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퇴짜 놓은 텔레그램, 기소 뒤 한국에 꼬리 내렸다

공성윤 기자 2024. 9. 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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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방조’ 의혹 텔레그램 ”한국 성착취물 모두 삭제했다”
프랑스는 기소하고 한국은 내사 착수…외신 “한국이 사법적 압박 더해”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딥페이크 성범죄의 심각성이 커지는 가운데, 텔레그램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긴급 삭제 요청한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을 모두 삭제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정부의 수사 협조에 미온적이었던 텔레그램의 그간 행보에 비춰보면 이례적인 조치다. 이번 조치가 텔레그램의 창업자 겸 CEO 파벨 두로프(40)의 기소 뒤에 시행된 터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공동 창업자 겸 CEO ⓒ 연합뉴스

방심위는 3일 "텔레그램 측이 지난 1일 긴급 삭제 요청한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 25건을 모두 삭제했다며 사과의 뜻과 함께 신뢰 관계 구축 의사를 전해왔다"고 밝혔다. 텔레그램은 이날 공식 이메일을 방심위에 보내 "현재와 같은 상황 전개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텔레그램은 향후 불법 콘텐츠의 유통 방지 차원에서 방심위와의 소통 창구(이메일)도 전달했다고 한다.

"프라이버시 거래 안한다"며 러시아도 내쳤는데…"매우 전향적"

방심위는 "그동안 세계 각국으로부터 보다 적극적인 소통을 요구받아온 텔레그램 측의 이러한 입장 표명은 매우 전향적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 말대로 텔레그램은 보안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각국의 협조 요청에 선을 그어 왔다. 우리나라 경찰이 텔레그램에 수사 협조 요청에 관한 답신을 받은 경우는 한 건도 없다고 한다. 2019년 텔레그램을 통한 디지털 성범죄가 공론화된 'n번방'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두로프의 출신지인 러시아도 퇴짜를 맞았다. 두로프는 2018년 자국 정부가 수사에 비협조적인 텔레그램의 이용을 금지하려 하자 "프라이버시는 거래 대상이 아니다"라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일찌감치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러시아 정부에 반발해 2014년 독일로 망명했다. 2021년에는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하지만 최근 두로프가 프랑스에서 사법 처리되자 태도가 바뀌었다. 두로프는 8월24일(현지시각) 파리 외곽 공항에서 긴급 체포됐다. 그가 아동 성범죄를 비롯해 마약 밀매, 사이버 폭력, 테러 등 텔레그램에서 판치는 범죄를 방치했다는 혐의다. 이 밖에도 자금 세탁, 암호화 기술 미신고 등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12가지에 이른다. 두로프는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프랑스 사법부는 그를 예비 기소하고 출국을 금지했다. 이 외에도 당국은 두로프의 아들 학대 의혹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 경찰도 텔레그램에 대한 내사에 돌입했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2일 기자간담회에서 "텔레그램 법인에 대해 (딥페이크 성착취물 범죄) 방조 혐의로 입건 전 조사에 착수했다"며 "프랑스 수사 당국이나 각종 국제기구 등과 텔레그램 수사에 관해 공조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비밀리에 이뤄지는 내사 단계를 경찰이 공표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만연한 상황에서 주요 유통 창구를 사전에 공개 압박하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경찰은 두로프를 인터폴에 적색수배하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8월28일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열린 텔레그램 기반 딥페이크 음란물 제작 및 유포 사건 관련 긴급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첫번째는 프랑스였고 이제는 한국 차례"

외신도 이 같은 발표에 주목했다. 포브스는 2일 "두로프가 기소된 지 몇일 뒤에 한국 경찰이 텔레그램에 대한 조사를 발표했다"고 전했다. 레미 본 텔레그램 대변인은 이 매체에 "텔레그램은 성착취물을 비롯한 유해 콘텐츠를 적극 감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CNBC는 3일 "첫번째는 프랑스였고 이제는 한국 차례"라며 "한국 경찰의 이번 조사가 두로프에게 또 다른 주요한 사법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쏟아지는 언론 보도에 텔레그램도 경각심을 높이는 분위기다. 텔레그램이 방심위에 보낸 서한 중에는 "최근 한국 당국이 우리 플랫폼에서 불법 콘텐츠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알게 됐다"는 문장이 나온다.

국내 딥페이크 성범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봐도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 IT 보안업체 시큐리티 히어로가 발표한 '2023 딥페이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딥페이크 음란물에 취약한 국가 1위로 조사됐다. 업체가 지난해 7~8월 유튜브와 각종 포르노 사이트 등을 분석한 결과,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등장한 인물 중 한국인은 53%로 절반을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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