자의 '그림자 밟기'에서 이 질문의 답을 찾아봤다.

'아프면 쉴 권리'를 공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상병수당'의 전면도입이 시급한 상황이다.[사진=뉴시스]

# 광고업에 종사하는 김기현(가명ㆍ30)씨는 지난 6월 출근길에 넘어져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기현씨는 손가락 접합수술, 피부 이식수술 등을 받은 40여일간 일을 할 수 없었고, 임금도 수령하지 못했다. '상병수당'이란 제도 자체를 몰랐던 그는 정부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600만원에 달하는 수술비는 이전에 가입한 보험비로 간신히 충당했지만, 생활비가 부담이었다. 기현씨는 "규모가 큰 회사라면 쉬는 동안에도 임금을 받았을 것"이라면서 "잘린 손가락 치료를 하는 동안 생활비를 벌지 못해 일상의 모든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다"고 토로했다.

# 경기도 안양에 사는 화물차 운전자 하민호(가명ㆍ48). 지난해 뇌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했던 민호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안양지사에서 화물차 운전자를 대상으로 상병수당을 홍보하는 것을 듣고 관련 제도를 인지했다. 그 이후 서류를 준비해 안양지사를 찾은 그는 107일 동안 치료를 받으며 상병수당 461만8000원을 수령했다. 민호씨는 "상병수당이 없었더라면,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고 털어놨다.

대기업과 공공기관 직장인, 공무원은 법령ㆍ단체협약 등으로 유급병가病暇를 보장받는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기업이나 자영업자, 특수고용노동자 중 상당수는 아파서 일을 쉬어도 일체의 급여를 받지 못한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 준비위원회가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88.2%가 "아픈 상태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문제는 병가를 쓰고 싶어도 관련 제도가 있는 사업장이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업장에 병가제도가 없다"고 답한 이는 절반에 가까웠다(499명ㆍ49.9%). '병가제도가 있다'고 응답한 501명(50.1%) 중 실제로 병가를 신청한 적 있는 이들은 174명(34.7%)이었는데, 이 가운데 122명은 '유급병가'를, 52명은 '무급병가'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병수당의 지급대상자와 자격기준을 폭넓게 설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김혜진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 공동대표는 "유급병가가 없는 비정규직은 쉴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다"면서 "오래 쉴 수밖에 없는 경우엔 고용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실 아플 때 쉴 수 있는 권리는 개인만을 위한 게 아니다. 사회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김혜진 공동대표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코로나19 사태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아팠을 때 사람이 충분히 쉬지 않으면 개인의 노동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감당하기 힘들다. 충분히 쉬고, 회복하고, 치료할 수 있어야 사회적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아프면 쉴 권리'를 법적ㆍ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상병수당을 제도화하지 않은 국가는 한국과 미국(뉴욕 등 일부 주에서는 도입)뿐이다.[※ 참고: 상병수당은 취업자가 업무와 관련 없는 질병 또는 부상으로 일을 하지 못한 때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다.]

물론 우리나라도 2022년 7월부터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일을 하지 못한 기간에 일 4만7560원을 지급하고, 이 기간은 공단이 결정한다. 시범사업 대상 지자체는 2022년 7월 6곳에서 올해 7월 서울 종로구, 경기 안양시 등 14곳으로 늘어났다.

상병수당은 지난 7월 기준 1만3015건 지급됐다. 평균 지급 기간은 18.5일, 평균 지급액은 86만2574원이다. '상병수당의 조속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윤석열 정부는 2025년에 상병수당 전면 도입을 목표로 3단계 시범사업을 하겠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지난 2월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상병수당 전면도입' 시기를 2년 뒤인 2027년으로 미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시범사업 결과를 면밀하게 평가 중에 있지만, 아직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며 도입 시기가 미뤄진 이유를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데엔 이유가 있다. 상병수당을 도입하기 전에 풀어야 할 숙제가 많기 때문이다. 우선 노동자가 상병수당을 신청하는 데 필요한 '진단서'를 발급해줄 의료기관의 비중이 지나치게 낮다. 1단계 시범사업 지역(2022년 7월 이후)의 의료기관 참여율은 16.5%, 2023년 2단계 시범사업 지역(2023년 7월 이후)의 참여율은 15.7%에 그쳤다.

상병수당의 지급대상자와 자격기준이 협소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상병수당은 시범사업인 만큼 지역마다 지원대상 등에 차이가 있다. 1단계 지역은 소득을 따지지 않았지만, 2단계부터는 기준중위소득 120%(소득하위 50%)의 취업자만 지원할 수 있다. 모든 지역에서 65세 이상의 노동자가 지원할 수 없다는 점도 따져볼 점이다.

양현준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공익펠로우변호사는 "정부의 시범사업에는 한계가 많다"며 "소득중단은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모든 취업자가 경험할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이기 때문에 지급대상을 노동자 전반에 걸쳐 넓게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쩌면 당연한, 누구나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는 언제 이뤄질까.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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