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세운 나라인데”…산업·민주·선진화세대 갈등 심각, 공존의 시대 열려면 [김명수 칼럼]

김명수 기자(mskim@mk.co.kr) 2024. 9. 4.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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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분단·전쟁 겪은 한국
유례없이 빠른 경제성장으로
산업·민주·선진화 세대 혼재
분열과 대립 난무할 수밖에
용서가치 깨닫는 국민 늘어야
강대국 실현, 꿈 아닌 현실될것
[챗GPT이미지 합성]
대한민국은 경제력 기준에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사회 질서는 여전히 후진적이다. 특히 정치권이 그렇다. 22대 국회는 의원들이 임기를 시작한 지 96일이 지나서야 개원식을 열었다. ‘87년 체제’ 이후 최장 지각 출범이다. 대통령이 개원식에 불참한 것도 처음이다. 여야 대표가 회담을 가졌지만 11년 만이다. 그만큼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아닌 갈등과 대립의 정치가 난무했던 것이다. 정치권은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오히려 편 가르기를 조장해 사회비용을 키우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역사를 짚어보자. 우리는 일제강점기 식민시대를 경험한다. 당시 일제 부역자는 친일 행위자로, 독립운동을 펼친 자는 애국자로 분류된다. 그런 틀 속에서 후손들도 여전히 친일과 반일 전선을 긋고 대립 중이다. 해방 이후 남북으로 갈라지고 동족 간 전쟁까지 치르면서 이념 갈등까지 겹친다. 온갖 모순 덩어리가 이 땅에 쏠리면서 한국은 갈라진다.

우리는 초고속 경제 성장도 경험한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지만 그 산업화를 촉진한 건 ‘개발 독재’. 민주화를 위한 열망이 커지고, 민주화를 주도한 세대가 주류로 등장하기도 한다. 1985년 이후 출생한 세대는 선진국 세대다. 그러는 사이 같은 시대에 산업화, 민주화, 선진국 세대가 혼재된 나라가 된다. 국민 개개인의 의견은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다. 최근 경제 양극화, 특히 자산 양극화까지 고려해보면 이 사회가 과연 지속가능할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쯤 되면 한국은 분열과 갈등, 대립이 난무하는 ‘분쟁 지역’이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기 너무 힘든 구조다. 오히려 미워하고 싸우기 좋은 구조다. 대립과 갈등을 유발하면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그 ‘먹이사슬’ 연결 고리는 극성 지지층, 즉 팬덤이다. 이들은 자기 편이 아니면 비난의 화살을 쏟아붓고, 자기 편이면 ‘표 몰이’를 해주기 때문이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옆에서 지켜보면 ‘살인자’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성품은 아니다. 전 의원이 그렇게까지 발언한 건 당 최고위원 선거를 앞두고 팬덤을 의식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다른 정치인들이 정쟁만 일삼는 것도 이런 사연이다.

우리는 내분을 해결 못 하면 ‘무늬만 선진국’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기 힘들다. 이런 싸움판을 바꾸려면 당장 민생 해결이 해법이지만, 동시에 국가 비전을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강한 나라, 위대한 나라를 만들자’는 식으로 공감할 수 있는 꿈을 심어줘야 한다. 그런 꿈이 있는 국민은 싸울 틈이 없다. 희망의 씨앗도 뿌려야 한다. 기독교나 천주교, 불교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용서’가 그 씨앗이다. ‘무조건적인 용서’의 마법이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스스로 변하길 바라는 건 무리다. 그들은 자기 표를 지키려고 분열된 국민을 더 찢어놓는다. 오히려 무지몽매한 유권자로 남아 있길 바란다. 국민을 우습게 보니 요즘 세상에 ‘계엄령’ 운운하는 것이다. 국민의 판단력이 더 소중한 이유다.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는 새로운 헌법과 새로운 정부가 필요하지만, 새 백성이 아니고는 결코 될 수 없는 일입니다.” 강원 고성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에 전시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취임사 중 한 문구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사 말미에 “우리 민족이 날로 새로운 정신과 행동으로 구습을 버리고 새 길을 찾아 분발하고 전진한다면 세계문명국과 경쟁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지금 적용해도 틀리지 않는 제언이다. 국민이 먼저 변해 분열과 갈등의 시대를 끝내라는 것. 이후 통합과 공존의 시대를 연다면 우리도 강대국 반열에 올라서지 말란 법도 없다. 특히 갈등을 조장하는 팬덤이 사라지고, ‘용서’의 가치를 깨닫는 국민이 더 늘어난다면 말이다.

김명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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