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 편집진에 '검정 자격 조작' 책임자 등재
‘뉴라이트 논란’ 한국사 검정교과서를 제작한 출판사 한국학력평가원(학력평가원)이 검정 신청 자격을 조작한 책임자를 검정교과서 편집자로 등재한 사실이 확인됐다. 출판 실적 조작 문제와 함께 출판사의 부적절한 행위가 또 한 번 드러난 것이다.
학력평가원은 올해 처음 고등학교 한국사 1, 2 교과서 검정을 신청해 합격했다. 검정 결과 발표 전부터 뉴라이트 성향의 필진이 모여 교과서를 집필 중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교육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달 30일, 학력평가원의 교과서가 공개되자 실제로 뉴라이트 인식이 반영된 교과서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부실하게 서술하고, 이승만 정부를 두고 ‘독재’라는 표현 대신 ‘장기 집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게 대표적이다.
교과서 내용과 별개로 학력평가원은 교과서 검정 신청 자료를 조작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앞서 뉴스타파는 학력평가원이 교과서 검정 신청을 앞둔 지난해 7월, 자사에서 2007년 발행한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 근·현대사 기출문제집을 표지만 새로 바꿔 새 한국사 기출문제집인 것처럼 출판했다고 보도했다.
교과서 검정을 받으려면 ‘최근 3년 이내 해당 교과와 관련된 도서를 1권 이상 출판한 실적’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증빙해야 한다. 학력평가원은 ‘표지 바꿔치기’ 수법으로 제작한 문제집 단 1권의 출판 실적으로 교과서 검정 신청 자격을 얻었다. 이처럼 학력평가원이 검정 신청 과정에서 계획적으로 부정행위를 한 사실은 지난 뉴스타파 취재 결과로 처음 드러났다. (관련 기사: '한국사 교과서 합격' 출판사, 알고보니 자격 요건 조작...평가원의 부실 검증)
검정 신청 자료 조작한 출판사…편집자도 수상
뉴스타파는 취재 과정에서 학력평가원의 검정 신청 자료 조작뿐만 아니라, 조작 행위에 가담한 편집자가 이번 검정교과서 편집자로도 참여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
학력평가원의 한국사 검정교과서 최종 합격본 연구개발진 명단에는 두 명의 편집자 이름이 적혀 있다. 이 가운데 한 명인 편집자 김 모 씨는 이 출판사가 표지만 바꿔 지난해 출간한 한국사 수능 기출문제집 표지 뒷면에 ‘책임편집’을 맡은 것으로 기재된 인물이다.
출판업계 현직 편집자 의견에 따르면 책임편집이란 “이론상으로는 기획부터 원고 수급, 제목, 표지 디자인, 교열 등 모든 부분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즉, 편집자 김 씨는 지난해 학력평가원에서 출판 실적 조작에 활용한 ‘표지 갈이’ 문제집 제작을 총괄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학력평가원은 그러한 검정 신청 자격 조작의 책임자인 김 씨에게 검정 교과서 편집자 자리를 맡겼다. 부정행위의 당사자가 검정 교과서 개발진으로 이름을 올려 편집 실적을 쌓게 된 셈이다.
출판사에 실제 근무한 편집자는 맞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교과용도서 검정 실시 공고’에 따르면, 교과서 검정을 신청하려면 해당 교과 관련 전공자인 교과서 전담 편집자가 1명 이상 근무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전문 편집자가 인사, 총무, 영업 등 기타 업무를 겸해서도 안 된다.
출판사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검정 신청 시 해당 편집자의 재직증명서와 학력증명서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제출하게 돼 있다. 학력평가원 역시 김 씨를 포함한 한국사 교과서 편집자 2명의 신상자료를 제출했다.
그러나 학력평가원에 인사·총무 등 행정직, 영업직을 제외하고 2명 이상의 상근 편집자가 실제 근속을 했는지도 의심이 드는 상황이다. 이 출판사의 직원은 6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 결과, 정식 직원은 최대 2명을 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민연금공단이 매월 공개하는 국민연금 가입 사업장 데이터를 살펴보면, 이 데이터에는 국민연금 가입자가 3명 이상인 사업장부터 집계·공개되는데 학력평가원은 2019년 이래 지난달까지 이 자료에 집계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최근 5년 사이 국민연금을 비롯해 4대 보험에 가입된 이 출판사의 직원의 수가 3명 미만, 즉 적게는 0명이고 많아도 2명에 불과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한편, 민간 기업신용평가업체의 기업분석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 데이터로 분석한 학력평가원의 종업원 수는 지난해 7월부터 현재까지 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같은 기간, 입사자나 퇴사자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2년 1월 이후로 회사는 역사 과목 교재를 비롯해 출판 실적 자체가 전무한 ‘개점휴업’ 상태였다. 출판 실적을 조작한 편집자 김 씨가 실제로 학력평가원에 근무하고 있는지, 검정교과서 편집에 요구되는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뉴스타파는 출판사 측에 해명과 반론을 요청했지만, 출판사 측은 거부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학력평가원에 교과서 편집자 김 씨와 통화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출판사 측은 응하지 않았다. 학력평가원 관계자는 뉴스타파와 여러 차례 통화하면서 “업무가 바쁘다. 편집자들은 모두 외부에 나가 있다”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교육당국, “사실관계 파악 중” 답변만 되풀이
교육당국은 아직 학력평가원의 검정 자격 조작과 관련해 진전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교육과정평가원의 대언론 업무 담당자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담당 팀에서 (사실 관계를) 파악 중이다. 조치는 그 결과에 달려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주호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는 3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학력평가원의 검정 자격 조작 문제를 지적하자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하는 사항”이라고 답했다.
당국이 학력평가원을 상대로 한 청문 절차 등을 거쳐 진상을 확인하고 나면 행정적인 제재 처분뿐 아니라 법적 조치까지 뒤따를 수 있다.
출판사 측은 교과서 검정 신청 시 교육과정평가원이 제시하는 각서에 날인해 제출한다. 이 각서에는 “검정 심사 과정 및 교과용도서 채택 과정에서 부조리한 행위로 각종 법률 및 규정을 위배할 때에는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38조에 규정에 의거, 검정 합격 취소 또는 발행권 정지 등 어떠한 조치도 감수할 것을 서약”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교육과정평가원은 “추후 검정 심사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부정행위가 발견되는 경우, 그 해당자는 검정 합격 취소는 물론, 민·형사상의 고소 및 고발 조치될 수 있다”고 출판사 측에 안내한 바 있다.
뉴스타파 홍우람 wooram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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