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 의대 교수진 "의대 증원, 개혁 아닌 개악"
군의관 5명 파견했지만 병원 측 "투입 어려워, 내일부터 근무"
'전문의' 없는 군의관들 응급 환자 대처 불가능 우려도
강원도 "지역 병원 연장 근무 요청"에 지역 의사들 '반발'
의사들 "구급환자 가능한 모든 처치하고 있어, 정부 결자해지 해야"
응급의학과 전문의 부족으로 성인 야간 응급실 운영을 중단한 강원대학교병원과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소속 교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두고 "개혁이 아닌 개악"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응급실 운영의 조기 정상화를 위해 군의관 5명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물리적 이동 거리와 사전 교육 등을 고려하면 당장 투입이 불가능해 차질이 예상된다.
이번 사태로 강원도는 지역 병·의원들에 대한 운영 연장을 요청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지역 개원의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반발하면서 의료 대란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강원대병원 교수들 "의대 증원 개혁 아닌 '개악' 국민 선동"
강원대학교 의과대학·강원대병원 교수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4일 병원 1층 로비에서 피켓 시위를 열고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을 향해 "의대 증원 정책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비대위는 "응급실과 필수 의료의 붕괴가 의사 수 부족 때문이 아니기에 의대 증원을 통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 않냐"며 "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십니까"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가 수십 년 간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의료 수가를 유지해 진료를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고 소송에 시달리도록 하는 의료 시스템을 방치해 필수 의료가 붕괴되고 있는데 갑자기 의대 증원을 통한 낙수 효과로 필수 의료를 살려야 한다고 국민을 선동하냐"고 지적했다.
"정부의 잘못된 증원 정책이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일하는 필수과 의사들을 한순간에 낙수 의사를 만들었다"며 "이제는 산부인과 분만, 시간이 늦으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소아과적 응급 질환, 생명을 위협하는 흉부외과 응급질환이 치료 불가능한 의료 후진국으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지난 2월부터 국가재난 위기 '최고' 단계를 선언하고 의사들 때문에 의료 위기가 왔다고 매일 브리핑하고 광고하더니 오히려 지금은 응급 의료에 문제가 없다고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며 "9일부터 수시가 시행돼 증원된 채로 입시가 진행되면 더 이상 한국 의료, 필수 의료는 희망조차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비대위는 현재 상황이 국가 비상사태임을 강조하며 "의료 위기가 본격화되기 전 의대학생들의 대량 유급이 시작되기 전 의대 정원을 취소해서 학생과 전공의들을 학교와 병원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약 20분간 시위를 마친 뒤 김충효 비대위원장은 "제일 쉬운 방법은 저희 역시 사직하는 것이지만 교육자이고 의사이기 때문에 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신경외과와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는 사라지게 될 수 밖에 없다. 전세기를 띄워 수술해야 하는 세상이 오게 될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한 세상을 막기 위해 이렇게 나와 시위하고 있는 것"이라며 "정부의 정책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고 비판했다.
비대위는 이날부터 오는 6일까지 사흘간 같은 장소에서 피켓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다.
'군의관 파견' 강원대병원 "당장 투입 어려워"
정부가 응급실 운영이 일부 중단된 강원대병원과 세종 충남대병원, 이대목동병원 등에 군의관들을 긴급 투입해 급한 불을 끄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투입된 인력을 당장 응급 의료에 투입하기에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강원대병원은 이날부터 군의관 5명이 응급실에 투입돼 진료 정상화에 나서기로 했지만 현재까지 실제로 투입된 인력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조치로 갑작스럽게 군부대에서 병원까지 이동해야 하는 물리적 시간과 사전 교육의 필요성 때문이다.
병원 측은 당장 이날 근무 투입은 어렵다고 판단해 5일부터 응급실에 군의관을 배치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근무 일정과 야간 운영 활용 방안은 미정인 상태다. 이들은 이날부터 오는 10월 6일까지 파견 일정이 잡혀있다.
여기에 군의관들 대부분이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일반의' 신분으로 전문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 경증 환자 수용이 불가능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생명이 위태로운 긴급한 응급 환자들에 대한 처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원대병원 관계자는 "이동거리나 사전 교육 등을 고려할 때 내일부터 실제 투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구체적으로 주간이나 야간 근무가 결정되지 않았고 집행부에서 어떻게 인력을 운용할 지 고려하고 있다. 업무는 현장에서 배우게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앞서 강원대병원은 최근 전문의 5명 중 2명이 휴직 하면서 24시간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지난 2일부터 성인 야간 응급실 진료를 무기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병원이 응급실 운영을 일부 중단하는 건 개원 이래 처음으로 추석 연휴 기간과 소아·청소년과는 정상 진료할 계획이다.
강원도 "병·의원 연장 근무 요청" 의사들 "감당 못해" 호소
지역 거점 병원의 응급실 운영 중단 사태에 강원도는 응급 환자의 진료 및 이송, 환자 분산 대책 등 춘천을 포함한 영서 북부권역 응급환자 비상진료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강원소방본부와 춘천시, 홍천군, 화천군, 양구군 등 지역 환자 중증도에 따라 분산 이송하고 지역 내 병·의원들의 경증환자 적극 수용, 연장 진료 등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겠다는 계획이다.
강원도 관계자는 "비응급 경증환자의 경우 지역 내 의원에서 대기환자 보다 우선해 처치 및 진료를 요청했고 의료기관에 평소 대비 1~2시간 연장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지역 의사회에 협조를 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개원의들은 "일은 다 저질러 놓고 결국 수습은 의사들에게 맡기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응급실 과부하로 경증 구급환자들이 지역 병·의원들로 쏠려 의사들만이 아닌 간호사 등 병원 임직원들도 업무 과부하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강원도내 한 개원의는 "의사라는 소명 의식으로 도의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금도 많은 환자들을 수용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구급차량을 타고 오는 환자들의 경우 진료를 하지 않았지만 현재 상황을 알기 때문에 의원급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처치는 모두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대한 노력하고 있지만 지금 사태는 결국 국민들이 피해를 입는 것"이라며 "의사들도 치료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강원도는 '강제'가 아닌 '협조 요청'이라고 밝혔지만 지역 의료계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의료 대란을 넘어서 심각한 문제로 갈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지금 이 사태가 너무 안타깝고 빨리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을지 몰라도 정부에서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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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CBS 구본호 기자 bono@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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