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 전에 이미 번아웃… ‘취준준생’ 급증
취업 준비 14개월… 역대 최장
불안감·우울감에 구직 미루고
“반년간 아무일 않겠다” 선언도
“초·중·고에 대학까지 20년을 넘게 한 번도 마음 놓고 쉬지 못했어요. 이 상태로 취업에 뛰어들면 합격하기도 전에 ‘번아웃’이 올 겁니다.”
‘5수’ 끝에 서울의 한 명문대에 입학한 유모(29) 씨는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명문대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군대에서도 공부를 쉬지 않았던 유 씨지만 대학 졸업 후 3개월 동안은 취업 준비를 하지 않고 휴식기를 갖기로 했다. 유 씨는 “적은 나이가 아니라서 걱정이 크지만 지친 마음을 회복하려면 심리 상담, 운동 등이 절실하다”며 “충분한 휴식도 취업 준비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직활동 없이 ‘그냥 쉬는’ 청년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청년층(15∼29세) 가운데 ‘쉬었음’ 인구는 지난해 동월보다 4만2000명 늘어난 44만3000명으로 집계됐다. ‘쉬었음’ 인구는 비경제활동인구 중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는 없지만 막연히 쉬고 싶은 상태에 있는 이들을 말한다. 하지만 이날 문화일보가 만난 ‘그냥 쉬는’ 청년들 중 일부는 유 씨와 같이 심리적 이유로 구직을 미루는 ‘취준준생(취업 준비를 준비하는 학생)’이었다. 청년들은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며 느끼게 되는 불안과 우울감 등 부정적인 감정이 지속되는 것에 부담을 느껴 구직을 미루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5월 기준 취업했거나 취업 경험이 있는 20∼34세 683만2000명의 평균 첫 취업 소요 기간은 14개월로 지난해보다 1.7개월 늘어 역대 최장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노동시장이 ‘평생직장’에서 ‘대(大) 이직의 시대’로 변화하면서 청년 세대의 취업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8월 ‘인서울 대학’을 졸업한 이현지(25) 씨 또한 최근 ‘취업 준비 준비기간’을 6개월로 정하고 내년 3월까지 “취업 준비를 하지 않겠다”고 부모님께 선언했다. 이 씨는 대학 입학 후 마케팅 직무로 진로를 일찌감치 정하고 학점 관리, 관련 동아리·대외활동, 대기업 인턴 수료 등 ‘스펙 쌓기’도 철저히 해왔다. 당장 취업에 뛰어들어도 손색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씨는 “취준생 선배들을 보니 긴 기간 동안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불합격을 경험하면서 자괴감, 불안감, 우울감 등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일부는 정신과를 다니기도 한다”며 “오랜 기간 버티려면 취업에 돌입하기 전 긍정적 경험을 쌓고 휴식하며 마음을 재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취업 장수생’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올해 5월 기준 취업했거나 취업 경험이 있는 20~34세 683만2000명 중 졸업 후 취업까지 1년 이상 걸린 비율은 32.2%였다. 2년 이상은 19.6%였다.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여전히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 일단 휴식하며 ‘취준준생’으로 머무는 학생도 있다. 대학생 윤지원(24) 씨는 지난 1학기 평소 관심 있는 분야에서 인턴을 하다 정규직 제의까지 받았지만 고민 끝에 거절했다. 막상 직무를 경험하고 나니, 적성과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어서다.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는 윤 씨는 “초·중·고 내내 국·영·수 공부만 했지, 대학 졸업 전 1~2년 만에 직무를 선택하려니 부담을 느낀다”며 “일단 여행을 하며 머리를 비운 뒤 다양한 커리어 탐색 활동을 해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대 이직의 시대’ 평생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청년세대들은 취업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크게 느낀다”며 “경제적 문제가 없는 고학력·고스펙 청년들까지도 취업 준비에 뛰어들기 전 ‘셀프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취업에 대한 부담감, 무기력에 빠진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를 잘 극복하기 위해 회복 탄력성을 키우려는 노력으로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율·김린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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