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고 제주 '환상길' 달리기…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제주도에는 무려 234㎞에 이르는 환상자전거길(이하 환상길)이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이 도로는 대부분 자동차 주차장이 되고 있거나 '자동차 우선, 자전거 차선'의 정체불명의 도로로 전락했다. 뿐만 아니라 도내 자전거 안내 표지판에는 일관성이 없고 수적으로도 턱없이 부족하며, 제주시에서 운영하는 무료 공공자전거 또한 전형적인 전시 행정임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보고, 대안적인 정책을 제안한다. 편집자
제주도에서 자전거를 타본 적이 있는가. 육지의 등산객들이 산행의 로망으로 한라산을 꼽듯 전국의 자전거 라이더들은 자전거 타고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게 희망사항 1순위라고들 한다. 중심에 한라산을 두고 제주도 해안가를 한 바퀴 도는 일, 상상만으로도 멋지다.
그러나 막상 당신이 자전거를 가지고 제주공항에 도착했다면, 도착출구를 나서자마자 당황하고 말 것이다. 당장 어느 길로 가야할지 막막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위한 안내 표지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제주도가 자전거 친화적이 아니라는 첫인상을 받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도 이 첫인상은 웬만해서 뒤집히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에는 234㎞에 이르는 환상자전거길(이하 환상길)이 있다. 이름의 뜻은 제주도를 한 바퀴 돈다는 뜻이지만 환상적이라는 의미 즉, 아주 좋다는 의미로 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환상길을 달려본 육지 사람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제주도청 신문고에 자주 등장한다. 한번 왔다 싫으면 다시 안 오면 될 터인데 글까지 남긴 걸로 보아 자전거 라이더들의 환상은 너무나 지독하게 깨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토로한 환상길에 대한 불평은 대체로 이렇다. "이정표가 부족하다. 제대로 된 자전거길이 아니고 형식적으로 만든 느낌이다. 노폭이 50cm인 곳도 있고 버스정류장(사람들이 앉아 있는)을 관통하는 곳도 많다."(제주도청 신문고, 2024.5.4. 김○○) 또, "이정표가 없어 역주행을 하게 된다. 자전거도로에 주차한 차량이 많다."(제주도청 신문고, 2022.11.16. 이○○)
나는 이들이 남긴 불평의 팩트를 파악하기 위해, 직접 자전거를 타고 환상길을 완주하며 조사해보았다. 그리고 비교를 위해 육지의 대도시들, 중소도시들의 자전거도로도 찾아가 봤다.
전거도로의 문제점을 좀 더 자세히 짚어보자. 무엇보다도 제주도 자전거도로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다.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주차한 차량들이다. 환상길 234㎞의 여러 구간엔 지금 이 순간도 수백 여 대의 자동차가 주차해 자전거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을 것이다. 환상길을 개인주차장처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옆 그림은 보도 겸 자전거도로인 환상길이 자동차에 의해 완전히 점유된 모습이다. 사람도, 휠체어도, 자전거도 모두 자기 길을 걷지 못하고 차도를 침입하여 때로는 역주행을 해야 한다. 이 현상은 일시적이 아니고 늘 그렇다. 자전거 법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자전거도로가 왜 이처럼 쓸모없이 변해 가는가? 이런 불법주차 차량들을 단속해 달라는 민원에 대하여 제주시청 교통행정과는 난색을 표했다. "주·정차 금지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 단속할 수 없다"(신문고, 2024.5.9.)는 것이다. 자전거도로라고 도청이 지정한 장소인데, 이를 무시하고 개인이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제주시청은 어쩌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질까? 제주시청이 자전거법에서 부과한 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전거 법에서 자치단체의 장은 ‘자전거 등의 통행에 방해가 될 물건 등을 자전거도로에 방치하지 아니 하도록 지도하여야 한다.'(자전거 법 제11조의 2)라고 규정하고 있다.
둘째로 자전거 안내 표지판에 일관성이 없고 수적으로도 턱없이 부족하다. 당신이 공항에서부터 자전거타기를 시작한다고 해보자. 먼저 달릴 길을 선택해야 한다. 일단 안내표지판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볼 것이다. 만약 없으면 노면에서 픽토그램을 찾아 둘러볼 것이다. 하지만 찾지 못할 것이다. 공항 내에는 픽토그램이 없다. 안내 표지가 없으니 당신은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구나' 하고 차로를 달리기로 결정할 것이다. 이때 당신은 차로의 오른쪽 가장자리를 달려야 한다(도로교통법). 차로를 조금 달리면 아마 뒤에서 자동차가 빵빵거릴 것이다. 자전거도로로 들어가라고 위협하는 것이다. 한참 달리다 보면 느닷없이 픽토그램이 보일 수도 있다. 분명 시발점에 없던 것이다. 애초에 출발점에서부터 픽토그램이 있었더라면 당신은 이런 불편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제주도의 자전거도로를 안내하는 픽토그램이 수적으로 적고 앞뒤로 일관성도 없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자전거 타기는 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셋째로 제주도 전체의 자전거도로 연결망에도 문제가 있다. 자전거 간선 도로망의 문제다. 제대로 된 인프라라면 공항-부두-터미널-시청-도청을 잇는 간선 자전거도로가 환상길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전거타기가 편리한 교통수단이 되어 효용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제주도의 환상길은 그 자체로 동떨어져 있다.
다음으로는 제주도 행정이 자전거 이용활성화를 위해 어떠한 활동을 하는가를 살펴보자.
제주시의 공공자전거 운영 실태를 들여다보면,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한 제주도 행정활동이 어떠한지 한 눈에 보일 것이다. 제주시가 운영하는 공공자전거는 모두 36대인데 누구나 빌릴 수 있고 무료다. 얼마나 파격적인가. 서울시를 비롯하여 육지 도시들은 공공자전거 대여료로 하루당 1,000원 가량 받는다. 제주 공공자전거는 공짜이지만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제주시의 작년 운영실적을 분석하니 이 공짜 공공자전거가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었다. 하루 평균 고작 7회만 대여 되었다. 그 이유를 알고자 3일 동안 11개 공공자전거 정류장 전부를 방문하여 점검을 했다. 타보기도 했다. 공짜인데도 사람들이 외면하는 이유를 결국 알아냈다.
첫째로 모든 자전거가 폐차를 해야 할 만큼 낡은 것이었다. 옆 그림에서처럼 녹슬고 변속레버는 태반이 고장이었다. 그 외에도 QR코드를 못 읽고, 타이어 바람이 빠지고, 녹이 슬어 안장 높낮이를 조절할 수 없고, 잠금이 아예 풀리지 않고, 까치발이 망가진 것들의 합계가…… 17대. 거기다 고장 수리중인지 아예 진열되지 않은 것이 9대.
진열된 27대 중 10대 정도만이 '가기는 가는' 수준의 성능이었다. '고물자전거 타기' 체험을 하기로 작정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타지 않을 것이다. 제주시청이 발표한 하루 평균 7회 대여되었다는 2023년 통계도 믿기 어렵다. 짐작하건데 대여 후 타보고 실망해 즉석에서 반환한 것까지 실적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나도 빌린 후 도저히 탈 수가 없어 즉각 반납하려니 1분 후 반납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이런 무용지물에 가까운 공공자전거 운영에 2024년에 1억9천6백만 원, 한 달에 1천6백만 원이나 지출된다. 혈세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둘째는 공공자전거의 대여소 겸 반납장소(허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또 교통요충지와는 동떨어진 곳에 설치되어 있다. 시내 정류장 등 연계 교통 환승지점에 허브를 설치하라는 제주도 조례의 규정에 배치된다. 사설 자전거 대여업자들의 자전거 정류장은 수백 개가 넘고 큰길가 어디에나 반납해도 된다. 그런데 제주시 공공자전거는 11군데에서만 반납을 받는다. 사설대여업자의 자전거는 타고 나서 그 근처에 두면 되지만 제주시 공공자전거는 사용한 후에 다시 빌렸던 곳까지 몰고 가서 반납해야 한다. 사설자전거는 30분에 3000원의 대여료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이용률이 높은데, 공짜인 제주시 공공자전거는 개점휴업 상태인 또 하나의 이유다.
왜 우리는 자전거를 타야하며, 타면 어떤 좋은 점이 있는가?
제주도청 스스로 자전거를 타면 좋은 이유를 제주도 조례에 잘 밝혀 놨다. 자전거 이용이 활성화 되면 교통난이 해소되고, 자전거 이용자의 건강이 증진되고, 에너지절약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지난 2월 국회정책토론회에서 ‘자전거 친화도시 1010’을 발표했다. 가장 많이 움직이는 일상생활권 10분 거리는 자전거를 이용하자는 생활 자전거캠페인이다. 아울러 자전거이용률 10%라는 사회공동의 목표를 제시했다. 열 번 이동할 때 한 번은, 혹은 열 명 가운데 한 명은 자전거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출퇴근 30분의 자전거 타기는 하루권장량의 유산소 운동이다.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탄소제로운동에 참여하는 일도 된다. 자전거로 이동하면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것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양이 20배 이상 감축된다. 일반승용차의 경우 주행 ㎞당 탄소배출이 313g인 반면 자전거는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 전기자전거도 탄소배출량이 주행 ㎞ 당 2.2g에 불과하다. 자전거를 타면 탄소제로운동을 전개하는 세계인들과 함께한다는 연대의식도 느끼게 될 것이다.
자전거 이용률 10%라는 사회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려면, 이대로는 안 된다. 우선 환상길에 주차한 차량은 단속하고 적재적소에 픽토그램을 설치하여 자전거 운행을 힘들지 않게 해야 한다. 또 자전거도로를 주변화하지 말아야 한다. 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도로를 제외한 모든 도로에서 자전거는 자동차와 통행 상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자전거도로를 설계할 때 이를 유념하지 않으면 '자동차 우선, 자전거 차선'의 정체불명의 자전거도로가 만들어진다. 없는 것보다 나쁜 파란선(자전거도로 표시)을 긋게 된다. 도청의 자전거에 관한 행정—인프라, 공공자전거 운영—은 실패하고 있지만, 육지에서 불어오는 자전거타기 열풍은 거세다. 길가 여기저기 주차되어 있는 전기자전거는 그 열풍의 증거이며 도청이 할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단적인 예이다. 전국 지자체들의 자전거 타기 운동의 영향과 자전거 대여업자·플랫폼 사업자들의 선도로 자전거 타기 시장은 팽창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주도의 자전거도로의 인프라를 리모델링하여 폭증하는 자전거 교통량을 수용하고 자전거의 교통분담률을 높여야 한다. 제주시가 운영하는 무료 공공자전거는 전형적인 전시 행정이다. 36대의 고물 자전거를 외딴 곳에 전시해 놓고 하루 너댓 사람의 이용자를 위해 일 년에 2억 가까이 세금을 쓰다니! 공공자전거 운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기를 바란다. 고물자전거를 모두 폐기처분하고 전기자전거로 바꾸는 게 좋을 듯싶다. 오르막 내리막이 심한 제주지형에 전기자전거가 제격이다. 공공자전거를 직영하지 않고 전기자전거를 이용한 사람들에게 '탄소저감 격려금'을 주는 방법도 있겠다. 서울시는 공공자전거 ‘따릉이’ 이용해 대하여 탄소중립 포인트를 지급한다고 한다.
많은 일에서 그렇듯이 이러한 혁신을 이루려면 우선 자전거 문화에 관하여 제주도 여론의 선도적 위치에 있는 이들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자전거 이용이 탄소중립, 교통난 해소, 이용자의 건강증진에 중요함을 절실히 인식해야 한다. 매년 4월 22일은 자전거의 날로서 지자체가 원하면 중앙정부에서 행사예산을 지원한다. 그러나 제주도는 한 번도 이 행사를 한 적이 없다. 또한 직접 관찰해본 결과, 도청 1,400여 명의 직원들 중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 사람은 단 두 명만을 볼 수 있었다. 0.01%의 제주 공무원만이 자전거를 일상생활에 이용한다고 말하면 과장일까? 최근에 제주시청에서 '탄소중립 시민 참여 교육·체험 프로그램'에 참여자를 모집하면서 생활 속의 실천 가능한 탄소중립 시민 습관 10개를 제시했는데 자전거 타기는 이에 포함되지 않았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국 모든 시도의 행동강령에서 자전거 타기가 포함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제주의 행정 책임자들이 자전거 정책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글은 생태적지혜연구소와 <제주투데이>에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이상현 제주 문화관광해설사·녹색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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