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집단학살 악용’ 판결문으로 진상규명 뒤집는 김광동
군법회의 판결문 찾았다며 진실 규명 뒤집으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김광동 위원장이 비상계엄하 국방경비법에 따라 민간인을 처형한 군법회의 판결문으로 이미 완료된 진실규명(피해 인정) 사건을 원점에서 재조사하려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김 위원장은 근거가 희박한 경찰 사찰 기록을 이용해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들을 부역자로 몰아간 바 있다.
3일 진실화해위 내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진실화해위는 6일 오전 열리는 제86차 전체위원회에 충남 남부지역(부여·서천·논산·금산)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 희생자 백락정(1919년생)의 진실규명 결정에 대한 재조사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이 안건은 지난해 11월28일 전체위에서 진실규명으로 의결됐지만, 김 위원장은 “백락정이 군사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사실이 ‘국방경비법 위반사건 판결’로 뒤늦게 확인돼 기존 결정을 변경할 사유가 발생했다”며 재조사를 주장하고 있다. 부역자로 사형당한 게 판명 났으므로 진실규명을 없던 일을 해야 한다는 요지다. 당초 김 위원장은 군법회의 판결문만으로도 진실규명 각하를 직권으로 결정할 사유가 충분하다고 보았으나, 야당 추천 이상훈 상임위원의 반대로 전체위에 재조사 안건을 상정하는 쪽으로 정리됐다.
1951년 1월6일자로 돼 있는 백락정의 군법회의 판결문에는 ‘사형’이라는 주문과 ‘이적행위 사건’이라는 설명 외에 판결 이유가 공란으로 비어있다. 이적행위란 당시 가장 많이 적용된 국방경비법 32조에 해당한다. 이런 판결문 내용은 지난해 11월 진실화해위의 조사 결과와는 차이가 난다. 당시엔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원 형사사건부 기록과 제적등본, 참고인 증언을 근거로 ‘백락용(1911년생)과 동생 백락정이 각각 (1950년)6월28일과 7월17일 사이, 7월1일과 17일 사이 대전 골령골에서 군경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결론을 내놨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에 사망 시점이 군법회의 판결문보다 6개월 이상 앞선다. 판결문이 사실이라면, 골령골에서 희생된 백락정씨는 행방불명된 뒤 대전형무소 또는 공주형무소에 갇혔다가 군법회의에 회부돼 사형집행됐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사형집행을 합법으로 볼 수 있느냐다. 1기 진실화해위에서 국방경비법에 따른 군법회의는 대부분 불법적으로 운영돼 온 것으로 확인돼 판결이 인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체가 범죄행위라는 판단을 해왔다. 나아가 해당 판결문에는 ‘사형’이라는 주문 뒤에 판결 이유가 적혀있지 않아 졸속 재판 정황도 보인다.
실제 진실화해위는 2009년 ‘부산·경남지역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진실규명 보고서에서 군법회의 판결을 사실상 집단학살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검찰관 1명이 하루에 159명을 사실심리하는 등 지극히 형식적인 재판을 거쳐 대부분 집단살해됐기 때문이다. 1949년 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형을 살았던 대부분의 4·3 희생자들도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1기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1948년부터 1962년까지 국방경비법 제32조(이적죄), 33조(간첩죄)에 의해 판결받은 피고는 약 2만3000명(제주도 군법회의 피고 1600명 제외)으로 집계되는데, 해당자의 약 90%는 민간인이었다. 2만여 명 중 약 30%(7300명)는 사형을 언도받았으며, 약 10%(2100명)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단심제와 신속한 집행으로 사형이 남발된 것이다.
백락정의 아들인 백남선(78)씨와 조카인 백남식(75)씨는 한겨레에 “동아일보 충남 서천지국장이자 보도연맹 서천군 지부장이던 백락용(백남식의 아버지)이 1950년 6월27일 충남 서천군 시초면 풍정리 92번지 자택에서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 하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끌려간 뒤 서천경찰서 시초지서에 구금돼 있다가 사라졌고, 이후 동생 백락정이 형을 찾으러 나가 행방불명된 것으로 안다”고 밝혀왔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지난 2월 김광동 위원장을 사자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해 경찰 수사가 진행돼 오다가 지난 7월 불송치로 마무리됐다. 진실화해위가 경찰청 신원조사서(1968년)에 나온 “백락정이 악질부역자로 처형됨”, “노동당원으로 활약하다 처형됨”이라는 기록을 신청인 배포용 진실규명결정서에 넣었다는 이유다. 야당 추천인 이상훈 상임위원은 “수십년간 가족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 달라고 호소한 유족들인데, 아무리 전쟁 중이더라도 달랑 ‘사형’이라는 두 글자만 기재된 판결문을 근거로 억울한 죽음이 아니니 국가폭력 희생자가 아니라고 결정하는 것은 전쟁의 야만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윤 대통령 방문 응급실, 왜 텅 비었지?…김한규 “환자 못들어가서”
- “양평 땅 옆으로 고속도로 통과시킨 윤-장모야말로 경제공동체”
- 윤하 ‘사건의 지평선’ 고등 교과서에 실린다…국어 지문으로
- 서울우유 “요거트 열 때 손동작 주의”…또 ‘여성혐오’ 자초
- 프랑스 발칵...아내에 약 먹여 72명에게 성폭행하게 한 노인
- “내 삶은 포르노가 아니다” 한국 딥페이크에 분노한 세계 여성들
- 윤 대통령 부정평가 67%…‘의대 증원 갈등’ 첫손 꼽혀
- ‘이복현의 입’ 단속 나선 금융위…‘오락가락’ 가계부채 정책 진화
- 윤건영 “문다혜 계좌에 출처 불명 2억5천만원? 검찰발 언론 플레이”
- 대통령실 이전 ‘특혜 계약’ 확인…감사원 “위법사항 다수 적발”